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마주한 '진짜' 사자, 숨이 턱 막혔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⑨] 동물의 왕국 마사이마라 국립공원(1)

등록 2013.08.02 20:46수정 2013.08.0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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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진짜 잔지바르를 맛보러 다녔던 현지 야시장. 다양한 먹거리를 매우 저렴하게 판다. ⓒ 김동주


잔지바르에서 꼬박 일주일을 지내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일주일을 보냈던 영국인 조쉬, '오빠'라고 불렀는데 왜 밥을 안 사주냐며 졸졸 따라다니던 호주 아가씨 알리사, 굶는 게 체질이라며 아무도 음식을 팔지 않는 라마단 기간 동안 홀로 멀쩡했던 채식주의자 맷, 세계문화유산 업무차 아프리카에 왔다가 단 하루 휴가 동안 잔지바르를 찾아 덕분에 한국말을 실컷할 수 있었던 어느 한국인까지. 화려한 리조트도, 멋들어진 쇼핑센터도 없는 이 섬이 주는 그 특유의 편안함 때문일까. 유독 이곳에서는 너도나도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을 받나 보다.

그래서 떠나는 배를 타고 잔지바르가 한참 멀어질 때까지도 마치 이 아름다운 섬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여행이란 모름지기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이 커야 하는데 출발지에 시선을 뺏기고 있으니 어쩐지 케냐로 가는 여정이 쉽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잔지바르의 여운을 떨치지 못한 나는 다음 목적지를 케냐의 해양도시 몸바사로 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앞으로 며칠간 몸바사로 가는 버스는 만석. 결국 나는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로 향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택시를 타고 도착한 버스정류장에 있는 버스를 보니 많이 염려스러웠다. 뒤로 젖혀지지 않는 불편한 의자에서의 15시간. 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때마다 부딪힐까 불안한 좁은 차선에 비포장도로, 해가 뜨고 아침이 되니 비까지 내려가야 할 길이 먼 버스는 더욱더 더디게 간다. 다리 한 번 펼 공간도 없이 가득찬 버스 안에서 혼자서 잔지바르의 주문을 외운다. 괜찮아.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되지. 하쿠나 마타타.

씹어도 씹어도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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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로 가는 도중의 휴게소와 정체불명의 음식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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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리더(The Leader We Want)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벽화 ⓒ 김동주


비가 쏟아지던 휴게소는 휴게소라기 보다는 대피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흙과 먼지와 음식이 하나가 돼 나뒹구는 그곳에서 뭘 어찌할까 서성이다가 '이러다 버스가 나를 버리고 가겠다' 싶어 용기를 내 뭔가를 주문했다. 감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한 튀김과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고기는 만든 지 일주일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에서 힘겹게 나아가던 버스는 결국 도착 시간을 훨씬 넘긴 한밤중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가로등이 뜸한 거리와 낡고 축축한 건물들 사이에서 허름한 숙소를 찾아 거의 20시간 만에 좁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비로부터 전해지는 습기와 흙먼지를 그대로 머금은 듯한 침대와 모포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그날 밤 방안을 돌아다니던 바퀴벌레들에 비하면.

다음날 오전까지 오락가락한 비 때문인지, 전날 고된 버스 이동 때문인지 썩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이로비 시내로 나섰다. 지금까지의 아프리카도 그랬듯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사바나의 태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시내 중심에 높이 솟은 힐튼 호텔, 비 때문에 도시 전체를 덮은 짙은 안개와 시내 골목골목 가득한 사람들까지. 그저 사람이 사는 한 도시의 모습이다.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낮 2시쯤 됐을까. 짓다가 만 듯한 건물 옆 공터에서 누군가가 큰 스피커를 들고 뭔가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잠시 후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한 흑인 남성이 마이크를 잡더니 뭔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남성이 서 있는 뒷벽을 보니 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리더'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벽화는 비전과 지혜와 용기를 가진, 이들이 꿈꾸는 리더의 열세 가지 덕목이 적혀있었다. 덜 가지고 덜 배우고 덜 먹는다고 해서 미래를 꿈꾸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초롱초롱한 눈들. 그렇게 그 남성의 일장연설을 보고 있으니 문득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었다. 넘치는 한국이 아니라, 부족하고 처절해 보이는 이 검은 대륙에서. 아프리카는 그 스스로 빛나고 있다.

