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상설특검인 ‘제도특검’..국회 최악선택할텐가

여야 논의 중인 제도특검 아무런 기능 못해..민주당 왜 합의했나

등록 2013.12.30 14:51수정 2013.12.30 14:51
1
2013년 연말을 앞두고 국회에서 상설특검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도입을 주장해 왔다. 정경유착 등 권력형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검찰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고비처를 도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현 정부 하에서 고비처의 대체재인 상설특검도 어느 정도 검찰개혁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비처가 잘 만들어진 전문제품이라면 상설특검은 대체재로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쓸만한 제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전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늦었지만 상설특검 논의를 반가운 마음으로 접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최근 국회의 논의는 상설특검 논의가 아니었다. 이름만 상설특검이지 상설특검을 도입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내용이 여야 합의로 논의되고 있었다.

여야는 첫째, 상설특검을 기구특검보다 한 단계 낮은 제도특검으로 도입하기로 했고 둘째, 발동의 요건을 국회 본회의 재적 3분의 1 의결이 아니라 2분의 1로 합의했다고 한다. 상설특검의 장점을 죽인 최악의 합의이다.

대통령 공약으로서 상설특검보다 훨씬 강력한 고비처를 주장해 온 민주당이 합의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연내 처리는 어렵다고는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이상 곧 입법될 것으로 보인다.

'제도특검'은 상설기구를 상설법률로 치환하는 퇴행적 발상

먼저 제도특검은 상설특검이 아니다. 제도특검이란 '상설특검'이라는 법안만 통과시켜 놓거나 특검만 임명해 놓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대상사건은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정해지고 수사기간 역시 60일 혹은 90일이라는 제한을 받는다. 조직과 인력도 없다. 따라서 평소에는 부정부패 감시나 검찰 견제 활동을 할 수 없다. 기존의 특검과 똑같다.


그리고 특검 발동시마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반대로 실시가 어려운 문제, 지리한 국회의 정쟁을 거쳐야 하는 문제, 정쟁의 도구로 특검을 이용하는 문제 등 기존 특검의 한계는 그대로 남는다. 사안마다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상설특검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상설적인 기구를 두자는 것인데 이를 상설법률로 치환해 버렸다. 놀랍도록 퇴행적인 발상이다.

여기에 더해, 보도에 의하면 새누리당은 국회의결 이후 법무부장관의 동의를 요건으로 추가한다고 한다. 더욱 놀랍다. 기존의 특검보다 훨씬 못한 안을 개혁방안이라고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기존의 특검은 법률로 국회에서 의결했다. 따라서 법무부장관을 포함한 국가에게는 이를 집행할 의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입장은 법무부장관에게 국회의결을 심사하고 뒤집을 수 있도록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특검의 발동을 더 어렵게 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입법부로서의 자존심도 찾을 수 없다. 국회의 다수가 의결한 특검법안을 법무부장관이 다시 심의하는 일은 권력분립상 있을 수 없다. 유일하게 대통령에게 비토권이 인정될 뿐이다. 대통령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다만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특검발동 국회 의결 정족수 1/2'은 상설특검 하지 말자는 것

특검을 발동하는데 국회의결을 민주당이 3분의 1에서 2분의 1로 양보한 것은 상설특검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얼핏 보면 당연히 과반수로 특검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설특검은 기존의 특검이 활성화되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 특검보다 발동이 쉬워야 한다. 발동이 쉽게 되려면 야당에게 결정권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래도 특검은 정권과 결부된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 국가기관의 권한남용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야당이 특검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국회의결의 3분의 1을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를 기존의 특검과 동일한 방식으로 합의해 버렸다. 이 정도면 아예 상설특검을 도입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설특검은 박근혜, 문재인 모두의 공약... 국민 바람대로 도입하는 게 의무

