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조국은 하나"라는 <진짜사나이>, 불편합니다

[주장] 국가에 충성하는 남성이 진짜 사나이라고요?

등록 2013.09.16 11:38수정 2013.09.1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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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사나이>가 주말 저녁시간을 장악한 데 이어 추석까지 넘볼 기세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는 방영 이래 꾸준히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지난 9월 둘째 주 시청률은 14.9%). <진짜 사나이>의 흥행 원인을 따지는 분석 기사는 언론에 쏟아지고 있으나 정작 이 프로그램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결과에 대한 분석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익숙함' 때문이다. 가령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현재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지 인지를 못할 때가 많다. 같은 이치다. 이 방송이 전파하는 프로그램 의도가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군대에서 벌어지는 혹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상황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당하다는 걸까.

군대가 사회의 축소판?

먼저, 프로그램 제작자는 군대를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즉 군대를 대한민국의 '미니어처'로 보는 것이다. 군대의 특수한 위계질서구조가 대한민국 사회의 '미니어처'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군대라는 집단은 전쟁시의 다급한 상황 속에서 일사불란한 분위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명령과 복종이 불가피한 특수 조직이다. 이에 반해 사회는 제작자의 말과는 정반대로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동고동락하며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군대가 아닌 사회 공존의 방법은 명령과 복종·침묵이 아닌 논의를 통한 이해와 포용이다. 제작자의 의도처럼 군대가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그것은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기이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예능을 가미해, 마치 '문제 없는' 사회로 그럴 듯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그럴 듯함은 MBC가 밝혀놓은 프로그램 소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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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진짜 사나이> 프로그램 소개 ⓒ MBC 갈무리


남자 중의 남자, 그 이름은 진짜 사나이

"남자는 군대 갔다 와야 사람이 되는 거 같습니다…. 주위 군대 안가고… 면제나 방위산업체…, 그 외 군대 제대로 안 다녀온 남자들 보면 하나같이 OOO입니다. 딸 낳으면, 정말 군대 안 갔다온 남자는 쳐다보지 말라고 해야겠네요."

지난 13일 진짜 사나이 시청자 게시판에 이아무개씨가 남겨놓은 말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끝날 줄만 알았던 <진짜 사나이>가 사회 전역에 '군대 문화'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도 '향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상 장애인·여성·양심적 병역 거부자·공익 요원 출신 등은 소외된다. 한 여성 시청자는 이번 프로그램 방영으로 '일방적 청자'를 다시 한 번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남자들이 항상 군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할 말이 없어요. 이번 <진짜 사나이> 방영 때도 그랬어요. 아버지랑 친척 오빠가 방송을 보면서 군대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뭐 가만히 듣고만 있었죠. 가끔 '남자들이 군대가서 고생하는 거 여자들이 알아야 한다'부터 시작해 제가 알지 못하는 군대용어가 나오니까 프로그램을 더 몰입해서 보는 것 같아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짜 사나이>는 고강도 훈련을 하는 이기자 수색대대 편을 내보내면서 마초적 남성을 마치 진짜 남성인 것마냥 분위기를 유도한다. 이로써 현역 남성 중에서도 육체적으로 월등하며 명령과 복종에 충실한 남성과 훈련에 낙오한 남성을 다시 한 번 나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이 개성있는 개인들의 공존의 장을 보여주고자 했으나 남성우월주의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사나이'는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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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 손진영씨가 작곡한 <진짜 사나이>라는 노래. 음원으로 제작돼 공중파를 탔다. ⓒ MBC 갈무리


<진짜 사나이> 속 군대는 단순히 국방의 의무를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며 '사나이 중에 사나이'가 되는 공간이 됐다. 즉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해서는 군대를 통해 국가에 충성을 하는 남성이 돼야 하는 것. <진짜 사나이>는 출연자 손진영씨가 만든 노래를 그대로 공중파에 내보내면서 국가에 충성을 다하자고 이야기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역사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독일의 나치 혹은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가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5일 방영분에 '목숨은 하나! 조국도 하나!'라는 자막이 나갔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노골적으로 공중파를 탄 것이다. 명령과 복종이라는 군대의 특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이 만들어낸 '진짜 사나이'는 다소 위험할 수 있다.

다가오는 추석, MBC는 <진짜 사나이>를 특집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이란다. 명절 때 일가친척들은 이 방송을 보며 여성·장애인·양심적 병역거부자 등이 소외되는 군대 이야기로 이야기 장을 펼칠 지 모르겠다. 이 프로그램이 '국가에 충성하는 남성만이 진짜 사나이'라는 등식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진짜사나이 #남성우월주의 #마초주의 #국가주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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