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나픽추 정상, 훼손 방지위해 하루 200명만 올라간다

[올라! 남미 페루 배낭여행5] 잉카제국의 공중도시 마추픽추

등록 2013.09.10 16:47수정 2013.09.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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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알려진 마추픽추 전경.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잉카 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알려진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로부터 북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세계의 불가사의로 불리는 마추픽추는 깎아지른 절벽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우루밤바 계곡 위에 있다. 마추픽추는 이 계곡지대의 해발 2280m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마추픽추는 원주민 인디오들의 언어인 케추아어로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으로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일명 공중도시 또는 오랫동안 알 수 없었던 도시여서 잃어버린 도시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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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안의 건축물들.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일단 쿠스코를 출발하여 친체로를 거쳐서 우루밤바와 오얀타이탐보를 지나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가 있는 작은 마을 아구아 칼리엔테에서 하루정도 머물어야한다. 보통 새벽 5시 30분경에 출발하는 기차를 이용하여 마추픽추를 관광하고 당일에 다시 돌아오려면 일정을 빠르게 진행해야한다.


마추픽추에 도착해서는 버스를 타고 꾸불꾸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하는데 우리나라의 보은 속리산 말티재의 길처럼 몹시 휘어진 비포장도로를 올라간다. 버스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우루밤바 계곡의 절벽이 수직으로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볼 수가 있다. 걸어서 올라 갈 수도 있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배낭을 메고 걸어 올라가는 여행자들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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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넓은 광장이며 뒤쪽의 봉우리가 와이나픽추이다.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조금 들어가면 우리들이 사진으로 보았던 그 유명한 마추픽추의 광경을 볼 수가 있다. 정해진 뷰포인트가 있어서 초보자가 사진을 찍어도 훌륭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 계단식 농경지는 잘 정리되어있고 무너진 건축물들도 일부는 복구해 놓았고 지금도 복구하는 곳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신전이며 신전에서 내려다보면 마추픽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추픽추 건너편의 높은 봉우리를 와이나픽추라고 부르는데 케추아어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와이나픽추 정상에서는 마추픽추 전체와 우루밤바 강과 계곡을 전부 내려다 볼 수가 있다. 2011년 현재 와이나픽추는 훼손을 예방하기위해 선착순으로 하루에 200명만 올라갈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 아침에 일찍 도착해야 정상에 올라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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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의 훼손을 막으려고 와이나픽추는 하루 200명만 들어갈 수 있다.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로부터 불과 8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 밀림의 높은 곳에 위치해서 다행히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아 파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2개의 뾰족한 봉우리 사이에 말안장 모양의 지역에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아 오랫동안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발견되지 않았으며 1911년에 와서야 미국 예일대학교의 고고학자 하이람 빙엄에 의해 발견되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 세워진 도시로서 마추픽추처럼 사람의 손이 거의 미치지 않은 채 보존이 되고 발견된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마추픽추의 남겨진 유적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신전 하나와 3000개가 넘는 계단이 있으며 이를 연결한 테라스식 정원으로 둘러싸인 성채가 하나 있다. 건물의 석재가공 솜씨는 다른 잉카 지역에 비해 세련되고 정교하지는 않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며 규모가 크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마추픽추는 1460년경에 세워졌으며 스페인 침략자들이 잉카 제국을 정복할 무렵인 약 100년 후에는 이미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마추픽추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아 폐허가 된 것은 스페인 정복자가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주민들이 어떤 알지 못하는 이유로 전멸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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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나픽추 정상에서는 마추픽추 인근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마추픽추는 수백 년간 잊혔다가 하이럼 빙엄에 의해 밀림 속에서 발견 되었다. 1911년 7월 24일 당시 예일 대학교 강사였던 미국학자 하이럼 빙엄은 이곳 지리에 익숙한 주민을 데리고 이곳을 처음 탐사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더 마추픽추를 탐사하였으며 일생을 마추픽추의 연구에 바쳤다.

발견 초기 빙엄은 이곳이 잉카인들의 탄생지이거나 혹은 처녀 태양 이라 불리던 잉카의 정신적인 신앙 중심지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많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하이럼 빙엄이 이곳을 처음 발견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그전에도 몇몇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던 흔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추픽추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사람은 하이럼 빙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추픽추의 전체 면적 중에서도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비탈진 경사면은 계단식 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도시의 식량자급의 기능을 하였으며 서쪽의 시가지에는 신전과 궁전, 주민 거주지 구역이고 주위를 성벽으로 둘러쌌다.

이러한 오지에 도시를 세운 이유로 학자들은 여러 가지 가설을 내세우는데 잉카인들이 스페인 침략자들의 공격을 피해 산속 깊숙이 세운 도시라고도 하고 군사를 훈련해서 후일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해 건설한 비밀도시라고도 한다. 또한 자연재해, 특히 홍수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라는 학설도 있다.

또 다른 학설로는 이곳이 정복 지역의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시설로 세웠다는 것도 있고 중죄인을 위한 감옥으로 세웠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많은 고고학자들은 마추픽추가 방어 목적의 피난처이기보다는 잉카 제국 지배자의 사유지나 종교적인 피난처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런 판단의 근거로 꼽는 이유는 이 장소가 퓨마의 형상과 같은 잉카의 신앙과 연계한 성스러운 주위 풍경과 관련된 곳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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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를 에워싸고 흐르는 우루밤바강. (2011년 6월 사진) ⓒ 정광주


현지 고고학 관련 연구원들에 의한 현대식 학설에 의하면 잉카제국 수도 쿠스코의 별장이거나 잉카제국이 국가에 필요한 목공과 석조술 등의 기술을 가르치는 현대적 의미의 연수원과 같은 교육시설로서의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마추픽추는 1981년 역사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7년에는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마추픽추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면서 한편으로는 세계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일 년에 거의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고하며 따라서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개발의 유혹이 끊이지 않아 마추픽추의 주변 환경은 날로 파괴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에서 이곳을 위기에 빠진 100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여행은 2011년 6월에 다녀왔습니다.
#마추피추 #페루 #와이나피추 #잉카 #쿠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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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의 니나 또는 슈타인처럼, 여행과 사진 그리고 건축, 머나먼 이베리아 반도의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 수타니파타의 그물에 걸리지않는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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