상설특검은 기존의 특검이 우리 현실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반성에서 도입하는 제도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후보 모두 대통령 선거 시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검찰개혁을 하기 위하여 상설특검 혹은 고비처 설치를 공약했다. 고비처는 상설특검보다 더욱 강력화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설특검은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투표한 국민도,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도 모두 원하는 것이 최소한 상설특검인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 절대다수가 원하는 상설특검을 제대로 도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상설특검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서는 기존 특검의 한계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상설특검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설특검은 기존 특검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기존 특검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회의 입법을 거쳐야 하니 발동도 쉽지 않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고 정치공세의 장이 되어 버렸다. 둘째, 수사의 대상이 법률로 정해지다 보니 특검이 부정부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없었다. 중대한 사건은 자주 빠졌고 오히려 정쟁의 대상이 된 사건을 수사하기도 했다. 셋째, 매번 새롭게 구성되니 지속적인 감시와 수사를 못했고 전문성도 떨어진다.

이러한 반성에 선다면 상설특검은 적극적으로 권력형 비리와 국가공권력의 권한남용을 수사하는 능동적 반부패기관으로, 상설적인 전문기관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상설특검은 정치적 소수파를 배려해야 한다. 상설특검은 특히 정치적 다수파가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벌이는 부정부패,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다수파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가 바로 상설특검이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은 정치적 다수파가 이권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다수파를 견제하기 위하여 정치적 소수파인 야당에 구성권한, 발동권한을 좀 더 부여해야 한다. 상설특검 대상 사건 결정을 국회의원 3분의 1로 주장하는 이유이다.

현재 논의 중인 상설특검은 아예 도입하지 않는 것이 낫다

이러한 원칙에 비추어 보면 지금 논의되는 상설특검은 아예 도입하지 않는 것이 나아 보인다. 기존 특검의 문제점을 하나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기존 특검보다 후퇴한 개악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했던 고위공직자, 정치인의 비리를 수사하는 것도 현재의 상설특검으로서는 불가능하다.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과 국가공권력 견제라는 목표는 실종된 채 상설특검이라는 이름만 남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을 정치권 모두가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은 상설특검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공약을 지켰다는 명분을, 새누리당은 대통령 공약을 이행했다는 명분을 노리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어떤 생각일까? 아마 개혁을 했다는 명분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민이 얻는 것은? 국민은 아무런 내용이 없는 상설특검이라는 이름만 얻는다. 오히려 후퇴한 제도를 얻게 된다. 이게 무슨 개혁인가? 이게 무슨 국회의 논의인가? 오히려 무늬만 상설특검을 도입하여 다시는 고비처나 상설특검 논의를 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개혁'취지와 거리 먼'제도특검' 다시 논의하는 게 마땅

올해 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는 검찰개혁의 중요한 계기로서 상설특검을 꼽았다. 고비처 도입이 원래의 주장이었으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상설특검이라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도특검이 아닌 기구특검으로, 이는 최소한의 요구였다.

민변은 참여연대와 함께 시민사회의 대표를 자임하고 상설특검 법안을 성안했다. 그리고 민주당 법사위원들을 만나 상설특검 법안을 설명했다. 필자는 사법위원장으로서 당시 상설특검을 직접 성안하고 설명했다. 필자는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고비처 공약 마련에도 관여했지만 최소한 수준의 개혁으로 상설특검을 배제하지 않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설명했다. 민주당으로서도 상설특검은 부족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래도 개혁의 가능성을 믿고 상설특검 법안을 마련하고 입법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결과는 전혀 다르다. 민주당 의원들은 민변과 참여연대의 상설특검 법안과 완전히 다른 내용을 합의했다. 처음의 다짐은 간 곳 없다. 양보해서는 안 될 선까지 양보해 버렸다.

민주당 의원들은 진짜 이렇게 합의되면 상설특검이 제대로 운용되어 권력형 부정부패와 국가기관의 권력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합의를 개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만일 이 질문에 확신을 가지고 '예'라고 할 수 없다면 다시 논의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존의 합의는 어떻게 하느냐고? 국민과의 약속은 항상 모든 것에 앞서는 법이다. 당장 상설특검를 다시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상설특검 #제도특검 #고비처
댓글1

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