동물의 왕국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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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마사이마라 초원.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는 같은 곳이지만 국경이 다르다. ⓒ 김동주


나이로비에서 관광지로서의 특별한 매력을 찾지 못한 나는 일찌감치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으로 가는 투어를 찾았다. 투어를 출발하는 첫날, 천정이 뻥 뚫린 승합차에 몸을 싣고 앞으로 2박 3일간 함께 할 동지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도로 위를 달려 시내를 벗어나자 서서히 사바나의 풍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바나라는 말은 열대 우림 중간에 위치한 넓은 초원지역을 뜻하는 말이다. 하늘을 가릴 듯 높고 빽빽하게 우거진 밀림이 아니라 낮고 넓게 자란 풀과 그 위에 맺힌 이슬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는 곳으로 우기에만 집중적으로 비가 내려 푸른 모습을 유지하고 짧은 우기가 지나면 누렇게 마른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바나인 세렝기티 초원은 사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에 있다. 이 넓은 초원을 두고 탄자니아에서는 '세렝기티', 케냐에서는 '마사이마라'라고 부르지만 이곳에 사는 동물들에게는 그저 같은 초원일 뿐이다. 바로 그 생생한 생태계를 코앞에서 지켜보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은 잠시 문명 세계에 안녕을 고하고 이 드넓은 초원으로의 사파리 투어에 몸을 싣는다.

일단 사파리 투어에 발을 들이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전기는 매일 저녁 텐트촌에서 아주 제한된 시간 동안 돌아가는 발전기에 의존해야 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야수의 습격에 대비해 초원의 원주민은 밤새 불을 피우고 텐트의 곁을 지킨다. 여기에 드넓은 초원을 안내할 드라이버와 하루 세 끼 식사를 담당하는 요리사가 합류하면 마침내 팀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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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 공원 입구에 있는 텐트촌 ⓒ 김동주


약 세 시간 정도 초원을 내려다보는 길을 달려 육지에 들어서고 누런 풀들이 고개를 내밀 때가 되자 초원으로 가는 입구 옆의 텐트촌에 도착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텐트는 생각보다 매우 쾌적했다. 불빛이 전혀 새어 나가지 않게 두꺼운 방수포로 덮여있는 텐트 내부는 침대 두 개를 넣고도 남을 만큼 제법 넓었고, 심지어 침대 너머 쪽문에는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딸려 있었다.

운전기사 겸 가이드인 로렌스는 "마사이마라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짧게 주의사항 몇 가지를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차에 올라 마사이마라 공원으로 향했다. 일단 공원 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활짝 열린 차량 천장으로 고개를 내밀고 몇 시간이고 일어서서 앉을 줄을 몰랐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차가 달리는 도로 양쪽으로 가득한 버펄로와 임팔라들. 잠시 임팔라와 톰슨가젤의 차이를 설명하는 로렌스의 이야기를 심드렁하게 듣다 팀원들을 바라보니 그들도 같은 표정이다. 사슴과 소는 우리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울타리 없이 마주한 사자, 사랑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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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은 흰바탕에 검은 줄무늬일까,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일까. ⓒ 김동주


처음 감탄사가 터져 나온 것은 선명한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을 봤을 때였다.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운 데서 보는 얼룩말의 모습은 마치 몸에다 아주 선명한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흰색에 검은 줄무늬인지 검은색에 흰색 줄무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대비는 태양 빛을 받아 더욱 신비롭다. 잠시 시동을 끄고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걸음 소리, 풀을 뜯는 소리, 꼬리 흔드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살아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초원 속 사파리의 절정은 역시 맹수. 두어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한목소리로 "라이온!"(Lion!)을 외쳐댔다. 개체 수가 적어서 그런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자를 원망하며 기운이 빠져 있을 때쯤 로렌스가 낮은 나무 그늘 근처에 차를 세웠다. 속삭이는 목소리로 가리키는 그늘, 그곳에는 엄청난 몸집의 사자가 웅크린 채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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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바는 아프리카어로 '사자' 라는 뜻이다. ⓒ 김동주


