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카이도에 찾아온 밤눈 내리는 겨울 밤의 은은한 풍경
문종성
사토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학교를 파하고 오니 동네 사람들이 분주하게 드나드는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큰 방에는 근엄한 표정의 아버지 사진이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오늘이 오지 않을 거라 내심 불안하게 믿어왔었다. 하지만 푹푹 더위가 찌던 그해 여름, 사토는 눈치만으로도 더 이상 아버지의 온기를 느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알아챘다. 동시에 거침없는 얄개 시대를 보내던 그의 사춘기는 순식간에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 병을 앓고 계시긴 했지만 기약 없이 떠날 줄은 몰랐어. 집에 와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더군.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던 분이었지. 그후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와 재혼하셨어. 아버지의 빈자리가 정말 컸나봐. 나는 그때부터 몹시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거든. 난 정말 외톨이였어, 내가 기댈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어. 친한 친구 하나 없는 내 삶은 그냥 공허한 어둠 그 자체였으니깐."
사토의 아버지는 신사를 관리하는 스님이었다. 안빈낙도의 삶을 살던 그의 가족이 가장 많이 웃던 때가 있었다. 베리를 먹는 날이었다. 베리를 손에 올려놓고 한 입에 털어 먹을 때 그 오물오물 거리는 새콤한 식감은 사토에겐 큰 행복이었다. 입속에서 탁 터지는 베리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그의 막연한 꿈은 농부였다. 농부가 되면 맛있는 베리를 평생 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희미했던 꿈이 어느 날 갑자기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방황에 시달리던 그는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22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베리지만 보다 전문적으로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본으로 돌아오면 베리 농장을 경영할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의심할 필요 없는 그의 열망이었다. 그렇게 발을 내딛은 시카고에서 한창 학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그에게 여태껏 삶에 있어서 고려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 있을 때 뭣도 모르고 친구 따라 교회를 나간 적이 있었어. 그때 다른 건 기억이 나지 않는데 자꾸 그들이 돕던 아프리카 아이들이 잔상에 남는 거야. 70년대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황폐 그 자체였거든. 무력한 대기근이 지속됐지. 그날부터 내 고민이 시작됐어.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혼자 감당할 수가 없겠더라고. 학업을 마치고 난 뒤 일본에 돌아와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공론화했지. 결국 몇몇 주민들이 뜻을 한데 모아 극심한 재난을 겪고 있는 에티오피아를 돕기로 한 거야.어떻게 됐느냐고? 무려 15년 동안 나눔의 손길이 끊어지지 않았어. 감사한 건 그후로 내 삶이 훨씬 능동적이면서 더 열성적이 됐다는 사실이지. 미국에 다녀온 뒤 내가 많이 변했어.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꿈을 공유한다는 것, 에티오피아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 된다는 사실이 삶의 활력을 만들어 내는 동기가 된 거야. 지금도 우리는 매달 후쿠시마 원전 피해자 가족 등을 포함해 일본 내 소외된 계층을 돕고 있어. 그들 모두가 나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들이야.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베리보다 더 달콤한 인생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