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이라는 영구기관... 침묵하면 안 바뀐다

[서평] '정당한 불평등'이 거짓임을 꼬집는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등록 2013.10.24 11:44수정 2013.10.2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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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만하니까, 받았겠지."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억울하면 대기업 임원이 되는 수밖에."

노동자 평균 연봉보다 삼성전자 임원이 145배나 더 받는 게 불평등하지 않느냐고 묻자, 친구들이 내놓은 답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은 지난 7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자 평균 연봉은 2012년 기준 3600만 원 정도지만, 삼성전자 임원 평균 연봉은 52억 원에 이르렀다는 내용이다.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니 대기업 임원이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고 친구들은 입을 모았다. 시장경제 밑바탕은 경쟁이고, 그 분투에서 앞자리를 차지한 삼성전자이니 당연한 방식일 뿐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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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책표지. ⓒ 동녘

친구들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애당초 '연봉과 능력은 비례'라는 도식이 일반적인 우리사회다. 즉, 우리사회에서 어떤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고 있다는 뉴스기사에 "당신이 능력 없으니 그렇지" 따위의 힐난 섞인 댓글이 쉽게 달린다. 불평등을 벗어나, 우위에 서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올해에만 10만 명에 달하는 취업준비생이 삼성그룹 입사를 위해 'SSAT'를 치렀다.

하지만 시장조사기관 <닐슨컴퍼니코리아> 2010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94%는 '빈부격차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다. <경향신문> 올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소득격차 등 양극화 해소'는 37.1%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통합을 위한 역점 분야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불평등'이나 '격차'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으려는 노력도 치열하다. 다른 한편에서는 양극화 등으로 상징되는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사회가 지닌 이 양면적인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낙수효과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경계하라


오늘날 불평등은 자체의 논리와 추진력에 의해 계속 심화된다. 그것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나 추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오늘날 사회적 불평등은 역사상 최초로 영구기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22쪽

책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 펴냄)은 그 질문에 해답이 되어줄만 하다.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은 경제적 불평등이 시장경제의 허구적 논리에 밑바탕을 두고 있으며, 그 '새빨간 거짓말' 때문에 불평등이 영구기관처럼 작동한다는 지적을 담았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으로, 세계화·계급·소비주의 등에 관한 세계적 석학이다. 에세이 형식과 구체적인 통계 및 사례를 통해, 채 120쪽 안 되는 분량으로도 독자가 불평등의 위험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장 앞서 강조되는 내용은 시장경제가 불평등을 정당화해왔던 논리를 깨부수자는 조언이다. 저자는 대중적 믿음으로까지 여겨졌던 낙수효과가 "실패했다"(13쪽)고 단언한다. 최상위 부자들은 갈수록 부유해지지만, 빈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낙수효과가 강조되는 와중에 중산계급이 불안정한 고용·노동 상황을 뜻하는 '프리카리아트'로 전락했다(21쪽)고 꼬집는다.

이는 우리사회에도 딱 들어맞는 설명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이 강조되자, 기업들은 '노동의 유연성'이란 명목으로 비정규직 비율을 30%대까지 끌어올렸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2012년 기준 임금수준과 사회보험 가입률이 절반 수준에 그친다. 기업을 운영하는 부자들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나누지 않았다. <경향신문> 분석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 말까지 국내 500대 기업의 총 자산은 987조 원 늘어났다. 반면, 고용은 같은 기간 22만 명에 그쳤다. 기업 자산이 10억 원 늘어도, 고용은 0.22명만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러한 수준의 취업유발계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최하위권이다.

불평등으로 불행해진 사회

사방에 탐욕, 부패, 경쟁, 이기심이 편재하는 현실, 그렇기 때문에 상호 의심과 끊임없는 경계를 조언하고 찬양하는 현실. (…) 그리하여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의도적이건 우연이건 간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세계를 계속해서 재생산하는 행동 양식을 따르는 것 외에 거의 아무런 대안도 없게 된다.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46~47쪽

저자는 불평등이 한정된 열매를 다수가 나누게 만듦으로써, 협력과 연대라는 가치가 "인기도 없고 게다가 힘들고 값비싼 대가까지 치러야 하는 선택"(46쪽)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한다. 불평등이 대다수 사람을 끊이지 않는 경쟁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상황을 "만성적 불행을 초래할 가능성"(56쪽)의 원인으로 꼽는다. 즉 불행해진 사회는 불평등으로 인해 만들어졌다.

지난 5월, OECD가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했다. 한국은 36개국 중 27번째를 기록했다. 소득·사회참여·교육 등 분야별 10점 만점으로 점수가 매겨졌는데, 공동체 부분(1.8점)과 소득 부분(2.1점)이 상대적으로 결과가 나빴다. 한국의 분야별 평균은 5.28점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불평등과 그로 말미암은 경쟁이 그 원인일 것이다.

불행한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지표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8년째 기록 중이다. 최근에는 고교생 절반가량이 '돈 10억 원이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답한 충격적인 여론조사결과도 나왔다. 청소년조차 불평등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범법 행위라도 불사하겠다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스스로에게 내린 '열등의 선고'를 거두자

약자들이 스스로에게 내린 사회적 열등의 선고는 선고로만 그치지 않고 부정의한 불평등 자체에 대한 반대는 물론이고 가벼운 불만의 속삭임조차 집어삼켜 버릴 뿐만 아니라 승자가 보내는 연민이나 동정도 받아들인다. 이제 상황에 대한 이의 제기와 상황을 지속시키는 생활 방식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잃어버린/도둑맞은 인권, 즉 존중되고 원칙들을 인정받고 동등하게 대우 받아야 할 인권에 대한 정당한 방어로 간주되지 않는다. -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73쪽

저자는 불평등이 지금까지 승리할 수 있었던 까닭을 우리들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어쩔 수 없이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열등의 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당한 불평등'이 되는 순간, 불평등은 반대하거나 개선해야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 저자가 지적했던 데로 불평등을 영구기관으로 만드는 길이다.

까닭이 분명하기에, 해결방안도 분명하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린 '열등의 선고'를 거두는 일이다. 불평등에 반대하고, 그것을 개선 대상으로 상정시키는 일이 거기서 가능해진다. 이미 우리사회는 그 가능성을 보였다. 총선과 대선이 잇따른 지난해,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같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의제들이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제는 연속성을 지니거나, 현실에서의 실현까지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가 침묵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무수한 불평등 앞에 "어쩔 수 없다"거나 "스스로를 탓하라"며 외면하고, 어느새 사그라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를 다시금 요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끝머리에서 "현실에 대한 말의 영향력"(113쪽)을 강조한다. 단순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동녘, 2013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서평 #불평등 #격차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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