누군가 큰 소리로 "심바!"라고 외쳤고 우리가 호들갑을 떨고 있자 사자가 짐짓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와 우리를 쳐다봤다. 그 순간 우리 모두는 말문이 턱 막혔다. 울타리가 없는 곳에서 사자를 마주하는 그 짜릿함.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짜릿함은 점점 공포가 됐다. 우리가 겁을 먹자 로렌스는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지금까지 사자가 사람을 습격한 사례는 없었다며. 우리가 이 차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공격 의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데 과연 그럴까?

다행히도 사자는 몇 초간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자리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며 몸 여기저기를 바닥에 긁어댄다. 그 큰 몸집으로 아등바등하는 꼴이 마치 고양이처럼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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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지자 어디론가 이동하는 동물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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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하는 사바나의 태양 ⓒ 김동주


사파리 투어의 첫날은 짧았다. 어느새 노을이 지는 해를 뒤로하고 수많은 차량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텐트로 향했다. 그리고 사바나의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태양을 따라 수많은 동물들도 어디론가 이동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풀이고, 어디까지가 동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동물들이 저마다 줄지어 움직였다. 장관이다. 나는 이 순간을 사진기에 담아야겠다는 것도 잊은 채 그들의 행렬만 바라봤다.

동물의 왕국에서 우주쇼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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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나면 모두가 모닥불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 김동주


해발 1600m에 있는 마사이마라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지고 나면 제법 쌀쌀해진다. 간단히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나오니 요리사가 준비한 식사와 함께 차가운 맥주 한 병을 권했다. 그리고 밤새 텐트 곁을 지킬 마사이 원주민이 피워 놓은 불 옆에 모여 앉아 그동안 궁금했던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지고, 두어 시간 지나 발전기마저 꺼져 서로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된 그때. 마법처럼 마사이마라의 우주쇼가 시작됐다.

지난 30년간 살아오면서 봤던 밤하늘의 별을 모두 모아 한 번에 본다면 이 정도가 될까. 멀어진 문명 세계만큼 가까워진 우주는 마사이마라의 하늘 위에서 생생하게 숨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마사이 족들이 일상으로 마주하는 이 자연도 오랜 시간을 거쳐 움직이고 변한다.

그 꿈틀거리는 자연 앞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이 하늘이 아닐까. 하나둘 목이 아파지자 우리는 벌러덩 풀 위에 누워버렸고, 그대로 정신이 아득해질 때까지 한참 밤하늘을 바라봤다. 온몸에 수억 년의 세월이 퍼져 흐르는 기분을 마음껏 느꼈다. 별의 신비나 우주의 탄생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인류는 겨우 달에 도달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이 초원 위에서도 온 우주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평생 잊지 못할 사바나에서의 첫 번째 밤이 지나갔다.

간략여행정보
다르살람에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까지는 버스로 15시간 거리다. 아주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거나 저녁에 타서 다음날 아침에 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나이로비는 강도가 많기로 악명이 높지만, 적어도 시내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사실 도심을 벗어날 일은 별로 없다. 마사이마라 공원에서의 사파리 투어는 나이로비 내의 모든 숙소 및 여행사에서 제공하며 가격은 1일에 120~150 달러(USD) 사이다(숙식포함, 2012~2013년 기준).

사파리 투어는 2박 3일 일정과 3박 4일 일정을 택할 수 있으며 3박 4일 일정을 택할 경우 마지막 3일째 마사이마라를 벗어나 나쿠루 호수에서 마지막 1박 2일을 보내고 다시 나이로비로 돌아온다.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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