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라의 백인 처녀보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뒷길에서 본 아메리카 03

등록 2013.12.13 18:28수정 2014.01.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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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이니까, 벌써 15년 안팎 세월이 흘렀네요. 당시 호주 시드니에 출장 갔다가 다소 충격적인 경험을 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허름한 유스호스텔에 들었는데, 방 배정을 받고 문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한 인상을 가진 젊은 백인 여성이 웃옷을 벗은 채로 '하이' 하고 웃음을 지으면서 맞았거든요.

그 방을 4명이 공동으로 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반 나체의 처녀를 갑자기 대하게 될 줄은 몰랐죠. 노크를 하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하고 '쏘리' 라고 기죽은 듯 답하고, 당황해서 후딱 문을 닫고 복도로 돌아 나왔습니다. 밖에서 심호흡을 좀 하고, 한 5분쯤 뒤에 다시 문을 두드린 뒤 방에 들어섰는데 그 처녀는 마찬가지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유럽계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들어오더니, 각자 침대에 짐을 풀었습니다. 좁은 방 벽 양쪽에 2층 침대 2개가 들어서 있었는데, 저는 그 중 한 쪽의 2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반나의 처녀는 맞은 편 침대의 1층에서 잠을 청했고요. 장거리 여행으로 제법 피로했는데도 가슴이 콩닥콩닥 하면서 처음에는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문화충격이었는데, 그때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해외여행은 거의 필수에 가까운 '스펙'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당시 처녀와 청년들은 덴마크, 영국 출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북미대륙을 여행하면서도, 과장하면 미국이나 캐나다 사람 못지 않게 유럽 사람들과 자주 조우했던 것 같습니다.

2011년 여름, 아들과 아들 친구 두 명에게 북미대륙 여행을 권장하고, 기꺼이 그들의 운전기사를 자처한 데는 유럽 청년들의 영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헌데 지극히 제한된 관찰이지만, 우리 청년들과 유럽 청년들은 기질이 좀 다르지 않나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은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미국 횡단여행을 하면서 술을 마셔댔던 것 같습니다. 금주 구역에서도 몰래 술을 사와 밤을 세우곤 했으니까요. 여행하면서 외국인들을 만나보면, 개개인의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인종간 기질 차이도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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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트 보드 ⓒ 김창엽


로키 산맥의 서쪽 고지대에 자리한 그랜비라는 작은 동네의 놀이터입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돼 있는데요, 산간지대 오지에 사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분출시키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서양의 젊은이들은 익스트림(X-treme) 스포츠를 동양 청년보다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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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 ⓒ 김창엽


콜라라도 덴버 인근의 야영장입니다. 아들과 아들 친구 둘, 그리고 제가 하룻밤을 난 곳입니다. 아들과 아들 친구들은 야영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아 텐트를 치는 솜씨가 아주 엉성했습니다. 이날 밤새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허술하게 텐트를 치는 바람에 침낭 등이 좀 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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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청년 ⓒ 김창엽


로키산맥의 오지를 홀로 트레킹하러 온 슬로바키아 출신 청년입니다. 동구 출신은 서유럽 출신에 비해 좀 신중한 느낌을 주는 예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파트타임으로 일한 돈을 모아 이렇게 산속 깊숙이 홀로 트레킹을 떠나곤 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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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 ⓒ 김창엽


34번 US 루트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로키산맥을 넘어가는 청년입니다. 사진 지점이 해발 3000미터 안팎으로 높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전거로 횡단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자전거 타기를 대체로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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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 풍경 ⓒ 김창엽


로키산 국립공원 정상 부근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골짜기가 답답하고 협소하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느낌을 줍니다. 로키산맥의 산들은 지리산보다 규모는 엄청나게 더 크지만 사람을 감싸 보듬어 안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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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 ⓒ 김창엽


로키산맥은 북미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분수령이기도 합니다. 북미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또 하나의 분수령은 동부에 위치한 애팔래치안 산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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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 김창엽


해발고도가 약 3660미터인 로키산 국립공원의 정상 부근, 트레일 릿지 로드 인근입니다. 고도가 높다 보니, 정상 부근은 동토의 땅 알래스카 등지와 마찬가지로 툰드라 기후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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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 김창엽


툰드라 기후를 이겨내고, 한여름에만 아주 꽃이 짧게 피었다가 지는 모스 캄피온이라는 야생화입니다. 홀로 대륙을 떠도는 여행을 했을 때, 들판에 핀 야생화들은 정겹고 애틋한 느낌이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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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산맥 풍경 ⓒ 김창엽


로키산맥의 동쪽 사면, 즉 덴버 쪽 풍경입니다. 태백산맥과 로키산맥은 서쪽으로 완경사이고, 동쪽으로 급경사인 것이 똑같습니다. 이런 지형적 특성 때문에 산의 동쪽과 서쪽의 풍경, 그리고 기후가 꽤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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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 김창엽


혼자 여행을 하면서 휴게소 같은 곳에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경비도 절감할 겸 간편식사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고추장과 날달걀, 그리고 참기름은 주 메뉴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한번에 밥을 한 뒤 몇 차례 나눠 먹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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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 김창엽


로키산맥의 한 호수 근처에서 발견한 우리나라 술병의 뚜껑입니다. 청청한 호숫가에 병뚜껑을 버리고 간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솔직히 반가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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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당 ⓒ 김창엽


와이오밍의 소도시, 셔리단이라는 곳에서 발견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입니다. 음식점이 자리한 곳이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입니다. 와이오밍 주는 땅덩어리가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크지만 인구는 60만 명도 못 되는,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작은 주입니다. 이런 곳의, 그 것도 오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그 자체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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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님 부부 ⓒ 김창엽


셔리단에서 음식점과 가스채굴업을 하는 김선생님 부부입니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공짜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김선생님은 단단한 체구를 가진 태권도 유단자로 현지의 주먹들을 결투로 제압하며 동네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의 차에 올라타 시내 한 바퀴를 도는데, 힘깨나 쓸 것 같은 젊은 백인 청년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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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 김창엽


북미가 아니라 남미가 원산인 라마라는 동물입니다. 혼자 북미대륙을 10만 킬로미터 가량 싸돌아 다녔는데, 아들과 아들 친구를 데리고 여행 할 때도 바로 로키산맥 기슭의 이 목장 옆을 지나쳤습니다. 우연이었는데, 그때 미국이 좁게 느껴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sejongsee.net(세종시 닷넷)에도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sejongsee.net은 세종시의 커뮤니티 포털 사이트 입니다.
#아메리카 #여행 #와이오밍 #로키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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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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