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살이 바뀌고 있는 중국 공산당

정치엘리트 등장을 주목해야

등록 2013.10.25 19:39수정 2013.10.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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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중국의 최고 지도자 및 지도부가 교체되어 서울에서는 중국의 향후 대외 정책의 향방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그 핵심에 이른바 '공세·수세' 논쟁이 있다. 즉 시진핑을 정점으로 새 지도부를 구축한 중국이 대외 정책에서 한층 더 공세적으로 나올 것인가의 여부와 관련된 것이다. 물론 지도부가 교체되었으니 대외 정책도 변화하지 않겠느냐는 일반적 추측은 있을 수 있다. 또 이미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당시 중국의 '이상' 반응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매우 관심이 가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외정책, 공세적으로 변하는가?

몇 차례의 학술 토론 자리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우선 일부 비 중국 학자들이 지도부의 교체와 중일 관계, 남사군도, 북한 핵 문제 등을 근거와 사례로 들며, 중국 대외 정책의 공세화를 주장하면서 중국 학자들에게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다음으로 중국 학자들이 중국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리 큰 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결론은 향후 잘 관찰해보자로 끝난다.

실제로 외교 행태의 측면에서 공세화 주장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위와 같은 중국 외교의 공세화 논쟁은 다소 허망해 보인다. 중국 정부 혹은 학자들이 어떻게 여기냐 하는 것보다 중국의 변화와 지속의 기본적인 틀과 동학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전제 하에서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바로 이 전제와 관련된 몇 가지 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을 하나의 생명체로 설정하고, 이 생명체의 특성이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는 상식적으로 틀로써 접근해보자.

중국을 만약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그 유전자, 뼈대 그리고 피와 살을 살펴보자. 먼저 전제는 잘 알다시피, 유전자와 뼈대는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둘은 중국이라는 실체의 비교적 항상적인 가장 기본적인 특징을 구성한다. 중국이라는 민족 혹은 국가에게 두 가지의 기본적인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주의적인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 회귀적 경향이다.

현실주의와 과거 회귀


현실주의적 경향은 여러 문헌과 연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가장 중요한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내세와 현세에 대한 관점이다. 중국의 사유에서는 내세와 현세의 정확한 구분이 없다. 오히려 철저히 현세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내세 역시 현세와 별로 다르지 않은 세계이며, 따라서 어떤 특별히 고귀한 가치가 있는 영역이 아니다. 현세에서 가장 힘이 강한 자가 하늘의 명, 천명을 받은 하늘의 자식, 천자가 되고, 그를 중심으로 온 세상이 굴러간다. 또 이 과정은 어떤 절대자나 질서에 의해 점지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현세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투쟁의 승자가 바로 천명을 받는 다는 기본적인 논리구조이다.

이는 중국의 고대 역사과정에서 정형화되었고, 따라서 이 과정과 관련된 원리와 기교들이 매우 발전해왔다. 이 현실주의 경향은 역사적으로 사회 전반의 실용주의 작풍을 파생시켜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례로 중국이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이 경향은 여지없이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좋아서 내지 옳아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필요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변용의 여지가 존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본적인 유전자는 과거 회귀적 경향이다. 중국에게 가장 좋았던 때는 바로 요순 시절이며, 이 시기는 마치 이상향처럼 묘사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의 역사의식은 약간의 도식화를 가하면, "요순 시절은 좋았어. 그러나 그 이후에 별로 좋지 않았어. 어떻게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지?"이다.

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은 근대 이후 중국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왔다. 특히 1840년 아편 전쟁 이후 중국의 몰락의 길에 접어들면서, 이 경향은 더욱 강력해졌다. 근현대 시기 중국을 구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바로 강력하고 풍요로운 그래서 행복했던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사회주의의 길로 중국의 부흥을 이루어 내기로 결정했고, 그것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시진핑이 유난히 강조하는 '중화민족의 부흥'의 구호는 이를 여전히 잊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949년 이후 집권당이 바뀐 적 없는 중국

