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물고기가 있어라'가 새해인사?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54] 魚

등록 2014.01.03 15:28수정 2014.01.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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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어(魚)는 갑골문에서 보듯 물고기의 입과 몸통, 지느러미와 비늘을 표현한 상형자인데 꼬리지느러미를 불 화(火)로 표현했다가 ‘?’으로, 간체자에서 가로획으로 변했다. ⓒ 漢典


중국인들은 새해가 되면 '해마다 물고기가 있으라'는 의미의 '년년유어(年年有魚)'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그와 비슷한 덕담을 나눈다.

물고기 어(魚, yú)의 발음이 여유롭다는 뜻의 여(餘, yú)와 같기 때문에 한 해의 넉넉한 여유로움을 기원하는 의미가 된다. 또 중국인들은 손님을 접대할 때도 요리 후반부에 꼭 생선요리를 추가한다. 이는 성찬을 준비하고도 아직 자신에게 여유가 있음을 과시하는 한편 상대방이 늘 여유 있길 바라는 기원을 담는 것이라고 한다.

물고기 어(魚)는 갑골문에서 보듯 물고기의 입과 몸통, 지느러미와 비늘을 표현한 상형자인데 꼬리지느러미를 불 화(火)로 표현했다가 '灬'으로, 간체자에서 가로획으로 변했다. '어(魚)'와 '로(魯)'를 구분 못할 정도의 무식함을 '어로불변(魚魯不辨)'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주 쉽게 인식된 글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 화항관어(花港觀魚)에는 청나라 강희제가 쓴 비문이 유명하다. 불심이 깊었던 강희제가 물고기 '魚'의 아래 점 네 개(灬)를 불 위에서 물고기가 뜨거우니 물 위에서 노닐 게 하겠다는 의미로 점을 세 개만 찍어 놓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언어유희로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에게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쑤저우(蘇州)의 어느 정원에 장자와 혜시의 대화에서 나온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子非魚,安知魚之樂)" 라는 글귀가 적힌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장자가 호숫가 다리 아래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고 저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이라고 하자 혜시는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가 즐거운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그러자 장자는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느냐고 한다. 이에 혜시는 내가 그대가 아니어서 그대를 모르는 것처럼 그대 또한 물고기가 아니니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 아니냐고 한다. 이에 장자는 혜시가 처음에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하고 물은 것이 이미 장자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논쟁을 마무리한다.

물고기가 물에서 노니는 것이 즐거움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또 장자와 혜시의 논쟁에서 누구 이겼는지 판가름하기도 쉽지 않지만 물고기가 물을 떠날 수 없고(魚不可離水) 물고기와 물은 서로 의지하는 밀접한 관계(魚水相依)로 살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고대인들에게 물고기 어(魚)는 물에 사는 광범위한 생물을 대표하는 의미로 통용되었으며 드물고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또한 장자와 혜시의 논쟁에서 보듯 여유와 풍류를 즐기는 매개체로 널리 사랑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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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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