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광인터넷 완비'? 모텔 들어가자 실소 나왔다

석남사 가는 길①

등록 2013.11.14 17:05수정 2013.11.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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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익어가는 청도의 가을을 보고 싶어 지난 10월 초에 길을 나섰다. 시간을 벌기 위해 금요일 밤에 출발을 했지만 일을 끝마치고 나서려니 저녁 챙겨 먹을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일행들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지 약간 들떠있었다. 


한밤중에 떠나는 여행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휴게소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도 마치 분위기가 있는 찻집에서 마시는 듯 달콤했다. 그러나 강화도에서 경남 울주군에 있는 석남사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자정을 지나 오전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울주군에 들어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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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석남사는 국내외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종립특별선원(宗立特別禪院)입니다. ⓒ 손점수


숙소를 찾아... 우리는 불나방이 되었다

이제 하루밤 몸을 누일 숙소를 구할 일이 남았다. 우리는 마치 불나방처럼 네온불빛이 화려하게 빛나는 곳을 찾았다. 한밤중에도 불을 밝힌 곳은 그런 곳밖에 없기 때문에 환히 빛나는 곳을 찾아 도시를 헤맸다. 밤의 도시는 어디가 어딘지 또 어떤 곳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낮이라면 환하게 드러날 테지만 밤에는 마치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처럼 번쩍이는 네온불빛으로 본 얼굴을 가리기 때문이다.

길 양 옆으로 너덧 개의 숙박업소가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모두 그만그만했지만 그래도 그중 나아보이는 집을 골라야 한다. 하지만 어떤 집이 좋을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서 이곳이 더 좋니 아니 저 곳이 더 괜찮을 것 같다느니 의견이 분분했다.

'황토방'이란 문구를 본 이는 숙면에는 친환경적인 황토방이 좋지 않겠느냐며 그 곳을 택하자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초고속 광인터넷 완비'란 선전 문구가 있는 곳이 아무래도 더 최근에 지은 집이라서 설비가 좋을 거라며 그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광속 인터넷이 완비 되어 있다는 그 모텔로 갔다. 쪽잠을 자다가 일어났는지 주인 할머니는 카운터의 창문을 밀며 우리를 맞았다. 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힐끗 우리를 일별하더니 위층을 가리키며 온돌방이 있는데 이불을 한 채 더 줄테니까 올라가라고 했다.


위층으로 올라가서 방을 보니 실소가 절로 나왔다. 광케이블이 깔려있다는 말과는 달리 방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기본으로 있는 집기류도 오래 되어 낡아 보였다. 그래도 이 밤에 방을 구하러 돌아다니기도 그렇고 해서 잠을 자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가로 세로 약 열 자 넓이 정도나 될까. 한 방에는 텔레비전과 작은 냉장고가 있었지만 욕실에는 샤워 꼭지만 달랑 있을 뿐, 그 흔한 욕조도 하나 없었다. 게다가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있던 우리는 어이없어 했지만 그것도 잠시, 세수만 한 채 잠을 청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잠을 자는 게 더 상수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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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극락전 · 강선당(講禪堂) · 조사전(祖師殿) · 심검당(尋劍堂) 등 30여 동이 있습니다. ⓒ 손점수


이렇게 누추한 곳에서 묶어 보기는 근래에 들어서 처음이다. 뜨내기 손님들을 상대하는 곳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좋은 방은 다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방이어서 그렇게 초라했던 걸까. 울주군 언양읍의 그 모텔은 시대의 흐름에 한참 뒤처져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생각하니 이 역시 여행이 주는 재미가 아닐까 싶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이 또한 훌륭한 재미거리일 터이다.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보다'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또 시골 다방을 섭렵한 경험을 글로 쓴 여행 작가도 있었다. 그들의 책이 대중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남과 다른 그들만의 색깔 때문이었다. 뻔하지 않고 낯설고 새로운 그들의 시선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창문이 훤했다. 밤을 새워 달려온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숙소 탓을 했지만 그래도 고마운 방이었다. 집기류가 화려하면 뭐 할 것이며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으면 또 어떤가. 한밤중이라 잠을 자는 게 우선인데 컴퓨터가 있으면 오히려 숙면을 방해했을 것이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어젯밤의 불만은 간 곳이 없었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조미료로 통일되지 않은 순수한 맛이 그립다

아직 9시도 채 안 된 아침인데 문을 연 식당을 찾는다. 아침을 먹어야 한다는 남자들 의견 때문이었다. 여자들은 사실 먹는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아서 아침 정도는 건너뛰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밥을 꼭 챙겨먹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심리인지 남편과 또 다른 한 분은 문을 연 밥집이 없나 하면서 사방으로 눈길을 보낸다.

다행히 문을 연 집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도 장사를 하는 집은 해장국 집밖에 없다. 메뉴는 대개 정해져 있으니 따로 고를 필요도 없다. 맛 또한 전국적으로 비슷하니 입맛에 맞을지 어떨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입맛은 화학조미료로 통일이 되어 있어서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음식 맛은 비슷하다. 김치 한 조각에서도 그 지방만의 맛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조미료로 통일이 되지 않은 순수한 그 맛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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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건물로 1791년(정조 15년)에 세운 극락전이 있으며 다음 가는 건축물은 순조 3년에 세운 대웅전입니다. ⓒ 손점수


음식 맛 말고도 통일이 된 게 또 있다. 바로 식후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꼭 커피를 마시는 버릇이 들었다. 안 먹고 가면 괜히 서운한 감이 들 정도로 인스턴트커피를 빼서 마시는 게 일상화가 되었다. 그것은 공짜라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한 것 같다. 만약 단 돈 100원 이라도 내 돈을 내고 마시도록 되어 있다면 과연 지금처럼 그렇게 마실까.

한때 식당에서 커피를 공짜로 빼서 마실 수 없도록 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누르기만 하면 커피가 나오는 게 아니라 자판기에 돈을 넣어야 나오게끔 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때도 식당들은 잔돈을 준비해놓고 손님들에게 나눠 주곤 했다. 커피 한 잔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매출과 연결이 됨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없도록 한 것은 물자를 절약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런데 그것도 어느 결에 흐지부지되었고, 지금은 어느 식당에서건 다 공짜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밥값에 들어있는 것이 된 셈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처럼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가 우리에겐 다 들어있으니 어찌 그냥 놓치겠는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밥을 먹고 나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느긋하게 충족감을 만끽하며 마신다. 커피의 위해성은 공짜 앞에 저만치 물러나 있을 뿐이다.

밥을 먹었으니 이제 석남사를 구경 할 일만 남았다. 절이 있는 울주군까지 왔으니 서두를 것도 없다. 더구나 길을 가르쳐주는 기계까지 있으니 길 찾기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절을 찾지 못하고 도시를 빙빙 돌았다. 알고 보니 기계에 주소를 잘못 입력해서 길을 헤맸던 것이다.
덧붙이는 글 '석남사 이야기'를 2, 3편까지 이어서 쓰겠습니다.
#석남사 #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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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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