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속담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

[서평] 스와힐리어 속담을 소개한 <아프리카의 지혜>

등록 2013.08.31 18:57수정 2013.09.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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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지혜> 겉표지 ⓒ 김병현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에서 '하쿠나마타타'의 뜻을 묻는 어린 심바에게 멧돼지 품바와 미어캣 티몬이 말한다.

"우리의 신조야, 이 여섯 글자면 모든 게 해결돼!"


여기서 '하쿠나마타타'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스와힐리어라는 언어다. '하쿠나'는 '~이 없다'는 뜻이고, '마타타'는 '혼란, 어려움'이란 의미다. 직역하면 '어려움은 없다', 좀 더 풀어 보자만 '다 잘 될거야'라는 긍정의 언어가 된다. 실제로 <라이온 킹>을 본 관객들에게는 꽤나 느낌이 좋은 말로 다가온다.

스와힐리어는 아랍어로 해안을 뜻하는 'sahili'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 동쪽 해안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스와힐리어는 현재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의 공용어이고, 콩고민주공화국의 4대 법적 언어 중 하나다. 또한 소말리아, 모잠비크, 르완다, 부룬디, 말라위, 코모로, 마요트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배의 상처가 할퀴고 간 대륙에서 가장 아프리카다움을 간직한 언어다.

스와힐리어로 된 속담을 소개한 <아프리카의 지혜>를 쓴 저자는 탄자니아로 떠나기 전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하나는 '아프리카 음식을 많이 먹어보자'는 것이고, 둘째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하자'였다. 마지막 목표는 '아프리카의 지혜를 배우고 오자'였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세 번째 목표를 완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속담은 삶의 지혜가 가장 온전히 담겨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을 썼다고도 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속담 원문의 한글 발음을 적고 뜻풀이와 문장 풀이를 함께 담아 스와힐리어의 기초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스와힐리어는 독자적인 문자가 없어서 발음 그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읽고 쓰기가 쉽다. 따라서 이 점만으로도 스와힐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어와 문화 둘 모두에 대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우리와 꼭 닮은 '아프리카의 지혜'


무심코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꽤나 낭만적이다. 언뜻 봤던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양동이와 막대기 하나만 가지고 신명나는 리듬을 뚝딱 만들어내는 장면이나, 광활한 초원에 펼쳐진 백색 도화지 같은 세상 속에서 여유와 긍정, 희망이 떠오른다.

그러나 사실 그 이면에 있는 아프리카는 정반대다. 외세에 휘둘린 슬픈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에게 어찌 아픔이 없겠는가. 요즘 아프리카의 현실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파고드는 책들도 많다. 다국적 기업의 수탈이나 내부 분쟁, 가난, 기아, 질병. 모두 아프리카를 괴롭히는 요인들이다.

그런 이들의 눈물을 어루만져준 정서는 무엇일까. 그들이 쓰는 언어를 통해 유추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언어에는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리 민족도 전통적으로 '한'이란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일까. 재미있는 점은 우리네와 꼭 닮은 그들의 속담이다. 어느 곳이나 사람살이 비슷하다는 말을 새삼 깨닫는다. 문명이 발생한 아프리카에서 스와힐리어로 읽는 '우리의 속담'은 색다름을 준다.

'불은 불로 다스린다(Dawa ya moto ni moto, 42쪽)'와 '선장이 많으면 배가 요동친다(Manahodha wengi chombo huenda mrama, 46쪽)'는 속담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과 꼭 닮았다. 각각 '이열치열'과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이런 경우도 있다. 묘하게 속뜻이 닮은 듯 다른 말이 있다. '빈 깡통이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Debe tupu haliachi kuvuma, 28쪽)'란 속담이 그렇다. 언뜻 우리의 속담 '빈 수레가 요란하다'를 떠올리며, 비슷한 뜻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차이가 있다.

빈 수레는 가는 길의 굴곡이나 장애물과의 마찰을 그대로 소리로 표현하지만, 짐을 실을수록 무게감이 더해지며 조용해진다. 하지만 깡통은 비어 있을 때도 시끄럽지만, 어설프게 조금 들어 있을 때는 더욱 요란한 소리가 난다. 우리나라의 속담은 조금이라도 채워지면 겸손해질 수 있다는 의미가 있고, 아프리카 속담은 어지간히 속이 차지 않은 사람은 더욱 시끄럽게 잘난 체를 한다는 뜻이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이 역시 해석적인 차이지 현상에 대한 관찰과 생각은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용례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지 않다. 저자 또한 '마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매우 다르게 보이는 경험 속에서 제가 가장 크게 놀랐던 것은, 인간의 삶이란 그곳이 어느 곳이든지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짧은 여행으로 다녀본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보편적인 지혜가 담긴 속담을 모으게 된 이유도 그 깨달음 덕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 내음 물씬 풍기는 속담들

그러나 역시 언어는 삶과 역사를 반영하듯 우리에게 신선한 속담들도 있다. 아프리카의 특성을 함축하고 있는 말들이다. 아프리카의 자연과 생활풍토를 반영한 속담들이 그렇다. 그 표현력을 살펴보는 일이 흥미롭다.

사자와 놀지 마라, 그랬다가는 사자 입에 손을 넣게 된다.(40쪽)
불개미는 떼가 바로 그들의 힘이다.(50쪽)
발톱을 가졌다고 모두 사자는 아니다.(84쪽)
당나귀의 감사는 발차기다.(106쪽)
모기 없는 우기 없다.(126쪽)

속담만 보고도 뜻이 절로 유추되는 것도, 바로 감이 오지 않는 것도 있다. 여전히 풀이가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보고 음미해보시길.

책에는 총 80개의 아프리카 속담이 실려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 그들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 구전되던 말들을 통해 이를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아프리카의 지혜>는 속담에 대한 자질구레한 설명보다는 이해를 돕는 짤막한 토막글들만이 있다. 여백을 두고 생각하기를 권유한다. 차라리 그게 아프리카답다.
덧붙이는 글 <아프리카의 지혜>, 차승정 지음, 에르디아 펴냄, 2013.08, 1만2천원

아프리카의 지혜 - 하쿠나 마타타

차승정 지음,
에르디아, 2013


#아프리카의 지혜 #하쿠나마타타 #차승정 #에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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