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오토바이, 자전거도 없는 섬이라고?

[복건성 문화유산 이야기 ⑬] 고랑서 최고봉 일광암

등록 2013.10.02 15:29수정 2013.10.0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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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동천에 있는 일광암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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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암 ⓒ 이상기


숙장화원을 나온 우리는 일광암(Sunlight Rock)에 가기 위해 언덕 쪽으로 올라간다. 일광암은 고랑서의 랜드마크로 용두산 정상에 있다. 그렇지만 일광암은 1900년 전후 서양 사람들에 의해 낙타산(駱駝山: Camel Rock)으로 불렸다. 그것은 바위의 모양이 낙타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랑동천, 일광암사, 용두산채(龍頭山寨) 유지(遺址)를 지나 일광암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그런데 고랑서 최고봉인 일광암의 높이가 92.7m 밖에 되질 않는다.


우리는 먼저 고랑동천의 입구에 있는 일광암사로 올라간다. 이 절은 1506년부터 1521년까지 지어졌다. 당시 이름은 연화암(蓮花庵)이었다. 이 절은 1596년 다시 지어졌고, 이름이 일광암으로 바뀌었다. 이 절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60년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정과법사(正果法師)가 다시 지었다. 현재 이 절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 미륵불을 모신 전각 등이 있다. 그런데 전각의 일부가 굴 속에 들어간 일종의 석굴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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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암사 ⓒ 이상기


일광암사라는 현판이 있는 문을 들어가니 비교적 좁은 공간에 여러 채의 당우가 자리잡고 있다. 절 뒤로는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일광암사는 면적이 2856㎡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우들이 가까이 연해 있거나 마주보고 있다. 이 절은 문화혁명기간에 고랑서 전기회사의 사옥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1983년 다시 옛 절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절 옆에 있는 암벽에는 고랑동천(鼓浪洞天), 노강제일(鷺江第一), 천풍해도(天風海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각자가 고랑동천이다. 고랑서의 선경이라는 뜻으로 대략 400년 전에 새겨졌다고 한다. 노강제일은 이곳이 노강 제1경이라는 뜻이다.

노강은 하문과 고랑서 사이의 해협을 말한다. 이 글자는 대략 100년 전에 새겨졌다. 천풍해도는 '하늘엔 바람이 불고 바다에는 파도가 친다'는 뜻이다. 옆에 새겨진 중화민국 4년 6월이라는 간기를 통해 1915년 글자가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용두산채 유지에서 쉬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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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서에 있는 정성공 동상 ⓒ 이상기


우리는 절의 한쪽에 있는 황암(晃岩)을 지나 일광암 쪽으로 올라간다. 중간에 용두산채 유지가 있다. 용두산채는 청나라에 저항하면서 명나라를 다시 세우려한 정성공(鄭成功: 1624-1662) 장군이 이곳 용두산에 만든 요새다.

정성공은 청나라 군대에 밀려 1650년 민남(閩南) 지방까지 퇴각했다. 그는 하문에 근거지를 두고 국토의 회복을 노렸다. 1658년에는 17만 군대를 이끌고 장강(長江)에서 청군과 싸웠으나 크게 패했다. 1659년에도 난징(南京)까지 공격하는 과감함을 보였으나 대패했다.

그리고 1660년 하문 해역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중국 본토에서 세력을 잃고 타이완으로 건너간다. 그러나 2년을 버티지 못하고 1662년 2월 1일 청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는 6월 23일 대만에서 죽었고, 20여년이 지난 1683년 대만마저 청나라에 함락되었다. 그러므로 하문의 용두산채는 정성공이 만든 대륙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이곳에는 높이 174㎝ 폭 74㎝의 문이 남아 있다. 문안으로 들어가면 정성공의 지휘부였던 완재정(宛在亭)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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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채 유지 ⓒ 이상기


이곳에는 또한 주민들이 피서를 하던 고피서동(古避暑洞)이 있다. 고피서동은 바위 아래 있어 굴 같기도 하고 통로 같기도 하다. 그러므로 바위 아래로 그늘이 생기고 그 사이로 바람이 통해 항상 시원하다. 그래서 더위를 피하는 쉼터가 되고 있다. 우리도 이곳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바위의 바깥벽에는 고피서동이라는 붉은 각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씨는 대만 출신의 유명한 시인 시사결(施士潔)이 100년 전에 쓴 것이다.

일광암에서 바라 본 고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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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암 북쪽 조망 ⓒ 이상기


고피서동을 지나 일광암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위에 난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 계단을 올라가기가 힘이 들 정도다. 힘겹게 일광암 정상에 올라가 보니 추락을 막기 위해 철제 난간이 쳐져 있다. 나는 이곳을 한 바퀴 돌면서 고랑서의 모습을 살펴본다. 고랑서는 면적이 1.84㎢, 섬 둘레가 8㎞인 작은 섬이다. 내가 올라 있는 일광암의 높이도 100m가 안 된다. 그렇지만 그 조망이 일품이다.

