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마을이야기'? 의외로 쉽습니다

[서평] <마을의 귀환>을 읽고

등록 2013.09.18 15:10수정 2013.09.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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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의 금붕어 한 마리를 유난히 아끼는 사람이 있었다. 주위의 다른 금붕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금붕어들이 하나둘 죽어나갔다. 후에 사랑받던 금붕어도 죽어나갔다. 다른 금붕어 시체로 인해 물이 오염돼서였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그렇다. 혹시 우리 중에 공동체니 마을이니 하면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자녀 키우기도 바쁜데, 공부하기도 바쁜데, 무슨 놈의 공동체냐 하실 수 있다. 그런 이야기는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의 금붕어 이야기가 우리들의 정신을 번쩍들게 하리라. 내 자신이 좋으려면, 주변이 좋아야 한다. 주변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주변을 보살펴야 한다. 함께 사는 것이 우리 자신들이 가장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나 자신이 사는 곳이 집이고, 그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된다. 마을공동체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다.

이런 면에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박원순 시장의 한마디는 명언이다. "늘어나는 아동 성범죄, 자살, 빈곤, 청소년 문제에 '마을이 묘약'"이라고 그가 말했다. '마을이 묘약'이란 말은 이 시대의 핵심을 찌른 진단이며, 탁월한 처방이다. 마을을 살리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살리는 일이다.

'집나간 마을'을 돌아오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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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 책 표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펴냄, 2013년 9월 ⓒ 오마이북

책 제목이 <마을의 귀환>(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펴냄) 이다. 마을의 귀환이라? 그럼 마을이 어디 갔다가 돌아왔단 말인데, 마을이 갔다면 도대체 왜 어디로 갔다 왔단 말인가.

마을이란 이 책 프롤로그에도 나와 있듯이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다. 엄연히 우리 농촌에 가면 마을이 있잖은가. 아파트들 중에도 이름이 '개나리 마을, 은하수 마을'인 곳이 있다. 도시거나 시골이거나 어쨌든 사람 사는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 마을일진대, 그동안 우리 눈에 보이는 마을은 있을지언정,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은 어디로 떠났다는 말이다.


우리의 소중한 마을들이 현대화 산업물결, 자본주의 시장체제 등에 휩쓸려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바로 마을이 주는 공동체성이 우리 곁에서 떠났다는 이야기다. 그렇다. 공동체성이다. 한 번 나간 마을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자 뜻있는 사람들이 나섰다. 집나간 마을을 돌아오게 하려고 말이다.

오늘 우리가 이 책 속에서 만날 26개 마을공동체는 그 중 일부 이야기다. 특히 농촌이 아닌 도시에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라 더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동안 공동체라 하면 변산공동체(윤구병) 등과 같은 특별한 공동체를 떠올렸고, 또한 거의 대부분이 도시를 떠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선 바로 우리를 일깨워 준다. 이 책 인터뷰 내용 중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시대 마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생활의 필요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웃들과의 관계망'이라고 답하고 싶다. (중략) 마을이 뭐 별거인가. 애들 내놓고 다 같이 키우며 사는 이야기를 수다로 풀다가 문제가 생기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실행하는 이웃들의 관계망이다.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자! 일단 수다로 마을 하자."

그렇다. 사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생활형 공동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곁에 바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마을의 모습이다. 그래야 마을공동체 만들자는 운동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될 테니 말이다.

다양한 도시형공동체가 하나 가득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마을의 모습을 잠시 살펴볼까.

성미산마을은 나도 견학가본 곳인데, 여기는 공동육아로부터 시작한 마을이다. 재개발 때문에 거기를 지키려고 힘을 모았던 은평구 산새마을. 그 마을 사람들은 소외된 청소년들을 지키려고 마을지킴이로부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파트 사람들이 만든 노원구 청구 3차 아파트, 관악구 임대아파트 공동체 등은 아파트 인구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좋은 롤 모델인 듯하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한 시장공동체도 눈길이 간다. 금천구 남문시장, 강북구 수유마을 시장이 소개되었다. 특히 시장도서관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수유마을시장 사람들이 놀랍다. "상인들이 돈만 알고 무식하다는 편견을 깨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이재권 관장의 말이 뭉클하다.

마을이 감성적으로 정겹게 살아보자는데 그치지 않고, 마을기업을 일구어가는 용산구 용산생활협동조합, 도봉구 목화송이와 서대문구 A카페, 서초구 우리마을카페오공 등은 아주 실속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줬다.

난 이 책에 소개된 마을들 중 가장 흐뭇한 마을의 모습이 '젊은 공동체'로 소개된 마을들이었다. 송파구 함께 웃는 마을공동체 즐거운가, 구로구 구로는 예술대학 등이다. 이들이 홍대에 가서 술을 마시는 대신 지역 재래시장을 돌며 같이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살짝 훔쳐보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이런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두 가지 면에서 아쉽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마을들이 도시형이며, 생활형이라는 점에서 훌륭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아쉬웠다.

하나는 서울에 있는 도시형 마을공동체만 소개 되었다는 점이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춘천 등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도시형 마을공동체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서울은 아무래도 좀 더 진화된 형태의 마을공동체가 구성되기 쉽고, 그 구성원들도 소위 식자층이 많을 수 있다. 좀 더 보편적인 한국형 도시공동체를 모색하려면, 지방에 있는 도시공동체를 소개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또 다른 하나는 17개의 우리나라 도시마을을 소개하는 데 그쳤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의 후반부에 소개된 잉글랜드의 9개 마을들은 나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마을들의 이야기보다 공감대가 약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 대한 집중력을 약하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양한 형태의 도시공동체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몰려 산다는 것을 감안하면 도시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들을 제시한 것은 고맙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들도, 시장사람들도, 아파트 사람들도, 젊은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동체마을의 모습은 우리들의 가까이에서도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이야기임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이 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좀 더 다양한 공동체마을들을 만드는, 그런 씨앗이 될 거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본인도 경기 안성시 흰돌리마을에서 녹색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을 하면서, 농촌형 공동체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 개인적으로도 뜻 깊은 책이었다.

마을의 귀환 -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지음,
오마이북, 2013


#마을의 귀환 #도시형공동체 #공동체 #마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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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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