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후 3년, 아파트 한 채 값 까먹는다는데..."

[2013 전국투어- 대구경북울산⑫] 경북 상주시로 귀농한 6년차 농부 김용운씨

등록 2013.09.04 13:38수정 2013.09.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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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이겠습니다. 2013년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가는 지역은 대구·경북·울산입니다. [편집자말]
"도시 사람들은 참 불쌍하지요. 뭘 먹는지도 모르고, 매일 같은 걸 먹고… 저도 직장 다닐 땐 그랬어요. 귀농 후 가난해지고 나서 알게 된 건 오히려 먹는 음식의 종류가 늘었다는 겁니다. 손수 자연 속에서 기른 귀한 재료들로 만든 음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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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밭에서 김용운씨가 포도를 보며 웃고있다. ⓒ 이정희


지난달 28일 이른 아침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위치한 황간역에서 김용운(56)씨를 만났다. 그의 차를 타고 20여 분 들어가자 그가 귀농해 터를 잡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 금천리 마을이 보였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그는 벌써 밭일을 하고 온듯 보였다. 하루 일과를 몇시에 시작하는지 묻자 그는 "해가 뜨면 일어나 일 나가고, 지면 들어와 잡니다"라고 설명했다. 시간을 숫자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농부의 시계는 숫자가 아닌 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스스로 가난한 농부라 소개한 김씨는 '먹을거리의 뿌리를 찾아 자급자족 생활'을 꿈꾸며 5년 전 귀농을 선택했다. 그는 2008년 퇴직 후, 서울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상주로 내려왔다.

귀농 전 그의 직장은 '땅 밑'에 있었다. 그는 26년간 서울지하철공사 2호선의 승무원으로 근무했다. 반평생 봉급쟁이로 살아온 그는 퇴직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귀농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명예퇴직을 포기하고 '땅 위'로 돌아가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지을 생각이다"


일손을 도울 겸 김씨가 가꾸는 밭을 찾았다. 그는 2000여 평의 밭에 포도, 고추, 배추, 무, 토란, 옥수수, 감자, 감 등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자급자족을 하고 있는 김씨가 이날 거둬들인 작물은 고추와 포도였다. 새빨갛게 익은 고추가 줄기마다 가득했다. 올 여름 고추만 4번째 수확이라는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밭에서 달달한 냄새가 났다. 고추밭 바로 옆, 익을대로 익은 포도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도밭으로 자리를 옮긴 김씨는 바로 포도 한 송이를 따더니 맛을 보라고 권했다. 그는 "크게 농사를 안 짓고, 내가 지을 수 있을 만큼만 한다. 농약도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쓰고, 자연의 순리대로 깨끗이 키웠으니 (안 씻고) 그냥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기농 포도를 수확하고, 박스에 담고, 택배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혼자 전 과정을 처리했다. 그는 "포도 한 송이 참 쉽게 먹지만, 포도를 따기 전까지 30번 정도 농부의 손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건을 넘길 때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지인을 상대로만 판매하고 있었다.

중간 상인에게 안 파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작목반에 소속되면 편하게 팔 수 있지만, 도매업자에게 밭떼기로 팔아 경매로 값을 매길 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크게 농사를 지을 생각이 없다"며 "가난해져도 내 손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지을 생각이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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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밭 김용운씨 소유의 포도밭 ⓒ 이정희


경제적인 여유?... 욕심을 버려야

"귀농하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상생하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목표로 뒀습니다. 근데 쉽지가 않아요. 당장 쌀만 해도··· 여긴 논이 없거든요. 그래서 다들 돈이 되는 포도밭, 고추밭을 합니다.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가난해 질 것을 알고 시작한 귀농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불편함도 있다. 그는 일 년에 2번 작물을 출하할 때만 목돈을 만진다. 그 이외 정기적인 수입은 아내가 책임진다. 현재 아내는 중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그는 "예전에 귀농을 배울 때, 제일 좋은 조건은 한 쪽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이라고 배웠다"며 "둘 다 농사에 매달리면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그는 "정말 고민을 많이 하고 와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도시생활에 지친 마음만 갖고 오기엔 현실적으로 돈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것.

그는 "귀농 후, 3년정도 지나면 아파트 한 채 값을 쉽게 까먹는다"며 "시골이라도 돈 드는 건 비슷하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자금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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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수확 김용운씨가 이날 수확한 고추를 트럭에 옮겨 담고 있다. ⓒ 이정희


경제적 여유 대신 얻은 정서적 안정

김씨는 귀농의 장점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는 점을 꼽았다. 그가 직장을 다닐 당시, 가족들은 서로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각자 시간을 보내는 생활에 익숙했던 김씨네 가족은 귀농 후 자주 다퉜다고 한다. 그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다 보니 계속 마주치면서 갈등이 생겼다"고 말했다. 요즘 그의 가족은 매일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 그는 "귀농 후,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게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하루 종일 혼자서 밭을 가꿨다. 해가 뜨면 일을 하고, 더우면 쉬고, 어둑해지면 일을 정리했다. 심심할 땐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 등을 들으며 소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얼마냐 좋으냐"며 "정년 퇴직의 압박 없는 이 일이 너무 좋다"며 현재 생활에 높은 만족을 보였다.

요즘 그의 걱정거리는 아내의 관절염. 그는 "집사람이 도시에서 고생했었는데 이제야 병이 났다"고 걱정했다. 또한 그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 농사일이 조금씩 힘에 부칠 때가 있다고. 그는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내려온 농촌에서 잘 먹고 안 아프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냐"며 건강 소중함을 강조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에게 농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심이었다. 농사를 계속 짓는 한, 그의 꿈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복합영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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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포장 김용운씨가 포도를 개별포장하고 있다. ⓒ 이정희


#자급자족 #귀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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