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등록 2013.10.30 18:26수정 2013.10.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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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27일 청와대 녹지원에서의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_ 아리랑' 공연 관람을 마치고 춘추관 앞으로 나오니 귀가를 도와줄, 청와대에서 준비한 차량이 있었습니다. 함께 한 지인과 저는 그 버스를 타는 대신 걷기로 했습니다. 걷기 좋은 고즈넉한 삼청동길을 바로 발 밑에 두고 차를 탈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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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로로 이어진 청와대로 ⓒ 이안수


서울 토박이인 지인의 어릴적 집은 현재 세종로의 안정행정부 행정자료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60여년 전 경복궁 일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분입니다. 어릴 적에도 호기심이 많아 주변 동네의 골목을 낱낱이 훑고 다녔으니까요.

당주동, 도렴동, 사직동, 적선동, 내수동, 내자동, 통의동, 체부동, 창성동, 통인동, 효자동 등 경복궁의 서쪽은 물론, 삼청동, 팔판동, 화동, 소격동, 사간동, 송현동, 중학동, 수송동 등 경복궁의 동쪽도 선생님의 영역이었습니다. 삼청동에도 수십 년 동안 지인으로 지낸 분이 여럿 있습니다.

청와대로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팔판동 팔판길을 가로질러 곧 삼청로로 접어들었습니다. 삼청로 길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하게 주목받는 특색있는 길이 되었습니다. 낡은 건물이 완전히 새롭게 개조되고 오래된 한옥들은 외양만 간직한 채 개성적인 비즈니스 건물로 거듭났습니다.

갤러리와 뮤지엄,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들, 옷가게와 액세서리숍 등은 곧 감각적인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데이트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광화문에서 걸어서도 10분이면 당도할 수 있는 곳에 이런 멋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도시민들에게 축복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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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로는 최근 한옥과 낡은 양옥건물들이 개성있게 개조되어 비즈니스 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특색있는 숍들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 이안수


우리는 그 급격한 거리의 변화들에 감탄하면서 오후 8시의 삼청로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 한옥은 제 지인이 십수 년 전에 3억8천만 원에 산 집이에요. 얼마 전에 그 주인을 만났는데 38억 원을 준다고 했지만 안 판다고 했대요. 월세만 750만 원이라네요. 38평이라는데…."

도로변 작은 한옥은 고급 음식점으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대관절 얼마를 팔아서 그 월세를 감당할 수 있대요?"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 수치였습니다.

- 그렇게 많은 월세를 받는 주인은 대체 어떻게 사시나요? 매달 여행만 다녀도 되겠네요?
"그렇지 못해요. 돈 있는 사람이 도리어 여행을 못해요. 그 분은 여전히 좁은 집에서 돈을 많이 쓴다고 부인을 타박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 혹시 이태 전에 만났던 그 어른 아니십니까? 밥을 사준다고 국밥집에 가서 세 사람에 국밥 2그릇만 시킨?
"맞아요. 돈 많다는 자랑이나 하지 말든지……."

멋진 길과 아이디어들이 빛나는 예쁜 숍들에 감탄하던 대화는 곧 세속적인 돈 얘기로 흘렀습니다. 어쩔 수 없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본능적 끌림이리라. 푸른 기와집의 우람한 규모도 보고, 인기 상가로 변화된 곳의 돈 버는 얘기에 잠시 정신이 홀렸던 우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장기가 돌았습니다.

"바로 위에 유명한 수제비집이 있어요. 한 번 드셔보실래요?" 

지인께서 10여 년 전에 들렸었다는 곳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그 집 앞 인도에는 그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맛있는 곳이라면 이런 수고쯤은 감수해야 마땅한 자세로 우리도 줄을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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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의 늦은 시간에도 수제비집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만들어져있었습니다. ⓒ 이안수


"항상 이렇게 줄을 서는 곳이라면 집 아래에 벤치라도 두어 개 가져다 두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라도 앉을 수 있게 번호표라도 주지. 때로는 연로한 어르신들도 오실 텐데……."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의 이런 마음은 저만이 아니었던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벽에 써 붙여두었습니다. 

"*** 수제비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가게는 번호표가 없습니다. 오신 순서대로 줄을 서 주시면 차례로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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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가 없다는 공지가 붉은 글씨로 붙어있습니다. 줄을 선 그집의 고객에 대해서 배려하는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이안수


번호표가 없다는 부분은 빨간색으로 강조한 것을 보아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차례가 되어 문이 열리고 아저씨께서 들어오라는 신호를 주셨습니다. 내부는 사람들로 그득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카운터 옆의 입구자리였고 주방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주문한 수제비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손님을 통제하고 있는 그 아저씨와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님을 마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저씨는 마치 궁궐문을 지키는 수문장 같았습니다. 식사 마치기를 살피고 있다가 누군가가 일어서면 그 수만큼 바깥 손님을 잘라서 들여보냈습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그 권력을 행사하는데 익숙해져있었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삼청동의 저녁 공기 탓에 그 출입문안과 밖의 온도 차이가 적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손님은 냉기 속에, 그 아저씨는 실내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줄을 선 잠재적인 이 집의 고객에게는 어떤 배려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유명 수제비집에서 그들은 단지 통제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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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입구에서 입장을 통제하고 계신 아저씨. ⓒ 이안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님의 관심도 누군가가 일어서주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표정으로 일관했습니다. 주방에는 많은 수의 아주머니들이 각각의 일로 분주했습니다. 바로 앞의 카운터 아주머님께 물었습니다.