다음으로, 뼈대인 구조를 살펴보자. 중국은 1949년 이후 사회주의의 길을 채택하고, 이에 걸맞는 구조를 도입했다. 그 핵심은 바로 당-국가 체제 즉 공산당이 전일적으로 중국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몇 차례의 헌법 개정과 심지어는 1978년 이래 개혁개방 정책이라는 이전과 매우 다른 옷을 입었다 할지라도 이 구조는 그 근간이 바뀐 적이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내외부 관찰자들이 당의 움직임에 대해 특별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 집권당이 바뀐 적이 없으므로 당연히 중국 정책의 변화보다는 지속의 측면이 강조되어왔다. 사실 이 뼈대 즉 구조는 몇 차례의 내전과 같은 충격을 통해 자리 잡은 탓에 상당한 내구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 변화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한편, 위의 두 요소는 비교적 안정적인, 그래서 바뀌기가 힘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피와 살은 다르다. 계속 순환되며, 배출되고 생성되는 특징을 가졌다. 이를 중국에게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또 정책과 관련해서는 정치 엘리트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알려진 바대로, 중국의 정치 엘리트는 한편으로 그 세대가 변해왔다. 마오쩌둥의 1세대, 덩샤오핑의 2세대, 장쩌민의 3세대, 후진타오의 4세대를 거쳐 현재의 최고 지도자 시진핑은 제5세대로 구분된다. 즉 세대가 바뀜에 따라 중국의 모습도 약간씩 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정책과 직결되는 측면에서 정치 엘리트의 주도 유형이 변해왔다. 그동안 개혁개방을 기점으로 혁명 간부에서 기술관료로 한번 바뀐 적이 있다. 특히 이번 중국의 새 지도부에서는 '일반주의자 간부'라고 부를 수 있는 유형이 이전의 '기술 관료' 유형을 제치고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엘리트의 변화를 주목해야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이들은 대학 등에서 인문 내지 사회과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자연 내지 응용과학을 전공한 기술 관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무적이라기 보다 정무 혹은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며 이를 조직해내는 정치가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들은 주요 경력의 측면에서 각급 당정 기관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 고충을 처리하는 능력이 검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면에서 기술 관료보다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보다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이들로 현 중국의 뼈와 살이 교체되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중국이라는 생명체는 현재 현실주의와 과거 회귀적 유전자와 당-국가 체제라는 골격은 유지한 채, 보다 대중적이고 정치적인 새로운 피와 살로 교체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새로운 지도부 구성 이후 중국이 기술관료 집권 시기와는 다른 뭔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 부분만 두고 봤을 때는 이전보다 외교 정책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더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인 골격과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또 변화보다는 지속을 강조하면서 움직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래서 중요한 것이 외부 환경이다. 즉 만약 외부 환경이 중국에 공세적이라면, 기술관료 집권 시기에 비해 중국 역시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반대라면, 이 가능성은 그냥 가능성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예는 중국 지도부의 교체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시기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본과의 조어도 문제를 둘러싼 영해 분쟁, 남중국해에서의 해상 분쟁,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해결과정에서의 태도 등을 주요한 예로 들 수 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대부분이 해당 국가가 직접 자극했던지 아니면 역외 국가이자 패권국 즉 주되게는 미국과의 연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한편 또 한 가지 이 새로운 엘리트 유형 시대에는 과거와 같이 사회주의 등과 같이 중국 본래의 유전자의 활동을 나름대로 억제시켜온 외부에서 이식된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질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이미 붉어진 경제 성장의 부작용을 상쇄할 것으로는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원래 가지고 있던 유전자와 흡사한 이데올로기가 강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이렇게 봤을 때 중국은 특히 자신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의도와 달리 상황이 진행될 경우, 이전과는 사뭇 다른 외교 행태를 보일 가능성을 이미 높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아마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공세적 행태이다. 예를 들면, 북한에 대해서도, 물론 사실상 그것이 효과가 있느냐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만약 특정 행위가 자국의 의도 내지 구상과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고, 이익의 침해를 가져온다면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미 그런 조짐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보인 중국의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 역시 만약에 향후 한미동맹의 강화 등을 비롯한 안보 이슈와 양국 민간 단위에서의 충돌을 야기시킬 수 있는 문화 및 역사 영역의 이슈 등으로 인해 마찰이 발생할 경우 이전과는 달라진 중국의 태도를 예상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 그들의 속담 "남이 나를 범하지 않으면, 나도 남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이 나를 범하면, 반드시 나도 남을 범할 것이다"가 최근 자주 귓가에 맴돈다.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한국

물론 개혁개방 정책 실시 이후 전반적으로 수세적 행태에 익숙해진 중국은 향후 이전의 관성과 새로운 경향 사이에 일정한 긴장감이 존재할 것이다. 필경 피와 살이 바뀌었다고 한꺼번에 행위 패턴 자체가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시기는 일종의 적응기라고 할 수 있다. 또 바로 이런 맥락에서 현재 중국 관학계에서 얼핏 보면 엇박자가 나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경향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빠르게 변화할 것인가일 것이다.

중국의 이런 변화는 주변국인 한국에게는 매우 곤혹스러운 고민을 던져준다. 적어도 1992년 수교 이후 보여준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 기정 사실이기 때문이다. "너무 낯설어. 옛날의 너의 모습이 더 좋아"라고 말한다 해도 이미 늦었다.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향후 토론의 장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얼핏 보면, 북한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주장환님은 한신대 중국학과 교수이며 코리아연구원 기획위원입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중국 대외정책 #중국 공산당 #중국 정치엘리트 #시진핑 대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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