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 오른 다섯 살 막내, 참 영악하네요

추석 연휴에 떠난 제주도 여행... 가족이 함께 해 행복합니다

등록 2013.10.01 11:20수정 2013.10.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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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생존을 위한 날개짓이 힘차고 아름답습니다. 아흔 아홉개 산을 오르고도 남을 힘입니다. 백록담 내려오다 만난 생명입니다. ⓒ 황주찬


항상 입이 방정입니다. 9월 초 아내가 느닷없이 제주도 푸른 바다와 한라산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다더군요. 곧바로 대답했죠. 추석에 쉬는 날 많으니 온 가족이 한라산에 오르자고 말이죠.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 여행. 푸른 바다는 배멀미 하느라 쳐다만 봐도 속이 뒤집혔고 한라산은 막내를 목말 태우고 오르느라 초주검이 됐습니다.    


지난 9월 20일 새벽 5시. 아내는 주먹밥을 만들고 세 아들은 얼굴 씻느라 부산합니다. 고요한 제주 붉은오름자연휴양림 한 곳이 소란스럽습니다. 한라산에 올라갈 준비하느라 저희 가족이 일어났습니다. 창밖을 보니 서쪽하늘에 떠 있는 달이 참 예쁩니다. 새벽부터 요란 떤 덕분에 숙소를 일찍 나서게 됐습니다.

한라산 등산 시점인 성판악 탐방안내소에 닿으니 어둠이 조금 사라집니다. 시간은 오전 6시 24분. 해발고도 800미터인 성판악 탐방로에서 고도 1950미터인 한라산 정상 백록담까지 9.4킬로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정상까지는 4시간 30분이 걸립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백록담 못 미쳐 진달래밭대피소가 있는데 낮 12시 30분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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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 붉은오름자연휴양림입니다. 이곳 예약하기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약한 보람이 있었는데 세자녀 이상은 방값이 절반으로 할인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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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길 돌을 쌓아 멋진 길을 만들었습니다. 조용한 숲속에 예쁜 집들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성판악 탐방로가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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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가는 길 백록담 오르려면 진달래밭 대피소를 낮 12시 30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통과해야 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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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밭 대피소 성판악에서 백록담 중간쯤에 있는 속밭 대피소입니다. 이곳 그냥 지나쳤습니다. 쉬고 싶었지만 '12시 30분' 이라는 시간이 마음을 바쁘게 만들더군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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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밭 대피소 진달래밭 대피소 모습입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해서인지 대피소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헌데, 내려오는 길에 보니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더군요. ⓒ 황주찬


영악한 막내, 혼자 힘으로 한라산 올라온 기특한 아이가 됐습니다

제 시간에 통과 못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죽을 힘 다해 올라온 수고가 물거품됩니다. 백록담은 구경도 못합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붙잡고 통사정해도 소용 없습니다. 하여, 속밭대피소는 그냥 통과합니다. 물 귀하다는 한라산에서 시원한 생명수 콸콸 쏟아지는 샘터도 눈 딱 감고 지나갑니다. 그렇게 4시간을 걸으니 오전 10시, 한라산 정상이 보입니다.

정상을 100미터 남겨둔 지점, 숨이 턱에 차오릅니다. 다리는 이미 풀렸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은 일찌감치 정상에 올랐습니다. 다람쥐처럼 산을 올라 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더군요. 막내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냐고요? 제 어깨 위에서 달게 자고 있었습니다. 야속한 막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땅에 내려놓으니 이 녀석, 씩씩하게 계단을 잘도 올라갑니다.


언제 목말 타고 잠잤냐는 듯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영악한 모습입니다. 이런 막내 보고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칭찬을 퍼붓습니다. 다섯 살 꼬마가 높은 산을 오르니 신기한가 봅니다. 막내는 졸지에 혼자 힘으로 한라산 걸어 올라온 기특하고 대단한 아이가 됐습니다. 그 꼴 보니 제 어깨가 더 아픕니다. 머리 위에서 재잘대며 떠들기만 했어도 덜 힘들었을 텐데 내리 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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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을 향해서 저 높은 곳을 향해 막내가 힘차게 계단을 오릅니다. 이곳까지 자면서 왔습니다. 공짜로 산에 오른겁니다. 영악한 모습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막내에게 칭찬을 퍼붓습니다. 다섯 살 꼬마가 높은 산 오르니 신기한가 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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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물이 많이 고여 있을 줄 알았는데 작은 웅덩이가 있더군요.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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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 백록담에 고여 있는 물입니다. 저 물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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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앞으로 가족이 산에 올라 사진 찍을 기회가 아흔 아홉 번 남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산을 다섯 명이 함께 오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약속 꼭 지키라며 다짐을 놓더군요.저는 손으로 방정맞은 입술을 아흔 아홉 번 때렸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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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한라산 백록담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입니다. 7시간 30분을 걸었는데 힘든 기색이 별로 없습니다. ⓒ 황주찬


입방정 떨어 오른 한라산, 가족이 그곳에 있으니 행복합니다

막내는 산 중턱에서부터 잠만 잤습니다. 결국, 공짜로 산에 오른 게지요. 덕분에 저는 어깨 위 막내 균형 잡으랴 돌부리 피하랴 한바탕 서커스 공연을 펼치며 산에 올랐고요. 씩씩하게 계단 오르는 막내를 쳐다보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고개 돌리니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제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니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다시 힘을 내 발걸음을 옮깁니다. 정상이 코앞인데 포기하면 안 되죠. 신나게 산에 오르는 막내 앞세우고 정상에 오르니 오전 10시 18분, 바람은 찬데 햇살은 따갑습니다. 그렇게 세 아들과 한라산에 올랐습니다. 입방정 떨어 무모하게 오른 한라산이지만 가족 모두 그곳에 있으니 참 행복하더군요. 물이 바짝 말라 웅덩이가 된 백록담 배경으로 가족사진 한 장 찍고 내려왔습니다.

산을 내려오면서 아내에게 또 입방정을 떨었습니다. 앞으로 가족이 산에 올라 사진 찍을 기회가 아흔 아홉 번 남았다고요.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산을 다섯 명이 함께 오르기로 말해버렸습니다. 아내가 너무 좋아하더군요. 그 약속 꼭 지키라며 다짐을 놓았습니다. 순간 저는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방정맞은 입술을 아흔 아홉 번 때렸습니다. 그나저나 목말 탄 막내가 졸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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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노루(?) 백록담 내려오는데 풀숲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한라산 노루(?)로 보이는 짐승이 저를 쳐다보더군요. 마치, 고생많이 했다는 표정입니다. ⓒ 황주찬


#한라산 #백록담 #성판악 #제주도 #붉은오름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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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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