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소리 들으며 홀가분하게 파업, 가능할까

[서평]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 <굿바이 근혜노믹스>

등록 2013.12.27 20:35수정 2013.12.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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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요. 에어컨 좀 켤게요."
"전기가 부족하니 좀 참죠."

"공약하신 대로 기초노령연금 주세요."
"국가재정이 부족하니 좀 참죠."


"그럼 반값 등록금이라도…."
"돈 없는 데 참죠."

요즘 인터넷에 유행한다는 박근혜 정부 풍자글이라고 한다. 제목은 '참죠 경제'. 박근혜 표 경제정책의 대표 슬로건인 '창조 경제'를 비꼬는 내용이다. 예산 타령만 해대며 각종 경제·복지 관련 공약을 헌신짝 내버리듯 하는 행태를 꼬집고 있다.

'참죠 경제'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공약도 포함할 만하다. 물론 올해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몇 개 있긴 하다. 하도급 불공정거래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한 하도급법(4월 국회 통과),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과 부당내부거래(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6월 국회 통과), 프랜차이즈 24시간 강제영업 금지 등을 규정한 가맹사업법(6월 국회 통과) 등이 그것이다.

이들 법안의 의의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안은 반쪽짜리로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를 의심하는 까닭이다.

'경제민주화, 어떻게 좀 안 될까요'... '경제도 불황인데 참죠'


현재 국회 계류중인 공정거래법은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대선을 전후로 야당 일각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고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쟁점이 되었던 '기존 순환출자'분에 대해서는 제재할 방도가 전혀 없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나 법안을 도입하는 데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별 것 없다. 이들 정책이나 법안들이 기업들의 경제 활동에 훼방을 놓아 경제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논리다. 투명하고 공정한 경제를 꾸려가는 데 필요한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이나 법안 들을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쯤으로 보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했더니 '경제도 불황인데 참죠' 하는 식이다.

경제민주화가 대체 뭘까. '경제민주화'를 조어론적으로 보면, '경제'라는 목적어적 명사와 '민주화'라는 서술어적 명사로 분석되는 합성어다. 뜻을 풀이하면 '경제를 민주화하다' 정도가 된다. 아주 단순하다. 문제는 이렇게 경제를 민주화한다고 할 때, 그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안이 관점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십인십색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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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근혜노믹스> 표지. ⓒ 북돋음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굿바이 근혜노믹스>는 바로 그 '경제민주화'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 정승일은 한국에서 복지국가 정치의 초석을 놓은 복지국가 소사이어티의 창립 멤버다. 재벌 해체나 개혁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경제민주화론의 주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비주류 경제민주화론자이기도 하다. 왜 그런가 보자.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를 통해 재벌그룹을 축소시켜야 경제가 민주화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재벌 패밀리의 문제를 재벌그룹의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56쪽)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기존 경제민주화론의 주류는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와 같은 장치를 통해 재벌의 규모나 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운찬, 김광수, 장하성 등과 이들의 제자나 동료들인 전성인, 김상조, 이동걸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재벌 개혁을 통해 공정한 시장 질서(완전 경쟁 시장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반면 저자는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돈 없고 자본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어떻게 기업과 국민경제 차원에서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로 본다.

회사 안에서는 주주(재벌 총수와 대주주, 소액주주)들이 독점한 이사회 권력과 각종 의사결정 권력을 해체해 종업원 대표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봐요. 종업원도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모든 주요 의사결정 단위에 참여하는 형태로 경제 권력을 공유하는 거죠. 국민경제 전체 차원에서는 시장경제를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국가(민주공화국) 주도 경제를 만들고, 국민경제 전체의 각종 의사결정 단위에 국민과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로 경제 권력을 공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63쪽)

한 마디로 복지국가와 민주공화국의 원리에 부합하는 질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국가 주도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진짜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게 저장의 주장이다.

'기존'이든 '신규'든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금지하면 경제가 민주화하여 직장인들의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까. 금산분리 원칙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면 재벌들의 비민주적인 경제활동 행태가 줄어들어 서민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는커녕 '순환출자'나 '금산분리'라는 말에서부터 막혀 한숨을 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기존의 주류 경제민주화론이 서민경제 수준의 담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밥 먹여주는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저자의 논리는 분명 눈여겨볼 만하다.

