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로 즉위한 황제는 왜 3년 만에 자결했을까

[서평] 현실 정치에 빗대어 읽은 <진시황 강의>

등록 2013.10.23 14:44수정 2013.10.2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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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지은이 왕리췬┃옮긴이 홍순도·홍광훈┃펴낸곳 김영사┃2013.10.7┃2만 2000원 ⓒ 김영사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황제에 즉위한 사람들은 제 발이 저리기 때문에 자신의 정당성을 어떻게 해서든 증명하려고 합니다. 이 합법성을 증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철저하게 이전의 원칙과 규칙에 따르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 되겠습니다. 정치적 업적을 이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호해는 황제 계승 원칙과 규칙을 위반해 황제가 됐습니다, 이건 아무리 그가 황제라도 변조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따라서 호해는 정당한 경로로, 이를테면 원칙과 규칙에 의거해 자신이 합법적 황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 <진시황 강의> 595쪽


중국 진나라에 호해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사인조차 불분명하게 죽어간 진시황제의 아들이며 진나라 이세 황제입니다. 호해는 진시황제의 맏아들도 아니고 황제의 지위를 적법하게 물려받은 황제도 아닙니다.

한 내관의 꼼수로 아주 부적법하게 즉위한 황제입니다. 황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20여명의 누이와 형제까지 죽이지만 황제에 오른 후 3년 만에 자결하는 것으로 그 인생을 마감합니다.

호해를 즉위할 수 있도록 만든 건 진시황제를 모시던 조고라고 하는 내관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진시황제는 불로장생을 꿈꿨습니다. 열세 살 때 왕위에 오른 진시황은 중국 최초로 통일을 하고, 문자와 제도를 통일하고 신화와 같은 업적도 많이 남겼습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알려진 역사적 만행도 있었습니다.

진시황은 49살이 되던 해 다섯 번째 순유를 떠납니다. 순유 중 갑작스레 병이 들자 맏아들 부소에게 편지를 씁니다. 진시황은 죽고 이 편지는 내관이었던 조고에 의해 부소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주 중요한 정보를 움켜쥐고 있던 조고의 음모와 계략으로 부소는 자살을 하게 되고 순유를 따라나섰던 어린 호해가 황위에 즉위하게 됩니다.

호해는 황위에 오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조고라는 내관, 옥새를 관리하고 정치권의 생리를 세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정치모리배에 의해 아주 부적법하게 황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러나 호해는 승상이 된 조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역사는 이래서 무서운 것인가 봅니다. 수천 년 전에 벌어졌던 정치적 음모와 상황들이 시대와 형식과 방법과 버전을 달리해 오늘날 우리 역사에서 재현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진나라 역사와 진시황 일대기를 대하드라마처럼 풀어낸 <진시황 강의>

<진시황 강의>(지은이 왕리췬, 옮긴이 홍순도·홍광훈, 펴낸곳 김영사)는 진나라 역사에서 주봉(主峰)처럼 우뚝 선 진시황을 중심으로 해 진나라(기원전 1106~376) 역사를 주맥도(主脈圖)를 그려 나가듯이 풀어나갑니다. 

망망대해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닷물도 대하(大河)로 흘러드는 샛강, 샛강으로 흘러드는 계곡, 계곡으로 흐르고 있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게 되면 반드시 수원지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듯이 조상 없는 후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시황제라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인물이 아닙니다. 진시황에게도 부모가 있었고 조상이 있었습니다. 진시황이 진나라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루아침에 갑작스레 성사된 것이 아닙니다.

진시황은 진나라의 왕으로는 36번째 왕입니다. 진시황이 왕의 직위에 오르기 전에 진나라에는 이미 35명의 왕이 있었고 진나라의 역사 또한 600년 가까이 됩니다.   

책에서는 진나라 역사에서 살펴봐야 할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사건과 업적들이 대하를 이루는 물결처럼 도도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어느 왕이 펼쳤던 정치적 지략과 용인술 등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민심을 얻은 지도자는 흥하고, 민심을 이반시키는 지도자는 망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해 보이고 있습니다. 왕위에 오른 영정(진시황)이 주변 육국(한나라, 조나라, 위나라, 초나라, 연나라, 제나라)을 점령하거나 굴복시키며 통일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도자의 덕목과 최고 권력자의 용인술 등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을 종주하던 느낌처럼 진나라 역사 종주하는 느낌

10년 전쯤, 화엄사에서 출발을 해 노고단, 반야봉, 삼도봉 등을 지나 천왕봉엘 올랐다 중산리 쪽으로 하산을 하는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같은 천왕봉이지만 천왕봉만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에서 오르는 천왕봉과 지리산 종주를 목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오르는 천왕봉은 느낌도 다르고 의미도 다릅니다.

