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벌 떠는 민주당, 도대체 반격은 언제 하나

[주장] 불법·부정선거는 정치적 타협 불가... 민주당 결단, 빨리 올 수도

등록 2013.12.24 13:51수정 2013.12.2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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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핏하면 "지난 대통령선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냐?"며 종주먹을 들이대고, 그럴 때마다 "그게 아니고..."라며 허겁지겁 손사래 치기 바쁘다. 정치권에서 지난 1년 동안 무수히 등장한 광경이다. 민주당이 대통령직 사퇴나 하야를 요구하는 건 아니라고 오래전에 선을 그었는데도 그렇다.

2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긴 했다. "당선되면 (집권 2년 뒤에)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이 된 노태우의 마음이 1989년이 되자 싹 변했다. 36.6% 지지율로 간신히 당선했는데, 국회는 여전히 여소야대였고 중간평가를 요구하는 여론도 점점 높아가는 상황이었다. 도무지 중간평가를 받을 자신이 없었다.

노태우 정권은 김대중의 평민당을 먼저 공략했다. 김대중은 이미 "조기 중간평가를 실시하려는 것은 정부·여당이 안정을 볼모로 삼아 국민을 협박하는 행위"라며 "여권이 중간평가를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반대투쟁을 벌이겠다"는, 중간평가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다소 모호한 입장을 내놓은 터였다. 양측은 협상 끝에 결국 전두환의 국회증언, 광주문제 해결, 지방자치 실시 등과 함께 중간평가 유보에 합의했다.

중간평가에 대한 3당 3색의 입장

노태우 정권의 중간평가 유보 소식을 알리고 있는 <경향신문> 기사(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 경향신문


김종필의 공화당은 처음부터 중간평가에 부정적이었다. 가장 강경했던 김영삼도 제1야당인 평민당이 회군을 해버리니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김영삼은 3당합당으로 오히려 여권에 투항해 버리면서 민주세력을 배신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협상을 맡았던 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는 "노태우가 신임을 걸고 국민투표를 하게 되면 우리가 이길 확률은 0.1%도 되지 않았다, 야당이 죽기 살기 식으로 국민투표를 치른다면 혹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재야 등 급진세력들을 총망라해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되는데, 그것은 극우세력의 등장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았다"고 중간평가 유보에 합의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길 가능성이 없었고, 이기더라도 그 이후의 정국혼란을 책임질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인데,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야권이 세 쪽으로 갈라져 중간평가를 보는 셈법이 각각 달랐다는 것이다.


선거 때 약속한 중간평가를 실시하라는 요구와 선거 결과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같을 수는 없다. 전자는 공약이행이라는 정치적 책임문제이지만 후자는 명백한 불법·부정선거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현직 대통령의 거취가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는 같다. 1989년의 경험에서 2013년에 참고할 부분이 있는 이유다.

중간평가 요구와 대통령 사퇴 주장의 다른 점-같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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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1주년을 맞은 지난 12월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관권·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 참가한 한 가족이 '박근혜 댓통령 직위해제'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지난 대선에 대해 여러 의견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A. 대통령선거란 엄중한 것이다. 총선이나 지방선거와는 격이 다르다. 재선거란 역사적으로 있지도 않았고 자칫하면 국가적 혼란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약간의 부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함부로 '선거를 다시 치르자'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 새누리당 지지자들 포함 보수층의 생각

B. 지금은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국면이다. 수사를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재선거 여부는 수사 결과가 나온 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C. 부정선거가 있었다 하더라도 재선거는 없다는 전제 아래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런 전제가 없으면 수사 자체가 어렵고, 추후 국가적 혼란이 두렵다. 수사 결과에 따라, 다음 번 선거부터는 공정하게 치를 수 있도록 관계 기관에 대한 개혁과 관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로 족하다. - 민주당의 공식 입장

D. 수사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수사 결과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면 당연히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F. 지금까지 나온 수사결과만 놓고 봐도 부정선거가 확실하다. 그럼에도(또는 그렇기 때문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 더 이상의 국정혼란을 피하기 위해 지금 당장 대통령이 사퇴하고 재선거 과정에 들어가야 한다. - 장하나 의원의 개인성명

A의 속셈은 우선 수사를 방해하고 재판을 최대한 끄는 것이다. 야권과 시민사회는 B, C, D, F로 분열되어 있다. A나 C는 똑같이 혼란을 이야기 하지만 A가 혼란을 겁박의 무기로 사용하는 반면 C는 혼란을 통제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두렵다. A가 F를 이용해 B, C, D를 흔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1989년에 평민당이 한 번 경험한 적 있는 바로 이것이 '대선불복 프레임'의 요체다.

민심은 어떤가. 지난 12월 9일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 사퇴' 발언을 집중보도하면서 실시한 JTBC의 여론조사는 장 의원이 '잘했다'가 24.6%, '부적절했다'가 63.1%였다. 63.1%에는 요지부동의 30%를 자랑하는 A는 물론, B, C, D가 다 포함됐을 것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일단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그를 찍었든 아니든 대통령을 지지하고 지키려는 민심의 흐름이 2년~2년 6개월 정도는 간다고 본다"고 말한다. 워낙 말도 안 되는 탄핵사유이기도 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 때도 그런 민심이 폭발했다. 1989년의 평민당도 그런 민심을 의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고 민심도 변하는 법이다. 63.1%에서 30%를 뺀 33.1%가 B, C, D에 얼마씩 분포돼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국군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수사 결과를 보듯, 지금처럼 진실을 덮으려는 A의 안간힘이 계속되면서 특검이 결국 물 건너가게 되면, B와 D는 A와 F쪽으로 나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C도 입장을 확실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법·부정선거의 양태와 규모가 낱낱이 밝혀져도(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됐거나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혹은 개표부정 포함) 박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민주당. 즉 D의 입장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최종적인 것이 될 수도 없다. 노태우의 중간평가는 정치적인 약속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으로 풀 수 있었지만, 불법·부정선거는 법과 헌법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주당의 결단, 빨리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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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남소연


그걸 알기 때문에 새누리당 등 집권세력이 결사적으로 수사를 방해하는 동시에 걸핏하면  '대선불복 프레임'을 가동하는 것이다. 이미 분열된 야권이 계속 자중지란을 일으켜 특검 등 철저한 수사를 관철하려는 강력한 추동력이 형성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위협하고, 때로는 스스로 혼란을 일으켜 시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도 한다.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많은 시민은 민주당이 하루빨리 이 프레임을 깨고 나와 싸움의 선두에 서서 이끌길 기대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시민사회와 종교계가 민주당을 끌어가는 양상이 계속될 듯하다. 민주당은 실력도, 배짱도 많이 부족하고 제 스스로 단결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50% 이하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급기야 지난 22일에는 5000여 명의 경찰이 경향신문사 사옥에 입주해 있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불법 침탈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정권퇴진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당의 결단의 순간이 의외로 빨리 닥쳐올 수도 있다.
#대선불복 #중간평가 #민주당 #장하나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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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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