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흉화복을 어찌 속단할 수 있으랴

쓰러진 벚나무와 바위 위에서 싹을 낸 쇠비름

등록 2013.08.15 15:42수정 2013.08.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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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쓰러진 벚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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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으로 쓰러진 벚나무가 누워서 꽃을 피웠고, 절망하지 않는 그 생명력은 마침내 사람의 주의를 끌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이안수


몇 해 전 여름, 큰 태풍이 파주 헤이리를 지나갔습니다. 몇 그루의 나무가 쓰러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길을 가로막고 누운 나무는 베어지는 방식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빈 필지로 남아 있는 나대지를 지나는 녹도에 식재되었던 벚나무 한 그루는 뿌리가 반쯤 뽑혀서 땅으로 드러누웠지만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점이 없었으므로 주목을 받지도 않았고 베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반쯤 뿌리가 뽑혀 땅위로 나온 그 나무가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늘 높이 있어야 할 우듬지조차 땅에 붙어 있었고 무성했던 잎은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 벚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더 이상 눈에 띄는 존재감이 없어진 다음 그 나무의 안위에 대한 기억은 제게서도 천천히 지워졌습니다.

그 다음해 5월초였습니다. 헤이리 노을동산의 나무들이 새순을 내어 연둣빛으로 갈아입고 있을 때, 산자락 능선에 흰 꽃이 수북이 핀 것을 보았습니다. 태풍에 쓰러졌던 그 벚나무가 누워서 꽃을 피운 것입니다. 

살아준 그 나무가 고마웠고 누워서 꽃을 피운 모습이 애처로웠습니다. 하지만 제 혼자 그 나무을 바로 세울 방법이 없었습니다. 솜씨 좋은 장인건설의 권태용 사장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발 그 나무를 바로 세워달라는….


권 사장님은 차에 줄을 매어 끌어 세운 다음 버팀목을 묶어 받치고 뽑힌 뿌리에 생긴 옹두리를 묻었습니다. 한 시간을 넘게 그 나무와 씨름하고서야 마침내 우듬지가 제일 높이 올라가고 땅에 붙어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휘추리들이 자유롭게 허공을 휘저었습니다.

삶의 의욕을 포기하지 않은 이 벚나무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희망일 수 있음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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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 좋은 권태용사장님이 혼자 벚나무를 바로 세웠습니다. ⓒ 이안수


 

바위위의 쇠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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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바위가운데 싹을 틔운 쇠비름. 이 절망적인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제초기의 칼날을 피할 수 있는…. 식물들의 한살이도 우리 인생과 다를 바 없는 희로애락의 시간들이 계속됩니다.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을 통해 용기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조건이 너무 혹독한가?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살리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 이안수


올 초여름, 느티나무 아래의 큰 바위 위에서 쇠비름이 자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위틈에 흙먼지가 쌓인 곳에 쇠비름의 씨앗이 날려 떨어졌고 때로 빗물이 고여 마를 때까지 촉촉한 그곳에서 싹을 틔운 것입니다.

"생명력이 매우 강한 쇠비름이라고 하지만 하필이면 바위위에 자리를 잡았을까? 바위 밑 부드러운 흙을 두고…."

제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밭을 매면서 뜯어다 데쳐서 나물로 묻혀주기도 했던 기억속의 나물이기도 해서 바위 위의 쇠비름이 더욱 애처롭게 여겨졌습니다.  

올 여름은 무덥기도 했지만 비가 잦아서 저의 염려와는 달리 말라죽지는 않았습니다.

그제 노변과 공원의 풀을 깎는 업체의 예닐곱 명 인부들이 일제히 제초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바위주변의 풀들은 모두 예초기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위위의 쇠비름은 건재했습니다.

바위 아래 풀들이 잘린 마른 풀잎을 뒤집어쓴 쇠비름을 보면서 '새옹지마'의 고사를 떠 올렸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길흉과 화복을 어찌 쉽게 속단할 수 있을까. 때로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조건이 너무 혹독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것이 오히려 나를 살리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압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벚나무 #쇠비름 #새옹지마 #전화위복 #권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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