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 나라에서 선거는 해서 뭘 하나?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지켜보며 P형에게

등록 2013.11.01 21:23수정 2013.11.01 21:23
29
원고료로 응원
P형,

이 나라는 이제 선거가 필요 없는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는, 권력이 교체되는 것을 전제로 한 제도가 아닌가. 그런데 지난 선거를 보니 야당은 절대로 권력을 잡아서 안 되는 종북좌파들이었고, 이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 좌파들에게 정권을 내 주어서 안 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국가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니….

이런 식이라면 선거는 해서 뭘 하는가? 선거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는 제도인데, 야당은 정치적 동반자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종북좌파들이니,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진 자들과 무슨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단 말인가?

a

제18대 대통령선거날인 19일 오전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동 제4투표소장에서 투표를 마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조재현


권력 핵심부에 있는 어떤 사람은 지금 국회에 진출해 있는 의원 가운데 40여명을 특히 지목하여 이들이 북한을 추종하는 자들이라며 나라가 큰 위난에 처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며 나는 소름이 끼치더이다.

지난 일을 생각해보니,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에 대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한 말이 기억되더군요. 자기는 선거에 절대 중립을 지켰다는 말이에요. 당시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이 말은 자랑도 아니고 너무도 당연한 것을 말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김대중 정부의 탄생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엄정한 선거 중립이 큰 역할을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는 IMF로 경제위기에 처했었고, 이른바 DJP연합을 하는 등 그의 개인적 역량과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런 국가 위난의 시기에도 겨우 40여만표를 더 얻어 턱걸이로 당선되지 않았나? 이 나라의 선거판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판이라는 것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 않는가? 이런 바탕에서 여야의 대결이라는 것을 하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다 알지 않는가? 지역감정 때문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김대중 정부 하에서 엄정 중립의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렇게 큰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겨우 50여만 표를 더 얻어서 턱걸이로 당선된 것이었네.

선거 결과를 그림으로 표현한 한반도 남쪽을 보면 영락없는 후삼국시대 그대로가 아니던가? 그렇지 않나? 파란 색깔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과 노란 색깔의 지도 말일세. 이것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지 않나? 이 나라 정치의 후진성은 나같은 사람이 보더라도 후삼국시대를 벗어난 것 같지 않더군. 그러고 보니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왕건이 위대한 인물처럼 보이더군.


어쨌든 통일을 하지 않았나? 왕건은 통일의 방편으로 지방토호세력과 결혼을 통해 흡수하기 위해 13명의 후첩을 거느리며 방편을 쓰면서 온갖 노력을 다했네. 왕건만한 정치 지도자가 아직 이 나라에는 없는 것 같네. 선거 때만 되면 그렇게 적개심에 불타는 북한에게 총질을 해달라고 해서 이른바 총풍사건이라는 것을 일으키기도 하지 않았나?

이명박정부 들어서서 이미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던 걸로 아네. 무리하게 임기가 보장된 사람을 몰아내면서까지 언론을 입맛에 맞게 장악하고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는 것을 보면서 이 정부 밑에서 선거를 치르는 것이 공정할까? 이런 우려 말일세. 그렇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가 군사독재시대를 벗어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인들을 존경의 눈으로 보게 되지 않았나? 차마 선거부정과 같은 그런 짓이야 하겠는가, 이렇게 믿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소박한 꿈과 기대가 깨지고 말았네. 국가공무원들, 그것도 국정원 직원들이 거액의 돈을 써가며 선거에 개입한 것이 들통 나고 있네. 정치후진국 한국의 시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참담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 저들은 변명하기를 그까짓 댓글에 개입한 것이 전체 당락에 무슨 영향을 미쳤겠나? 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모양이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a


이번 대선에서는 SNS가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네. 지난 과거를 보면 대선과 같은 큰 선거에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에서 얻은 표는 겨우 40-50만여표에 불과하였네. 공무원들이 달려들어 선거에 개입한다면 이 정도의 표를 움직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닐까? 내가 이 나라에서 앞으로 선거는 해서 뭘 하나 하고 자조적인 말을 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세.

P형,

그러면 이제 자네에게 묻겠네. 이 나라에서 정권교체라는 것은 앞으로 영원히 없고 특정한 한 정당이 운영하는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영구적으로 집권한다면 이 나라가 잘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그렇게 믿고 있나? 사람의 몸에도 혈액순환이 필요한 것처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권력 이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네. 그것이 국가사회의 혈액순환이지. 지금처럼 유력 언론이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며,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이 나라의 동맥경화는 더욱 빠른 시일 내에 심해지리라 믿네.

한국인들은 매우 역동성이 있는 민족이라고 보네. 이런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는 역동성을 잘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 사회의 신진대사가 필요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몰아서 종북좌파의 딱지를 붙여 매도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참으로 숨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네. 권력은 오래 고이면 썩게 마련이지. 그거 다 알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 여기에 무슨 이론이 필요한가? 경험으로 다 아는 일인데. 지금 우리가 반성하고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보네. 자네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만 이런 나라에 사는 나에게도 좀 희망을 보여주게.
#선거 #댓글 #민주주의 #위기
댓글29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