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의 뼈가'...인근 주민도 몰랐던 5번째 구덩이

[공주 살구쟁이 유해발굴 현장 셋째날] 훼손 정도 심해 "너무 얕게 묻혀서..."

등록 2013.10.18 18:50수정 2013.10.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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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머리뼈와 탄피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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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와 뒤엉켜 있는 사람의 뼈 ⓒ 심규상


5번째 구덩이 속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17일 오후 4시 20분경. 충남 공주 왕촌 살구쟁이 유해발굴 현장은 스산한 바람결까지 다해 을씨년스러웠다.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한 움큼도 되지 않았다. 싸늘하면서도 눅진한 습기가 살결을 휘감았다.

10여 명의 사람들이 구덩이 안(가로 10m x 세로 20m)을 분주히 오갔다. 유해발굴 3일째. 첫 날은 개토제를 여는데 썼으니 정확히 유해발굴 작업 이틀째다. 발굴 단원들과 눈인사를 건넨 후 구덩이 안으로 얼른 시선을 옮겼다.

구덩이 안으로 내딛던 발이 순간 멈칫 했다. 사람의 머리뼈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사람의 뼈다. 다리뼈, 골반뼈…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두개골은 깨진 유리처럼 조각 나 있다. 치아는 턱뼈가 녹아 내려 옥수수 씨앗을 뿌려 놓은 듯 흩어져 있다.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뼈가 대부분이다. 조심스럽게 머리뼈로 보이는 유해를 들어올렸다. 힘없이 또 부서져 내렸다. 64년(1950년 7월 희생)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감안하더라도 풍화정도가 너무 심했다.  

심하게 훼손된 유해 "너무 얕게 묻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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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각 흩어져 있는 유해. 구덩이 경사가 심해 유해가 흙더미와 함께 쓸려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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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유해. 심하게 풍화돼 있다. ⓒ 심규상


오년 전 일이지만 당시 이 곳 부근에서 발굴된 유해는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얕게 묻혔어요. 보세요. 위쪽 흙은 누렇고 아래쪽 흙은 검죠. 누런 흙이 땅의 껍질이고 검은 흙이 유해가 묻혀 있는 속 땅인데 누런 흙이 거의 없어요. 흙을 제대로 덮지 않은 거죠. 몇 십 센티 밖에 되지 않아요. 풍화속도가 빨라 유해상태가 좋지 않은 겁니다."(박선주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총살 후 시신 위에 흙을 덮는 일마저 건성으로 한 것이다. 발굴 작업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유해가 드러난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여러 사람의 뼈가 뒤섞여 있다. 구덩이를 대충 판 데다 경사가 심해 유해가 흙더미와 함께 아래쪽으로 심하게 쓸려 내려갔기 때문이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게 또 있다. 탄두와 탄피다. 녹이 잔뜩 슨 탄창도 드러났다. M1아니면 카빈이다. 이는 가해자가 공주 CIC분견대, 헌병대, 경찰 등 군인과 경찰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 9일께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

M1과 카빈 탄두 vs. 검은 혹은 흰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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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유해. 흙을 제대로 덮지 않아 심하게 풍화돼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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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와 뒤엉켜 있는 유해 ⓒ 심규상


희생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단추도 나왔다. 몇 개는 검은 색이고 몇 개는 흰색이다. 검은 단추는 공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들의 수의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흰색 단추는 민간인 신분임을 말한다.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과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범 등이 함께 총살됐음을 말해준다.

"이 골반 뼈를 보세요. 생김새로 볼 때 남자 뼈입니다. 나이는 치아 마모상태 등을 좀 더 봐야 알 수 있어요."(박선주 명예교수)

구덩이 중간쯤에 있는 유해는 나무뿌리와 뒤엉켜 사람의 뼈와 나무뿌리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 송장(죽은 사람의 몸뚱이) 거름을 먹고 자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나무에서 신성이 느껴졌다.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사를 반복한다면 희생자 중 일부는 주변 나무로 윤회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몰랐던 유해 존재 알려준 나무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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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희생자의 치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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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살구쟁이 유해발굴 현장 ⓒ 심규상


감춰져 있던 유해의 존재를 인간 세상에 알린 것 또한 나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곳 인근 야산기슭에서 모두 4개의 구덩이에서 317구의 희생자 유해를 수습했다. 암매장지 위치를 알려준 인근마을 주민도 5번째 구덩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영원히 땅 속에 묻힐 뻔한 망각의 역사를 나무뿌리가 일깨워 준 셈이다.

당시 유해 발굴도중 발굴 예정지 밖에서 굴착기로 배수로를 정비하던 중 나무뿌리에 사람의 뼈가 엉겨 붙어 드러났다. 조사결과 배수로 위쪽에서 다수의 사람의 뼈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5번째 구덩이에 묻힌 유해발굴은 이렇게 시작됐다.

"약 80~90여구의 유해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가 와도, 휴일에도 발굴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유해발굴 결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는 23일 오후에 할 예정입니다."(박선주 명예교수)

내주 중 최소 80여 명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살아남은, 혹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어떤 기억을 되살리려는 걸까.
#공주 왕촌 #살구쟁이 #유해발굴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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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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