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출근시간은 있는데 퇴근시간은 없어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12편

등록 2013.11.19 17:41수정 2013.11.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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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엘라

엘라... 엘라... 엘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 너에게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너는 어떻게 버텨왔니? 나는 정말 무섭고 두렵고 잘 모르겠어. 엘라, 나는 지금 일주일 내내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분명 출근시간은 있는데 퇴근시간은 없어. 우리 팀장님은 이 모든 걸 열정을 가지고 해야 한대.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면서. 그런데 있잖아. 이게 맞는 거야? 잠도 못 자고 집에도 못가고 씻지도 못하면서 일해야 하는 게 맞는 거야?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거야?

엊그제였어. 매번 밤 12시 무렵에 퇴근을 하다가 어제는 회식이 있었지. 솔직히 나는 가기 싫었어. 왜냐면 사수가 일을 하나 줬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었거든. 그걸 반드시 어제 아침까지는 해 놓아야 해서 회식이고 뭐고 1분 1초가 모자란 상황이었어. 근데 분위기가 어떤 줄 알아? 내가 만약에 "이걸 다 아직 못 끝내서 다 하고 갈게요." 아니면 "이거 해야 해서 회식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하면 그 화살이 우리 사수한테 돌아가. 팀장은 분명 이렇게 말 할 거야.

"넌 무슨 일을 그렇게 줘가지고 얘가 지금 회식도 못 간다고 해?"

근데 팀장은 그저 말뿐이고 그러면 사수가 나한테 도끼눈을 뜨겠지. 그리고 불려가 혼날 게 뻔해. 우리 팀장님은 남자인데 나한테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우리 사수한테는 몇 번 사무실에서 욕하는 걸 들었어. 욕 반 반말 반 때로는 야단 반 빈정거림 반. 그래서 회식에 따라가긴 했지만 편치 않았어. 마음 속에는 언제 저걸 다 끝내지 하는 생각뿐이었거든. 3차도 간다는 걸 집이 멀다고 하고 빠져나왔어. 집까지 가는 시간도 아깝지만 어쨌든 집에 가서 얼른 일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리고 내 노트북을 켰는데 엑셀 시험판이 기간만료라는 거야. 엑셀로 해야 하는 건데. 나는 그때부터 울먹이기 시작했지.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해져가지고 목소리는 갈라지고. 그리고 책장을 샅샅이 뒤져 정말 옛날 버전 엑셀 시디를 찾아냈지. 그리고 부랴부랴 깔고 일을 할 수 되었어. 모두 외국 사이트에서 일일이 대조를 해야 하는 일이라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어. 하나를 보려고 하면 웹 사이트를 다 뒤져야 하는데 아무리 내가 영어를 잘해도 모국어가 아닌 걸 보려면 엄청 집중해야 하거든. 그리고 그날 나는 거의 초죽음 상태로 일을 마무리하고 한 시간 동안 눈만 붙이고 새벽 6시에 머리 감고 출근했지. 그렇게 얼어붙은 머리로 찬바람을 맞으면서 사무실로 가는데 눈물이 났어.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수없이 머릿속으로 되뇌며 억지로 버스에 몸을 실었지. 하지만 화장이 지워질까봐 펑펑 울 수도 없었어. 그리고 그날 저녁 도저히 혼자 퇴근 할 수 없어서 언니를 불렀어. 언니는 차를 끌고 2시간 거리의 회사로 와줬지. 그리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 그리고 나는 오열했지. 언니가 깜짝 놀라더라.

"왜 그래? 왜 그러는데."

나중에 언니 말에 의하면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웅얼거렸대. 언니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고 하고.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던 것 같아.

"이게 인생이야? 앞으로 이렇게 쭉 살아야 돼?"

밤을 새고 매일 야근을 해서 그런 게 아니야. 우리 사수를 보니까 앞으로 나도 저렇게 계속 살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어. 숨이 막히고 참을 수가 없었어. 내가 자발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시켜서 앞으로 몇십 년을 저렇게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일만 하고 잠도 못 잔다는 게 말이 되니? 그게 맞는 거야? 나는 그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어. 그리고 지금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내가 아주 힘들게 취직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님한테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많이 망설여져. 엘라, 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네가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좀 알려줘. 너의 지혜를 나에게 좀 줘.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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