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지켰지만 대신 고양이 시중을 들어야...

시골살이의 재미와 어려움 - 쥐와의 전쟁

등록 2013.12.22 21:08수정 2013.12.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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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각빠각, 빠각."


아까부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봤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일을 하자 아까 그 소리가 또 들린다. 조심스럽게 뭔가를 갉고 있는 듯한 소리가 신경을 거스른다. 그래서 또 귀를 기울여봤지만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잊어버리고 있으면 들리다가 집중을 하면 들리지 않으니, 도대체 뭘까. 대체 소리가 들리긴 들린 걸까?

소리의 정체가 궁금하다

온 신경을 귀에 모았다. 숨소리조차 죽인 채 소리를 찾는다. 한참이 지나자 아까의 소리가 또 들린다. "빠각빠각, 빠각." 냉장고 옆이다. 그 쪽에서 소리가 난다. 발뒤꿈치를 들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다가가서 가만히 내려다봤더니 아이쿠, 이게 뭐야? 새까만 구슬 하나가 빤히 나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후다닥 튀어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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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을 쌓아두는 광도 우리 집 고양이의 관리 구역입니다. ⓒ 이승숙


조막만 한 쥐가 쌩 하니 냉장고 밑으로 숨어버린다. 빗자루로 내려칠 사이도 없이 쥐는 도망가버렸다. 소리의 정체는 알았는데 모르느니만 못하게 생겼다. 무슨 수로 쥐를 잡을 것인가. 가만 있지 않고 도망을 칠 텐데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한 줌 어치도 안 될 것 같은 생쥐 한 마리 때문에 온 집안을 뒤지고 다녀야 할 판이다.

고구마 상자 주변에는 잘게 갉은 종이 부스러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심지어 자잘한 쥐똥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박스 안에는 갉아먹다가 남긴 고구마들도 대여섯 개나 된다. 속노란 강화 고구마의 노란 속살에 오목오목 갉아 먹은 이빨 자국이 선명하다.


안 봤으면 모를까 알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생겼다. 쥐가 어떤 동물인가. 소리 없이 드나들며 곡식을 축낼 뿐만 아니라 더러운 병균까지 옮긴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반드시 없애야만 한다. 그래서 그날부터 우리 집에서는 쥐를 잡기 위한 온갖 방법들이 다 동원되었다.

쥐 끈끈이로 쥐를 잡았지만

처음 시도한 건 쥐 끈끈이였다. 쥐 끈끈이는 말하자면 쥐 감옥이다. 한 번 끈끈이에 발을 딛게 되면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종이 가운데 넓적하게 강력 본드가 칠해져 있고 그 한가운데 쥐가 좋아할 먹이가 하나 얹혀 있다. 쥐는 먹이를 보고 조심스레 접근하다가 그만 쥐 끈끈이에 붙어서 옴짝달싹을 할 수 없게 된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몸은 더 끈끈이에 달라붙게 되고 빠져나가려고 용을 쓰다보면 점점 더 헤어날 수 없게 된다. 한 번 끈끈이에 붙은 이상 절대 빠져나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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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실은 훈훈해서 고구마를 보관하기에 좋지만 쥐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하니, 고구마를 쥐와 우리가 사이좋게 나눠 먹을 것 같습니다. ⓒ 이승숙


쥐 끈끈이를 쥐가 다닐 만한 길목에 놓아두고 날이 샐 때까지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에 주방에 가자 찍찍 하는 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좀 안 된 마음도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그 후로도 두어 마리 더 잡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더 이상 걸려들지 않았다. 아마 쥐들도 꾀가 있어서 알아챈 모양이었다.

고구마 박스 주변에는 쥐가 다닌 흔적이 여전히 있었다. 아직도 소탕해야 할 쥐가 더 있다는 소리다. 주방 어딘가에 쥐가 드나드는 구멍이 있는 모양인데 우선 그것부터 막는 게 더 급선무다. 그래서 또 사방을 뒤집어보니 냉장고 뒤 벽에 자그마한 구멍이 하나 있다. 저 구멍으로 쥐가 무시로 드나들었나 보다.

밤송이를 하나 끼워뒀지만 소용이 없었다. 돌로 막아도 별무 소용이었고 나무판자를 끼워둬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로 구멍을 막아봤지만 그때마다 쥐는 요령 있게 또 길을 내고 들어왔다. 하기사 먹을 게 지천인데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고구마를 다른 곳으로 치우면 쥐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텐데 나는 그리 하지는 않고 작년 겨울 내내 쥐와 숨바꼭질을 했다.

쥐는 겨울철이 되면 사람이 사는 집 근처로 와서 먹이를 구한다. 추수를 한 벼를 비롯해서 콩이나 팥과 같은 잡곡들과 고구마 등을 거둬 갈무리해두니 쥐로 봐서는 인가(人家) 근처에서 먹이를 구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 집은 쥐가 드나들기 좋은 옛날 시골집이니 겨울 동안은 쥐와 동거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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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티를 아직 채 벗지 못한 어린 고양이지만 그래도 쥐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인가 봅니다. ⓒ 이승숙


고구마는 지켰지만 대신 고양이 시중 들게 생겼네

작년 겨울에 고구마를 두고 쥐와 내내 싸움을 했다. 그까짓 것 쥐가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끈끈이에 쥐약에 온갖 수선을 다 피웠을까.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집 안에까지 쳐들어온 쥐를 어찌 그냥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먹잇감을 치우면 될 일인데 나는 그것은 손 안 대고 애꿎은 쥐만 탓하며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다.

다시 가을이 오고, 고구마를 캐자 보관이 문제로 떠올랐다. 고구마는 추운 곳에 두면 잘 얼기 때문에 실온에서 보관을 해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올해는 고구마를 많이 심어 친지들에게 나누어주고도 제법 여러 자루가 우리 몫으로 남았다.

나중에 먹을 것은 훈훈한 온기가 있는 보일러실에 두고 우선 먹을 것들을 따로 골라 대여섯 상자를 냉장고 옆에 쌓아두었는데 지난겨울의 일이 생각이 났다. 쥐 때문에 고심을 했던 게 떠올라서 올해는 어떻게 해야 쥐를 막을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쥐 끈끈이보다 더 근본적인 방법은 없을까.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면 쥐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웃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 왔다.

쥐방울만 한 고양이지만 제법 밥값을 한다. "야옹, 야옹" 하고 우는 소리도 제법 야무지다. 고양이 덕분인지 쥐가 얼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이제 나는 고양이 시중을 들어주는 신세가 되었다. 비린내가 나야 입을 대는 고양이를 위해 장날이면 생선가게를 기웃대고 사람 밥상에는 푸성귀만 올려도 고양이 밥그릇에는 멸치 꽁다리라도 하나 얹어줘야 한다. 조막만 한 쥐에게 골탕을 먹던 '톰과 제리'라는 만화 속의 고양이는 이제 내가 대신 된 것 같다.
#쥐 #고양이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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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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