- 직원이 몇 분이나 되세요?
"……."

저는 바빠서 질문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 함께 일하시는 식구 분들이 몇이나 되세요?
"왜 그러세요?"

그 아주머니는 대답대신 반문했습니다. 제가 직원 수를 물은 것은 이 이름난 수제비집 하나가 이렇게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존경받을 미덕인가? 하지만 그 아주머님에게는 세무공무원의 수상쩍은 질문으로 여겨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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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담겨 나온 2인분의 수제비 ⓒ 이안수


"저는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이 가게의 주인이 하나도 안 부럽지요? 일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세요. 단 한 사람도 얼굴에 웃음기가 없어요. 문을 지키는 아저씨와 돈을 받는 아주머니도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돈으로 보일 거예요. 1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저는 오늘이 이집을 출입한 마지막 날이에요. 이 주인보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하더라도 제가 사람이 아닌, 돈으로 취급되는 것은 싫거든요." 

그 식당의 벽에는 TV 맛집 프로그램에 방영된 캡처 사진들이 액자로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삼청동'이라는 지명을 설명하는 동판이 붙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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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이 소개된 TV화면이 캡쳐된 사진들이 걸린 벽 ⓒ 이안수


"삼청동길(三淸洞)은 산이 맑고(山淸) 물도 맑으며(水淸) 그래서 사람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人淸). 가까이 있을 때 한 번 발을 들여 놓으면 떠나기가 싫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서 뛰어가 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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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좋고, 물 좋고, 인심이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삼청이라고 불린다는 안내글이 담긴 동판. 하지만 오늘, 이 내용은 일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 이안수


동판의 내용을 바꾸던지 아니면 주인의 손님 맞는 태도를 바꾸든지, 둘 중의 하나는 바뀌어져야 사실에 부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청와대 나들이가 있었던 같은 날, 즉 삼청동에서 수제비를 먹은 날 아침, 저는 백호아빠를 만났습니다. 백호아빠는 가진 모든 것을 회사 동료들에게 밀린 월급으로 주고진돗개 한 마리와 무전여행을 나왔던 젊은 사업가(관련기사 : 파산한 사업가가 자살 대신 택한 무전여행)였습니다. 

그는 길 위에서 100여 일 동안 갖은 고행을 감내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희생자로 길을 떠나서 다시 그의 유일한 동반자였던 진돗개가 사람의 폭행으로 부상당하는 일을 포함한…….  

그는 지금 한 기업인의 배려로 길 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그 분의 구상을 도우며 새로운 미래를 설계(관련기사 : 길가에서 만난 인연으로 배풀었더니...)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금전적으로는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청년입니다. 

그가 여행 중에 사람에 의해 개가 부상당했다는 기막힌 사실에 아연해진 저의 한 이웃이 개 치료비에 해당하는 금일봉을 제게 기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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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공격으로 부상당한 진돗개의 치료비를 대신 감당하고 싶다며 봉투를 전한 이웃의 따뜻한 온정 ⓒ 이안수


그 청년과 백호에게 행한 모든 가해자의 입장을 대신 사과하는 마음으로 온정을 그 청년에게 전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날 제가 봉투를 받게 된 전후 사정을 말하고 그 봉투를 청년에게 전했습니다. 청년은 그 봉투를 받아도 될지에 대해 한참 동안 망설였습니다. 

"이 돈은 자네를 알지 못하는, 단지 자네와 백호의 사연만을 아는 분이 사람이 가해한 것에 대한 백호의 치료비로 내게 맡긴 것일세. 봉투 안에 그 분의 따뜻한 편지와 성경구절도 함께 있으니 이 봉투는 자네가 세상의 인심에 의구심의 들 때마다 그리고 자네 앞에 넘어야할 장애가 있을 때 마다 용기를 주는 부적으로 여기게. 그것이 그 분의 뜻일 거야. 그래서 자네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안정이 된 뒤, 언젠가 그 분을 직적 찾아뵙고 그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하기를 원하면 그 때 자네를 그 분께 안내하지. 그러니 지금은 이 봉투를 거절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라 자네가 안정을 되찾고 세상을 긍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네."

저의 설득으로 그 청년은 어쩔 수 없이 그 봉투를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제가 삼청동의 수제비집에서 저녁을 먹는 동안 저의 아내는 그 청년과 저녁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녁식사를 함께 할 때 그 청년이 아내에게 했던 말을 제게 전했습니다.

"오늘 제가 봉투를 받았습니다. 30만 원이라는 큰돈입니다. 하지만 현재 저는 이렇게 큰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신 안재영 사장님께서 제게 합당한 월급을 책정해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서 주신 분의 아름다운 마음이 담긴 이 돈을 어찌해야할지 지금도 고민입니다. 저는 지금 안 사장님의 뜻에 따라 한 고등학교에 제품을 공급하고 그 마진을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프로모션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생각은 제가 받은 그 봉투의 돈을 그 장학금에 보탰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야말로 지금 돈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현재, 자기 소유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 그것보다도 앞으로의 안정된 삶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마중물이 될 돈을 모아야하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저는 지금 돈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 동안 돈이라는 무생물에 영혼을 저당한 상황과 그것으로부터 완전하게 영혼을 되찾은 상황의 두 대척점에 있는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두 상황의 목도는 제게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 청년뿐만 아니라 삼청동의 수제비집 광경이 제게 얼마나 고마운지. 제가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연세가 되기 전에 스쿠르지 할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삼청동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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