'고객의 쇼핑 편의'를 위해서? 웃기고 있네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실패기⑦] 우리에게도 노조가 필요해

등록 2013.07.26 12:02수정 2013.08.0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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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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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의 명품매장 ⓒ 연합뉴스


바야흐로 백화점에 '띵가띵가'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기다. 추석 시즌을 앞둔 때였다. 직원 휴게실에서는 이번 추석 연장 영업은 얼마나 될지가 최고의 대화 주제로 떠올랐다. 'ㄱ백화점은 4일만 하는데 우리는 이번에 9일 한다더라' 등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바빴다. 평소 금·토·일만 8시 30분까지 연장하던 영업을 평일까지 확대하는 건 직원들에겐 큰일이다. 유아기 부모들에게는 아이가 자기 전에 들어가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의 문제와도 직결됐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직원들은 미리 알지 못했다. 추석 연장영업 역시 직원들의 정보력이 딸렸는지, 9일이 아니라 16일 동안 이어진다는 걸 신문 기사를 통해서야 알았다. 기사 속 담당자는 추석 날만 쉴지 추석 다음 날까지 쉴지는 추석 4일 전에 결정 난다고 덧붙였다.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백화점 직원들도 귀향 준비를 하려면 휴일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할 텐데 4일 전에야 결정이 난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렇잖아도 연장근무를 2주 넘게 한다는 말에 심기가 불편한 나다. 본사 직영매장이 아닌 곳은 대부분 고정급을 받고 있어서 연장근무를 한다고 초과근무수당이 따로 나오지 않는다. 백화점이 연장영업을 발표하면 직원들은 군말 없이 연장근무를 해야 하는 구조에서 그만큼 '무료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그것도 한 달의 절반을 그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들 불만에 가득 찼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지 불평만 해댔다.

나, 최저임금은 받고 있는 거야?

이쯤 되니 내가 과연 최저임금은 받고 일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는 노무사에게 물었다. 2012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주6일 오전 9시 30분 출근, 저녁 8시 퇴근(그중 주3일 8시 30분 퇴근), 점심시간 1시간, 휴식시간 30분만 따져도 내 월급 110만 원보다는 많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법대로 하면 108만 원이 조금 넘는단다.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정근로시간과 연장·휴일·야간근로 시 가산수당 지급의 적용 제외 대상이었던 거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이 1주에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연장이나 휴일, 야간근로 때는 통상임금의 50%를 더해서 주도록 돼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그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단다. 왜지? 법은 약자를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걸까. 법이 약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건 내 편견이었나 보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들이 가산수당을 줄 여력이 안 되면 보전해줄 길을 찾아야 할 텐데, 정부는 법 적용에서 제외시키는 편한 길을 택하고 있었다.

'나 최저임금보다 2만 원 더 버는 아줌마야'라고 뻐기기엔 내가 하는 무료노동의 양이 너무 많았다. 우선 폐점시간이 바로 퇴근시간이 되질 못했다. 매장 정리 등에 최소 10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추석시즌처럼 세일기간이면 어김없이 연장영업이 늘어났다. 분기별로 재고조사라도 하는 날이면 새벽에 퇴근했다. 그나마 우리 매장은 초특가 행사를 하지 않아서 나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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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백화점의 명품관 ⓒ 연합뉴스


목요일 퇴근시간만 되면 화물 엘리베이터 앞은 매대를 앞세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주말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이었다. 행사장이 있는 층까지 매대를 옮기고 물건들을 진열하는 데만 해도 한두 시간은 금세 갔다. 일요일 저녁이면 그 매대들을 옮기느라 화물 엘리베이터 앞이 다시 분주해졌다. 그런 행사를 한 주가 멀다 하고 하는 매장도 많았다. 그밖에 신상품이라도 대량으로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른 출근 혹은 늦은 퇴근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백화점에서는 초과 근무가 다반사였지만 대부분이 무료노동이었다. 서비스업계에서는 이를 '서비스 잔업'이라는 말로 포장한다. 잔업을 서비스로 해준다는 말이다. 경영주들에겐 참 속 편한 얘기다. 직원들에게는 속 끓는 얘기고.

노조 유인물 받은 사람까지 '색출'

휴게실에서는 백화점에 대한 직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간혹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만 연장을 제일 많이 해. 지네가 연장수당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니까 우리도 노조를 만들어야 해. 그게 정말 동글배기(동그라미)야."