남쪽으로 숙장화원과 해수욕장이 아주 가까이 보인다. 숙장화원은 고딕에서 바로크까지 서양의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다. 색깔은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붉은색이다.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까이 풍금박물관과 하문박물관이 들어있는 팔괘루(八卦樓)가 있다. 팔괘루는 건물의 상층부에 팔각형 돔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섬 바깥으로는 멀리 해창대교가 희미하게 보인다. 해창대교는 하문시의 호리구와 해창구를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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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암 동쪽 조망 ⓒ 이상기


동쪽으로는 이청천(李淸泉) 별장과 공작원(孔雀園) 등이 눈에 띈다. 그들 바깥으로 노강이 흐르고 노강에는 하문과 고랑서를 연결하는 페리들이 끝없이 왔다 갔다 한다. 그 너머가 하문시 사명구로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서쪽으로는 숲이 많아 건축물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 그 중 금원(琴園)이 가장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육지인 해창구가 보인다. 해창구는 공업지구와 주택지구로 새로 개발되고 있는 일종의 신도시다. 

나는 이제 일광암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다. 나는 올라온 길과 다른 길로 내려간다. 그런데 내려가 보니 길이 케이블카 타는 쪽으로 이어진다. 그리로도 내려갈 수 있지만 일광암에 오르지 않은 우리 일행이 일광암사 아래서 기다리기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다시 길을 올라와 일광암사 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간에 망고 주스를 한 잔 사 먹는다. 날씨가 더운데다 바위에 오르느라 땀이 많이 났기 때문이다.  

고랑서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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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서의 전동차 ⓒ 이상기


다시 숙장화원 앞으로 내려온 우리 일행은 전동차팀과 도보팀으로 나뉘어 고랑서 선착장으로 향한다. 이곳 고랑서에는 주민들에게 차량이 허용되지 않는다. 차량뿐 아니라 오토바이, 자전거도 없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관광용 전동차다. 그것은 섬이 워낙 작으면서도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 좁은 공간에서 차를 운행할 필요도 없고, 주차장을 마련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구급차인 앰뷸런스는 허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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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서의 앰뷸런스 ⓒ 이상기


나중에 전동차를 타고 간 우리 일행에게 들은 바로는 이날 고랑서에 들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통차 운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전동차는 사람이 다니는 좁은 골목을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비켜주지 않으면 통행이 불가능하다. 전동차는 원래 선착장에서 출발, 섬 외곽의 도로를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일주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동쪽의 호월원, 남쪽의 숙장화원, 서쪽의 금원, 북쪽의 조화산 공원과 연미산을 지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전동차를 타고 섬의 동남쪽 부분만 보았다고 한다.

나는 가이드에게 숙장화원으로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걸어서 선착장으로 가겠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중간에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시간도 부족하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별 수 없이 그를 따라가면서 길과 건축물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그러다 천주당 앞에서 나는 용두로 쪽으로 접어든다. 그곳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기념품점과 음식점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을 부르는 호객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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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물 음식 ⓒ 이상기


 
그리고 이곳이 바닷가여서 그런지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불에 구워져 양념을 한 조개, 굴, 가리비, 게가 정말 먹음직스럽다. 대만식 음식을 파는 곳도 있고, 국수를 파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곳 고랑서에서는 외국인을 별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이곳이 하문사람들이 주말에 즐겨 찾는 오락과 휴식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한 신혼부부들이 웨딩촬영을 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나는 길을 걸어 다니면서 너덧 쌍의 신혼부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해안도로를 나와 선착장으로 간다. 그런데 우리 일행 중 하나가 아직 오질 않았다. 알고 보니 일광암을 내려온 다음 인원 확인을 제대로 안 해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다행히 핸드폰 통화가 이루어져 그가 숙장화원 근방에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지 가이드가 급히 그를 데리러 갔고, 그 때문에 30분 이상 일정이 지체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해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는 12시 40분이 되어 하문으로 나가는 배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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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서의 상징 일광암과 팔괘루 ⓒ 이상기


하문으로 나와서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관광버스가 하문선착장 부근에는 주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에 체리도 사 먹고 주변에 있는 조형물도 보면서 기분 좋게 걸어간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계획보다 조금 시간이 늦어졌다. 그렇지만 오후 4시 20분발 인천공항 비행기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공항이 하문섬 내에 있기 때문이다. 공항의 이름은 하문고기국제기장(厦門高崎國際機場)이다. 기장은 공항의 중국식 표현이다.

이제 2시간 40분 후면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여행에 너무 몰두해서 인지 점심을 먹자 맥이 탁 풀린다. 이젠 모든 걸 시간에 맡기고 싶다. 정말 케세라 세라다. 그렇게 순식간에 닷새가 지나갔다. 그 이유는 여행 일정이 너무 타이트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회에 답사를 종합하면서 타이트한 답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토루에 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또 한 가지 무이구곡가가 조선의 구곡가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일광암 #일광암사 #용두산채 #정성공 #고피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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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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