진시황의 일대기만을 아우르는 내용을 천왕봉만을 목적으로 하는 등산에 비유한다면 <진시황 강의>에서 풀어내고 있는 내용들은 지리산 종주에서 만나는 지리산과 천왕봉엘 오르는 기분입니다.  

산하로 펼쳐지지만 결국은 천왕봉으로 모아지는 지리산 산맥들처럼 진나라 역사 또한 700여년에 걸쳐 이어지지만 결국 진시황이라고 하는 주봉으로 드러납니다. 잔뿌리 같은 역사, 샛강처럼 흘러드는 게 역사이지만 역사는 냉정하고 민심으로 그려지는 기록입니다.

최초의 황제였으며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마흔아홉이라는 나이에 졸지에 죽습니다. 권력에 탐욕스럽고 정치 속성을 잘 아는 조고와 몇몇 정치모리배에 의해 아주 부적법하게 등장하는 권력은 피붙이조차도 주살하는 역사적 패륜도 서슴지 않지만 얼마가지 못해 스스로 무너집니다.

이세는 내전(內殿)으로 들어와 그에게 "그대는 왜 나에게 진작 말을 하지 않아 일이 이 지경이 되게 만들었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환관이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폐하, 신은 감히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진즉에 말했다면 이미 폐하에게 죽임을 당했을 겁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살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세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 <진시황 강의> 627쪽

부적법하게 즉위한 이세(호해), 20명이나 되는 누이와 형제들을 주살한 호해는 즉위 3년 만에 자결을 합니다.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진나라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폭정, 왜곡과 소통부재, 공포정치가 낳은 폭정의 결정체입니다.

어느 날, 승상이 된 조고는 자신이 부적법하게 즉위시킨 이세 앞에 심복을 시켜 사슴을 몰고 나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바른 말을 하는 사람,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 둘 죽여 버리는 공포정치를 펼쳐갑니다. 왜곡과 침묵, 일방적 강요와 소통부재, 죽음을 두려워하게하는 공포를 정치 수단으로 하지만 결국 이런 정치는 만인지상이었던 이세조차도 자살하게 합니다.

자신의 모략으로 즉위시킨 호해조차도 자살케 한 조고는 다시 진왕(자영)을 왕으로 즉위시키지만 결국 진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삼족까지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 조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진왕 또한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망국 군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진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민심이 등을 돌리는 권력은 반드시 무너지는 게 역사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를 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왕왕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라는 말을 일찍이 했습니다. 조고는 음모라는 바퀴를 열심히 굴렸습니다. 자신이 닦아놓은 피비린내 나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를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음모를 이용해 간사스럽게 행동했습니다. 주위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사리분별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이 하늘로 치솟게 되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결과적으로 그의 육신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린 심연을 파는 것과 하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계략을 짜기 위해 너무 과도하게 머리를 굴릴 경우 반대로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주고는 이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몸을 영원히 회복하지 못할 치욕의 기둥에다 박아버렸습니다. - <진시황 강의> 643쪽

어느 역사, 어느 나라, 어느 정치에서도 그들이 성공하고 흥할 수 있던 건 민심이 따라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어떤 이유보다도 민심이 등을 돌리는 민심이반이 원인의 으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시황 강의>를 끝까지 읽고 난 기분은 풀코스로 잘 차려진 정식을 아주 푸짐하게 먹고 난 다음의 포만감입니다. 그러면서도 과식으로 인한 불편함처럼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역사에서 역사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몇몇 얼굴들이 곳곳에서 어른거렸습니다. 부하가 쏜 흉탄에 죽어간 어느 대통령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최측근에서 정보와 권력을 농단하던 어느 실장의 얼굴이 어른댔습니다.

이들의 얼굴이야 이미 지나간 얼굴이니 마음까지 불편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얼굴들이 조고의 모습과 진나라 정치를 농단하던 정치 모리배의 모습에서 일그러지며 덧씌워지고, 덧씌워지며 어른대고 있으니 이래서 역사는 무섭고, 무서운 역사가 반복되며 재현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가슴에서 돌고 돕니다.
덧붙이는 글 <진시황 강의>┃지은이 왕리췬┃옮긴이 홍순도·홍광훈┃펴낸곳 김영사┃2013.10.7┃2만 2000원

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김영사, 2013


#진시황 강의 #홍순도 #홍광훈 #김영사 #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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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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