우리 백화점에도 노조는 있었다. 다만 백화점 정규직만이 조합원이 됐다. 우리 같은 협력업체 직원이나 파견 판매원들을 대변해주는 조직은 없었다. 판매원 외에도 기계설비 담당자, 청소원 등 백화점에는 많은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는 안 보였다. 백화점에서 일할수록 우리도 말할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별난 게 아니었음을 휴게실에서 알게 돼 기뻤다. 물론 그 직원에게 옆 직원이 만만치 않은 현실을 일깨워줬다.

"지난번에 민주노총에서 와서 유인물 나눠줬을 때 사무실 사람들이 쭉 서서 유인물 뺏어갔잖아. 유인물 받아간 사람들 누구냐고 찾고…."

백화점이 그렇게 방해 안 해도 백화점에서 노조 만들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판매직만 해도 매장마다 매니저(점장) 밑에 직원이 1~4명밖에 안 됐다. 그 1~4명도 몇 달 일하고 그만두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이들을 어떻게 모아낼 수 있을지 길은 멀어 보였다.

설사 노조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사용주가 불분명했다. (대부분 나처럼 근로계약서라는 걸 쓰지 않았겠지만) 서류상으로 우리의 사장은 매장 점장(매니저)이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본사로부터 지시를 받고, 또 백화점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따랐다. 수입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할 말도, 바꾸고 싶은 것도 많았다. 소심해서 직접 나서진 못해도 누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장선다면 그가 무척이나 고마울 것 같았다. 그런 고마운 이를 꼭 만나고 싶었다(불행히도 내가 갑자기 백화점을 그만 두게 되면서 그런 행운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첨단 산업 맞아? 군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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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한 백화점에서 시설관리를 맡아오다 집단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백화점을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결국 우리 백화점도 추석과 그 다음 날까지 문을 닫았다. 기사에서 담당자는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고민 중이라더니 다른 백화점이 이틀 쉬니 따라갔나 보다.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생색내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실제로도 생색내기였다. 지난해 추석은 9월 30일이었다. 다음 날인 10월 1일까지 문을 닫았다. 그런데 백화점 측은 그 두 날을 그 두 달의 휴무로 삼았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백화점 휴무를 그날로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백화점은 추석 때문에 쉬지는 않았던 셈이다.

매주 1회씩 쉬던 백화점이 어느 샌가 한 달에 한 번씩 쉬는 걸로 바뀌었다(그마저도 안 쉬는 백화점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후 7시 30분에 마치던 백화점이 계속 연장영업들을 해나가다 스리슬쩍 오후 8시로 정상 폐점시간을 바꾸었다. 그리고선 금·토·일 오후 8시 30분 폐점이 일상화됐다. 세일이나 시즌 때가 되면 다시 연장영업은 늘어나고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는 오후 9시까지 영업을 했다.

백화점은 연장영업 때마다 방송으로 "고객의 쇼핑 편의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매장에 오는 고객들조차 그 방송이 들려오면 "무슨 쇼핑 편의? 백화점 매출 올리려고 그런 거면서"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시대에 역행해 노동시간은 늘어갔지만 직원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는 없었다. 이번 달엔 백화점 휴무가 언젠지, 이 주말에 상품권 행사를 하는지 어떤지도 직원들은 미리 알지 못했다. 경영진이 정하면 그대로 따를 뿐이었다. 첨단 산업이라 해서 찾아왔더니 군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저항에도 직원들은 대단한 용기를 내야 했다. 백화점이 추석에 이틀 쉬면서 판매직원들은 매니저들과 하루 더 쉬는 걸 얘기했다. 그런 분위기를 몰아가면서 다들 3일 쉬는 걸로 되고 있었는데 한 매장 매니저가 이틀만 쉬라고 했단다. 그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가 매니저에게 "꼭 이틀만 쉬어야 한다면 3일째 하루치는 제 월급에서 빼세요"라고 강하게 얘기해 3일 쉬는 걸로 됐다는 얘기를 상기된 표정으로 해줬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얘기하지 말라고 입조심을 부탁했다.

샌드위치 데이라고 남들은 5일씩 쉬는데 3일 쉬는 것도 남 눈치를 봐야 하다니, 우리의 처지가 눈물겨웠다. 다시금 직원휴게실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에겐 노조가 동글배기야.'
#백화점 #노동조합 #연장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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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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