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탕에 담긴 따뜻한 마음

충북 실버문화예술제를 앞두고

등록 2013.09.30 20:58수정 2013.09.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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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일입니다! 오전 9시 30분에 예술의 전당 로비로 오세요. 몸 따스하게 목은 특별히 더 따스하게 하고 내일 만나요!"


오늘 이렇게 일일이 문자메시지를 어르신들에게 날렸다.

드디어 내일이다. 음악반이라고 하면 대중가요 노래반 밖에 없던 이 곳에 와서 새로 만든 음악반들 중에서 우크랠래와 아코디언 그리고 크로마하프와 합창반이 내일 청주 예술의 전당 대강당에서 충북도내 30개 팀들과 경연형식의 실버문화예술제를 펼치는 날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있는 것을 좀 더 보완해서 만들어가는 기쁨도 크지만 악기 하나하나와 사람 하나 하나를 모아서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정성과 보람의 크기를. 아마 농사로 치면 황무지를 개간해서 밭을 만들어 좋은 유기농작물을 일구어 나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 시작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다. 개개인의 작은 목소리가  올바른 음정과 발성화 호흡으로 모여서 아름다운 합창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이러한 작은 마음들은 기획자인 나와 음악 교육들을 희망한 암투병의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교통비 밖에 안되는 강사비로 정성껏 지도하는 강사와 지역안에서의 자영업자들의 마음들도 포함돼 있다.

1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오전 9시 30분에 모여서 오후 6시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종일 지내야 한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김밥이나 빵만으로 점심을 떼울 수 없어서 인근의 식당을 며칠 전 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 사이 밥값이 참 많이 올랐다. 5000원 하던 곳은 거의 찾기가 힘들고 갈비탕 하나도 8000원은 내야 한다. 가마솥 청국장집도 거의6000원, 7000원이다.


이전에 거리에서 하는 나눔공연때의 요즘 유행하는 오징어볶음과 돈까스도 들어가는 컵밥 도시락을 시켰다가 어르신들이 밥알이 부드럽지 않아 목에 안 넘어간다고 체한 것 같다고 하소연해서 급체약도 사드리고 진땀 뺐던 적도 있다. 진밥을 잘 드시는 어르신들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맞춤해 밥이 꼬들꼬들하게 돼서 그랬는지 쌀이 좋지 않아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3년 전에는 100여 명의 어르신들의 점심을 인근의 할머니들이 해주는 보리밥집에 외상으로 먹었다가 다행히 우수상으로 나온 상금으로 딱 맞게 갚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보리밥은 먹고 두 시간이 지나니 어르신들이 금새 배가 고파 정작 대회 때는 기운이 없었다고 해서 그 다음부터는 하지 않았다.


작가들과 삼계탕집에 가서 밥을 먹으러 갔다. 요즘은 삼계탕도 1만2000원이나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찹쌀밥이 목에 잘 넘어가고 삼계탕도 육질이 부드러웠다. 혹시나 싶어서 주인에게 삼계탕을 반계탕으로 해서 100인 분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반계탕은 7000원이라고 했다.

내가 확보한 예산은 40만 원이 채 안되고 자원봉사자들까지 합하면 추가될 수 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선선히 웃으면서 걱정마시라고 넉넉히 담아서 현장에서 끓여서 찹쌀밥과 함께 해준다고 하셨다. 아마 그 분은 남는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밑지는 장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따스한 마음을 받은 100명의 어르신들은 내일 대회를 잘 치를 것이고  상부상조라고 나를 비롯한 동료들과 자원봉사자와 100명의 어르신들은 그 삼계탕집을 한 동안 이용할 것이다,

나는 어르신들이 연주하는 여러 곡목들을 모두 외우고 있다. 비록 나는 부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합창단은 가곡 산유화를 할 것이고 크로마하프는 <새색시와 섬집 아기>를 메들리로 연결해서 연주할 것이다. <열일곱 사이에요>의 작곡가 편곡한 곡을 내가 새로 개사했다.

내일 나는 어르신들의 의상도 체크하고 음료수와 보면대와 악기와 식사와 리허설 등 공연에 관련한 제반 사항을 모두 담당한다. 듣지 못하는 청각 대신 오감과 육감과 영감까지 모두 총동원해서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르신들의 표정하나 하나 눈빛 하나 하나 마음에 담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 눈빛에서 적당한 긴장이 아닌 위축한 긴장이 보이면 나는 한껏 망가져서 웃음폭탄을 아낌없이 날려드릴 것이다. 대회라는 경연의 형식으로 다른 팀과 비교해서 긴장하기보다는 그저 즐겁고 평안하게, 주어진 이 금쪽같은 순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 있는 그대로 꾸밈없는 질박함을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것이 최선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축제가 항상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잎이라면 그러한 기회가 바로 곱게 물드는 단풍같은 때이니까.

벌써 기업의 페스티벌과 충북도문화제의 개막공연을 비롯해 여기 저기서 공연 의뢰가 들어온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따스한 마음이 제공하는 반계탕을 먹고 힘을 내고 내일 공연을 잘 치르면 모레도 안녕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 또한 막연하지 않은 친근한 멋진 내일이 되어서 다가올 것이다. 보이지 않게 성원해주는 그러한 이웃들이 있어서 비가 내려서 온 삭신이 아파 약을 한 움큼 틀어넣고 움직이는 오늘이지만 기쁘고 감사하다.
#실버문화예술 인식개선 #노인인식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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