저는 경제민주화가 정말로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삶의 현실 속에서 가장 아쉽고 시급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봐요. 즉 '밥 먹여주는 경제민주주의'만이 국민들의 너른 동의와 지지를 받을 거라는 말이죠. 따라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직장인들과 종업원들, 소상인들의 꿈과 바람, 희망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봉급 인상이나 직장 내 승진, 비정규직 차별 해소, 매일 6시에 정시 퇴근하는 것, 비정규직 또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더라도 별다른 임금 차별, 복지 차별이 없는 나라, 그런 소박한 소망에서 경제민주화가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104쪽)

그래서 저자는 '민주주의는 회사(공장) 정문 앞에서 정지한다'는 말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주주와 종업원이 대기업을 공통 통치하는 경제민주주의를 제안한다. 꿈 같은 얘기가 아니다. 저자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바, 종업원 공동 통치가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 기구에서 관철되고 있는 독일과 스웨덴의 예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스웨덴, 이건희 같은 사람 최고 경영자 될 수 없어

194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60년 넘게 정착되고 있는 독일의 종업원 공동결정제는, 대기업의 경우 이사의 절반을 주주 대표가, 나머지 절반을 종업원 대표가 차지한다. 스웨덴에서는 종업원 이사가 이사회 구성원의 1/3을 구성한다. 당연히 독일이나 스웨덴에서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 선친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이건희 같은 사람이 최고경영자가 될 수 없다.

비주류 경제민주화론자로서의 저자의 논점은,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 문제에서도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모든'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거나 약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경제력 집중이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령 철도·통신과 같은 공공 인프라 산업은 국유화를 통한 경제력 집중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저자의 논리는 한 마디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집중된 경제력을 특정 이익집단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남용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견제하거나 통제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재벌그룹에 대해 사회적인 통제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기업그룹의 경우, 그룹 경영 조직과 총수 가족의 행위를 국가(법원 또는 금융 감독기구)와 종업원 대표들이 공동으로 통제·통치하고, 나아가 그룹 경영에 대한 공시를 강화해 주식시장 애널리스트들에 의한 감시를 강화하면 재벌그룹에 대한 사회의 통제 장치가 다층적으로 강화됩니다. ··· 이런 식으로 재벌그룹들을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적 통치에서 벗어나게 하고 종업원과 국가 등이 공동으로 재벌그룹들을 통치하게 하면 되는 거지, 굳이 재벌그룹 해체(경제력 집중 해소) 또는 축소(경제력 집중 완화)에 기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140쪽)

글머리의 '참죠 경제'로 돌아가자. 저자의 견해를 전제로 하면,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는 종업원과 직원들의 권리 및 권익 신장,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권리 제고 등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앞서 언급한 종업원 공동결정제를 도입하는 것이, 지금 여야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산분리, 순환출자 금지 등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가. 저자는 현재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종업원이나 노동자의 지위 향상이나 자본에 대한 사회적 감시·견제와 같은 의미에서의 경제민주화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정당한 파업에 '신경질적으로' 불법 딱지를 붙이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무차별적인 징계와 폭력적인 검거의 칼날을 들이대는 적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마치 '경제도 불황인데, 파업 좀 참죠' 하는 식이다.

대체 우리는 어느 세월에 '합법' 소리를 들으며 편하고 홀가분하게(?) 파업권을 누릴 수 있을까. 실체 없이 우왕좌왕하고, 애초의 약속도 깡그리 내팽개치는 몰염치한 '근혜노믹스'에 언제쯤 '굿바이'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참죠 경제'만을 되뇌이며 '말이 안통하네뜨'의 외곬수 길을 가는 대통령이 위태롭기만 한 까닭이다.

하기야 박 대통령은 4년쯤 후에 권좌를 떠나더라도 아쉬울 게 없을 테니 그만이겠다. 그러나 4년 후에도 지리멸렬한 삶을 꾸려가야 하는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서민들은 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노동자·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굿바이 근혜노믹스> (정승일 지음 ․ 공은비 엮음 | 북돋움 | 2013. 12. 12 | 350쪽 | 15,000원)

이 글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굿바이 근혜노믹스 - 정승일의 단도직입 경제민주화론

정승일 지음, 공은비 엮음,
북돋움, 2013


#<굿바이 근혜노믹스> #정승일 #북돋움 #경제민주화 #종업원 공동결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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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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