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배추는 울고, 절임배추는 웃고

가을배추 주산지 전남 해남의 배추밭과 절임배추 공장

등록 2013.12.07 17:35수정 2013.12.07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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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배추 주산지 전남 해남의 배추밭. 아낙네들이 배추의 밑동을 자르는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가을 배추와 무 재배 면적이 10% 안팎씩 늘었다. 이에 따라 출하기까지 특별한 기상 악화가 없다면 수확량이 크게 늘어 가격이 폭락해 재배농가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지난 10월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가을배추·무 재배면적 조사결과'를 토대로 나온 뉴스였다.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만5095㏊로 작년보다 12.6%(1687㏊) 늘었고, 무는 7532㏊로 10.3%(706㏊ 증가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가격상승으로 인한 기대심리로 재배면적이 늘어 수확기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다. 지난 2일 찾아간 가을배추 주산지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해남군 북평면의 배추밭. 아낙네들이 배추밭에 허리를 숙이고 가을배추의 밑동을 부지런히 자르고 있었다. 한쪽에선 1톤 화물차가 잘라놓은 배추를 싣고 있었다. 배추 절임공장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가을배추 수확. 한 달 전 정부의 발표와 달리 가을배추의 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이돈삼


가을배추 주산지 전남 해남의 배추밭. 밑동이 잘린 배추를 화물차에 싣고 있다. 절임배추 공장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다. ⓒ 이돈삼


"배춧값이요? 작년이랑 비슷해라. 큰 차이 없어."

불과 한 달 전, 배춧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집집마다 김장 한 포기씩 더해야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현장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재배면적은 늘었는데 작황이 예년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배추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정부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일부 농민은 정부의 예측만 믿고 배추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해 큰 손해를 봤다는 얘기도 들린다. 미리서 상인들에 밭떼기로 헐값에 팔아버린 농민들의 손실은 더 컸다. 그 피해를 누가 보상해 줄 것이냐는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절임배추 운반. 양성현 씨가 지게차를 이용해 절임배추 상자를 화물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 이돈삼


절임배추 주문표 전달. 해남에서 절임배추를 생산하고 있는 김옥란 씨가 배달지의 내역이 적힌 명부를 전달하고 있다. ⓒ 이돈삼


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실은 화물차를 따라 절임배추 생산공장으로 갔다. 절임공장은 남창 앞바다와 인접한 해남군 북평면 오산리 들녘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장 앞에는 25톤 트럭이 세워져 있고 절임배추 상자를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트럭에는 20㎏들이 절임배추 상자 1000개가 들어간다고 했다. 절임배추 생산공장의 대표 김옥란 씨는 배추 절임 라인과 포장 라인을 오가며 하나하나 점검하느라 부산했다. 상자에 주문표를 붙이고 주문대장과 대조작업도 했다.

그의 남편 양성현 씨는 지게차를 이용해 절임배추 상자를 트럭에 옮겨 싣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열댓 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배추의 절임작업을 하고 있다.

절임배추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옥란씨. 10년 전부터 가을배추 주산지 해남에서 절임배추를 생산하고 있다. ⓒ 이돈삼


"영업이 따로 필요 없죠. 한번 이용한 고객들이 다시 주문을 해오고. 또 입소문을 전해들은 주부들이 주문을 해오는데요. 일은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한 철이고. 소비자들도 맛있다고 하고. 그게 보람이죠. 재미도 있고요."

김 씨의 입이 귀에 걸려 있다. 김 씨가 절임배추를 시작한 건 10년 전이라고 했다. 생배추로 출하할 때보다 소득이 두 배 가까이 높아서다. 가격도 작황에 따라 오르내리는 생배추와 달리 비교적 안정됐다.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도 매력이었다고.

올해 김 씨가 직접 재배하거나 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확보한 배추밭은 10만㎡. 재배과정에서 친환경 게르마늄 액비를 가져다 두세 차례 뿌렸다. 게르마늄 성분이 지닌 항암, 면역 강화, 중금속 해독, 혈액순환 개선, 콜레스테롤 저하 등 기능성을 더하기 위해서다. 배추를 부드럽게 하면서 아삭아삭한 맛을 더하고 김치로 담갔을 때 물러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해남의 자연조건인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과 바닷물은 기본이다. 밭도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은 곳이다. 그 결과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도 받았다. 배추로 GAP인증을 받은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재배단계에서부터 차별화를 시켰다.

김옥란 씨의 절임배추 생산공장. 싣고 온 생배추를 내려놓으면 자동화 라인을 따라 배추 절임이 진행된다. ⓒ 이돈삼


배추 절임 생산라인. 김옥란 씨의 절임배추 공장에선 최신식 라인에 의해 절임과정이 진행돼 일손을 크게 덜고 있다. ⓒ 이돈삼


절임배추 생산은 깨끗한 지하수를 끌어다 생배추를 씻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지하수도 수질검사를 거친 것이다. 염도는 바다에서 끌어온 바닷물에 천일염을 희석시켜 맞춘다. 천일염으로만 염도를 맞추면 덜 번거롭지만 조금이라도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천일염도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 믿을 수 있는 신안 신의도에서 가져온다. 가공시설도 최신식이다. 배추를 썰고 씻는 일이 자동화돼 있어 일손을 많이 덜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소비자들은 그만큼 더 깨끗한 절임배추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이렇게 절인 배추는 7〜8포기씩 비닐포장을 한 상자에 담아진다. 20㎏들이 한 상자에 택배비를 포함해 3만3000원. 판로는 대부분 직거래다. 일반 가정과 아파트 부녀회를 중심으로 많이 나간다. 지역도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 광주를 가리지 않는다.

배추 절임. 김옥란 씨의 절임배추 생산공장에서 아낙네들이 자동화 라인을 거쳐 나온 절임배추를 건져내고 있다. ⓒ 이돈삼


절임배추 생산. 김옥란 씨의 공장에서 절임과정을 거친 절임배추가 속속 생산되고 있다. ⓒ 이돈삼


김 씨의 절임배추 생산량은 김장철에만 20㎏들이 3만 상자 안팎에 이른다. 이듬해 봄까지 하는 월동배추를 합하면 생산량은 그보다 더 많다.

"모든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가 어렵죠. 한 식구의 입맛도 다른데요. 그래도 '배추가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피로가 싸악 풀리는 것 같아요. 돈도 되고. 이게 또 일하는 보람 아니겠어요?"

지천명이 한참 넘은 김 씨의 얼굴이 소녀처럼 활짝 펴진다. 그의 웃는 모습에서 천진함까지 묻어난다. 배추 절임 라인에서 일하는 아낙네들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절임배추. 생배추에서 절임과정을 모두 거친 절임배추가 포장단계로 옮겨지고 있다. ⓒ 이돈삼


#절임배추 #해남배추 #김옥란 #양성현 #해남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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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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