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신부 검찰수사 자제? 한 발 뺀 <조선>, 다급했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경솔하다' 질책.... 박 신부 '공론 처벌' 주장도

등록 2013.11.28 21:29수정 2013.11.2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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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 신부에 대해 '처벌만이 능사인가'라는 데스크칼럼을 게재한 <조선일보> (11월 28일자). ⓒ 조선일보PDF

'처벌만이 능사인가' 어느 신문의 데스크칼럼 제목이다. 처벌의 대상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연평도 발언'을 한 가톨릭 박창신 신부. 칼럼은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 즉 처벌하지 말자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만 보면 진보언론인 줄 알 것이나, <조선일보> 28일자 칼럼이다. 외부 기고문이라면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문구로 나중에 해명이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해당글은 간부급 기자가 작성하는 '데스크칼럼'이다.

이 신문은 칼럼 뿐 아니라 '사설'을 통해서도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고 있다. '조급한 검찰 수사로 박 신부에게 멍석 깔아주는 일 경계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한 것이다. 칼럼과 사설을 통해 동시에 '검찰 수사 자제'를 촉구하고 나선 것인데 무엇이 <조선일보>를 다급하게 만들었나.

그러나 불과 이틀 전만 해도 '박창신 파문'을 확대재생산한 것은 이 신문이었다. 26일자 <조선일보>는 '종북구현사제단' 특집이었다. 1면뿐 아니라 칼럼, 사설, 그리고 3면 4면 두 지면에 걸쳐 '정의구현사제단파문'을 게재했다. 이에 힘입어 시민단체는 사제를 고발했고, 여당은 색칠 씌우기에 앞장 섰다. 발행부수 1등이라 자부하는 이 신문은 왜 불과 이틀 만에 논조를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있나.

'처벌만이 능사인가'와 '조급한 검찰 수사' 사이

'데스크칼럼'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박 신부에 대해 "사제복을 입은 혁명 전사"라고 했다. 또, "레닌이 했다는 '한 명의 신부를 포섭하는 것이 한 개 사단 병력을 늘리는 것보다 낫다'는 말까지 인용했다"고 전하며 이런 말을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동을 '경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칼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기자답게 '발언'만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실토하고 있다. 박창신 신부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미사 당일 발언뿐 아니라 평소 '박 신부의 언행'을 봐야 하고, 인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검찰수사는 '쫓기듯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은 "수사 당국의 그에 대한 처벌 시도가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당부의 말로 끝을 맺고 있다. 박 신부의 인권까지 세심하게 배려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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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신 신부에 대한 검찰 수사 착수를 경계하는 <조선일보> 28일자 사설 '조급한 검찰 수사로 박 신부에게 멍석 깔아주는 일 경계해야' ⓒ 조선일보PDF


같은 날짜의 사설 역시 검찰이 우를 범할지 걱정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사설은 "(시민단체 고발이 있자) 마치 검찰이 기다렸다는 듯이 박 신부에 대한 수사에 나서는 것이 일반 국민에게 어떻게 비치겠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답답할 듯싶다. 고발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기다렸다는 듯이 하지 말라'고 하니, 수사 착수시점을 놓고 '여론조사'라도 벌여야 한다는 의미인가.

<조선일보>는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이 섣불리 나선다면 검찰이 아무리 고발에 따른 기계적 절차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수사의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 결과 박 신부에 대한 사법처리가 쟁점이 된다면 박 신부가 했던 말은 다 잊히고 신부 구속 여부나 정권 대(對) 종교의 갈등만 화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라며 현 검찰의 수사가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임을 지적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 개시 시점에 대한 데스크칼럼과 사설의 내용이 조금 상이하다. 데스크칼럼은 '시기상조'를 들어 비판한다. "검찰은 고발장이 들어오면 수사에 착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바로 수사에 들어가지는 않는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반면 사설에서는 "종교의 옷을 입고 북을 추종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은 그 성격상 결국 국민과 공론(公論)이 해야 하는 문제"라면서 사법심판 이전에 '공론 처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 신문의 입장이 딱하다. 이틀 전만 해도 특집으로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더니, 이 신문이 그동안 공론 처벌을 주장하고 나섰던 적이 있었던가. 특히나 국가보안법 관련 사항에 대해서 '공론' 운운하는 대목은 뒤에도 두고두고 회자될 대목이다. 사법처리와 공론 처벌을 병행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임을 잘 알 터인데, 먼저 자신이 '선제공격'을 해 시작된 싸움이 불리하게 전개되니까 말리는 '치고 빠지기' 역할에 나선 것이다.

'종북, 좌익'에 대한 단호한 처벌 주장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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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이틀 전 '사제단 특집' 26일자 '정의구현사제단 파문'을 게재한 <조선일보>. 이날 1면, 3면 ~4면, 칼럼, 사설 등 '특집호'를 발행했었다. ⓒ 조선일보PDF


평소 <조선일보>는 사법적 판단을 강조했다. 실정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해서도 '법의 심판'을 주문한 경우가 많았다. 지난 9월 이 신문이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에 대해 주장한 내용도 이에 해당한다. 혼외자는 입증되지도 않았고, 설혹 입증된다 하더라도 법 위반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신문은 사설을 통해 '(채 총장 이름을 멋대로 갖다 쓴) 임 여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사법기관에) 고소'하면 혼란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음을 친절히 안내했다. '공론심판'의 대상에 해당하는 상황에서도 고소를 통한 법의 심판을 강조했던 셈이다.

국가보안법 관련해서는 더욱 엄격한 입장이었다. '종북 좌익수사, 단호하되 무리하지 않게 해야(2011. 8. 15)' 사설을 보면 "사실상 손을 놓았던 검찰은 이제라도 종북세력을 밝혀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 검찰이 불필요한 논란을 빚지 않으려면 새로운 판결 흐름에 맞춰 유죄 입증에 필요한 증거 수집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며 법대로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이 단호하게 처리하며 당부한 주체는 '검찰'이었다. 지금 '공론 처벌' 운운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주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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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좌익 세력에 대한 '검찰'의 무리하지 않으나 단호한 수사를 주문했던 <조선일보> (2011년 8월 15일 사설) ⓒ 조선일보PDF


지난 22일 '연평도 발언'을 한 박창신 신부는 단호했다. 말실수가 아니었고, 종북몰이를 끝낼 수 있다면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전해진 23일부터 지속되던 '사상의 공안탄압'에 '신(神)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한 사람의 힘은 컸다. 이에 힘을 얻은 시민단체, 야당에서 반론을 제기하면서부터 집권세력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조선일보>가의 검찰수사 제동 걸기에 이르렀다.

'칩거' 중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까지 전면에 등장하는 등 집권세력이 최선을 다해 시도했던 싸움의 성패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조선일보 #박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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