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엄마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서평] 안양문화예술재단 공연참여프로젝트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등록 2013.07.23 14:04수정 2013.07.2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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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출판기념회 ⓒ 유혜준


평범한 주부들의 일상 탈출, 이제는 '나'를 찾자!

지난 2012년, 이런 슬로건을 내걸고 극단 단원 모집에 나선 단체가 있었다. 단원 자격은 '안양시에 거주하는 기혼여성'이라고 못을 딱 박았다. 게다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연회비를 10만 원씩이나 받는단다. 이게 대체 뭐지?


다름 아닌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공연참여프로젝트'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연극에 관심이 있는 안양의 기혼여성들을 단원으로 모집해 연극 공부를 시키고 공연까지 하겠다는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것도 '연극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었다. 초짜도 환영한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참여자 대부분이 '초짜'였다. 

단원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안양 시내 곳곳에 내걸렸고, 포스터도 붙여졌다. 그걸 보면서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프로젝트에 안양시에 거주하는 기혼여성 32명이 응모했고, 이들은 5월부터 12월까지 매달 3번씩 모여서 연극을 공부했고,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12년 12월 29일, 안양아트홀 무대에 <집에는 좋은 일 있을 겁니다> 공연을 2차례 올리는 것으로 끝났다. 아쉽게도 이 공연은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꼭 봤어야 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공공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정리해 책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펴낸 것이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이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자체 예산을 들여 출간한 책이었다면 관심이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와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하고, 인세도 받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송경호 안양문화재단 홍보실장에게서 들었다.

엄마들이 모여서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했던 차였는데, 그 내용을 출판사와 정식계약을 하면서 책으로 펴냈다? 자비 출판이 아니라는 건데,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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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안양문화예술재단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은 읽는 동안 '기대'와 '실망'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 책이었다. 괜찮은 내용이 담기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시작은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실망했던 것.

평범한 주부의 일상이 펼쳐지는 프롤로그 '엄마의 시간'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현실을 관념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삶을 사는 엄마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 시대의 '엄마'들 가운데 몇이나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갈까?

많은 엄마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나서거나 내몰린 지 오래다. 나 역시 '엄마'이지만 '평범한 전업주부'가 아닌 것을.

이렇게 관념적이면서 상투적으로 시작하는 내용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갈등이 이어졌다. 계속 읽어, 말아? 이어지는 대목은 '공연 직전' 풍경. 7개월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뒤, 이들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고, 공연 직전 분장실 풍경이 그려졌다.

이 대목도 실망이었다. 엄마 단원들의 전후 사정이 생략된 채 상기된 표정으로 혹은 흥분된 목소리로 공연을 준비하는 상황이라니, 얼른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목은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뒤에 다시 읽으니 그 정경이 구체적으로 상상이 됐다. 아, 이랬겠구나. 이 때는 '감동'으로 느낌이 전환됐다.

처음의 실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더 내용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사소한 일상을 반영하면서도 공감대를 넓게 형성하는 특별한 내용이 있었다.

또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을 읽으면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현한 모든 이들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안양문화예술재단 공연참여프로젝트'는 평범한 주부들을 불러 모아 연극을 맛보게 한 뒤, 어설프나마 '유명한' 연극을 공연하게 한 뒤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종의 '실적 쌓기'가 아니었다.

목적이 분명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배우를 발굴하거나 능력 있는 사람을 키워주는 게 아니었다"는 거다. 공공재단이 할 수 있는 '공공의 역할'을 하겠다는 한계를 명확히 그었다. 이런 목적은 연출자(김종석), 제작감독(심우인), 조연출(이기봉) 등의 고백을 통해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문화재단이 개인의 능력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할 수도 있으나, 방점은 '개인'이 아닌 '공공'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이들 기획자들은 엄마 단원들이 무대에 올리는 공연을 엄마들이 '구질구질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전혀 구질구질 하지 않게. 엄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무대에 올린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일종의 치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의도였던 것. 그 의도는 딱 맞아 떨어졌다. 환상적이면서 멋진 공연을 꿈꾼 어느 참여자는 실망을 곱배기로 했지만. 그래도 이 참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고, 그 소감을 책에서 솔직하게 밝혔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은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 재미와 감동도 더불어 주는 책이라는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깨닫게 된다. 어쩌면 내 유전인자에 '엄마'라는 염색체가 새겨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닉네임으로 표기된 참여자들의 내밀하면서 솔직한 고백은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을 울렸다. 감동을 넘어 울컥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건 '엄마'라는 염색체를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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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공연 모습 ⓒ 유혜준


8개월의 지난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기획의도가 돋보이는 건 이런 순간이다. 비록 참여자들을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이들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그들을 곁에서 직접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후회했다. 작년 연말 공연을 봤어야 하는 건데.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은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실망을 하다가도 결국은 '감동'을 받고 책장을 덮게 만드는 책이다. 그래서 주변의 누군가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진다. '엄마'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들에게는 '엄마'를 이해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나 자신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나 역시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았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런 내가 사회로 첫발을 딛게 된 계기는 시민단체 활동이었다. 그것 역시 일종이 공공 프로젝트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영역을 조금씩 넓혀 나갔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때문에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다.

안양문화예술재단은 2012년의 '공연참여프로젝트' 성공에 힘입어 올해도 계속해서 이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포기한 참여자도 있지만 새로운 참여자들이 결합,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노재천 안양문화재단 대표의 설명이다. 올해 말, 이들의 무대에 올릴 공연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 엄마연극단 ‘엄반’ 이야기

안양문화예술재단 지음,
뿌리와이파리, 2013


#안양문화예술재단 #노재천 #엄마들의 유쾌한 반란 #엄마 #공공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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