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잘못"... 박 대통령 최초 언급했다

[분석]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민주당 7가지 요구사항은 외면

등록 2014.01.07 11:36수정 2014.01.0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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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은 80분 동안 진행됐는데 17분 동안 신년구상을 밝혔고 이후 시간에는 12명의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아 답했다. 신년구상의 반 이상을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설명에 할애했다. 이름까지 계승하고 싶었던지 해당 명칭은 박정희 전 대통령 당시 추진됐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흡사하다. 언론에서는 두 계획을 비교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신년구상에서 경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한 박 대통령은 곧이어 '남북관계' 이야기로 넘어갔다. 장성택 처형을 언급한 뒤 북한 비핵화와 이산가족 상봉 필요성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세대별로 겪고 있는 입시, 취업, 주거, 보육, 노후 등 5대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는 질의응답 시간으로 넘어갔다.

박 대통령은 17분 동안의 모두발언에서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언급하지 않았다. 듣는 내내 언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언급할지 궁금했을 국민들은 모두발언이 끝났을 때쯤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날 오후에도 천주교에서는 '박근혜 퇴진' 시국미사를 진행했다. 박 대통령 표현처럼 대선개입 문제로 '1년 동안 국론이 분열됐고, 국력이 소모됐다'. 앞으로도 나아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데, 왜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나?

이유는 질의응답에서 풀렸다. 세번째 질문에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리고 기자들은 해당 질문이 예정돼 있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청하던 국민들은 한편의 드라마를 시청한 셈이다. 매우 잘 짜여진 '웰 메이드' 드라마!

최초로 나온 '잘못' 발언, 의미 부여한 언론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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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집권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 청와대


1년 만에, 즉 취임 후 처음 진행되는 기자회견이었는데 첫 질문주자로 나선 <연합뉴스> 기자는 '출범 1주년 소회와 향후 국정운영 구상'을 물었다. 향후 국정운영 구상은 앞서 진행된 17분간 인사말에 들어 있다. 그리고 지금이 출범 1주년 소회나 묻고 있을 한가한 시국인가. 박 대통령은 소회를 묻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외교적 성과'를 홍보하고, '방공식별구역' 문제와 '러시아 비자 면제' 등을 언급했다. 질문도, 답변도 놀라울 따름이다. 위 질문은 세번째로 나왔다.

동아일보 기자 "대선이 끝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시끄럽다. 야당은 특검을 요구하는 상황인데, 대통령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고, 야당의 특검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지 궁금하다. 지난해 말 여야가 국정원 요원의 기관 상시출입 금지 등을 담은 국정원 개혁 법안을 통과 시켰다. 이에 대해서도 평가해 달라."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묻는 <동아일보> 질문에 박 대통령은 예상 답변을 내놓았다. 야당 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특검은 '재판 중'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피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언급했던 내용, 즉 '여야가 합의하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상기 시킨 뒤 '국정원 개혁특위'의 합의내용을 언급했다. 그리고 소모적인 논쟁을 접고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위의 발언을 하면서 박 대통령은 '잘못'이란 말을 흘렸다. 신중하고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했던 과거 발언과 비교해 볼 때 실수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다행히 연말에 여야가 많은 논의 끝에 국가정보원, 또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했고, 국가정보원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했기 때문에 이제는 제도적으로 그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차단이 됐다"고 말했다.

'불통녀' 소리까지 들으면서 꿋꿋하게 침묵했던 박 대통령이 입을 열어 처음으로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인정한 그 잘못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국정원이 저질렀다는 건 알겠는데 누구를 위해,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것인가. 즉, '육하 원칙'이 베일에 가려진 상태인 것이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의 도움을 받은 대통령이 생중계되는 TV를 통해서 지난 대선 당시 국가기관 행동을 일컬어 '잘못'이라고 표현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발언에 주목한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

대선개입 관련 대응 '3단계' 이론, 무관–역공–잘못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인정한 '잘못' 발언에 의미를 부여해 보자. 그동안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태도는 변화했다. 그것은 사건의 실체가 드러남에 따른 불가피한 태도변화로 보인다.

지금까지 3단계로 변화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최초는 '무관'함을 주장했다. 지난해 6월 24일에는 "나는 관여해 오지 않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원세훈, 김용판 기소 후의 반응이었다. 국정조사 직후인 8월 26일에도 "지난 대선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2단계는 나름 '역공'을 펴는 단계에 해당한다. 지난해 9월 16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3자회동'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내가 (국정원)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는 말이냐"고 오히려 따져 물었다고 김 대표가 언론에 전했다. 11월 18일 국회 시정연설 당시에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안은 사법부 판단을 기다렸다가 책임을 묻자며 당시 기세등등했던 야당에게 기다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잘못' 인정은 또 다른 단계로 해석된다.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이 거세지니까 사법부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가, 이제는 '잘못'이라고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야당 주장은 외면, '자랑스러운 불통' 천명

박 대통령은 이날 12개 언론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관례상 사전에 협의된 내용을 가지고 순서에 맞게 진행되었음에도 화제의 표현들이 속속 등장했다. 말하자면 '통일은 대박이다'는 말로 SNS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고, 이날 아침 <통일비용 겁내지만… 혜택이 배 크다>는 기사를 게재한 <조선일보>를 흐뭇하게 해줬다.

또 일부 역사 교과서가 불법 방북을 처벌한 것을 '탄압'이라고 표현했다며 이를 일컬어 '편향된 인식' 운운했다. <오마이뉴스>에서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 있지도 않은 교과서 내용 비판>이란 기사를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기자회견 시 대통령께서 2014년 새로 사용될 교과서라고 명시한 적이 없음에도 기사에서는 2014년 교과서를 지칭한 것으로 객관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순서가 잘못됐다. 왜 언제인지도 모르는 과거 교과서 얘기를 꺼내서 '역사 편향' 운운한 것인지부터 설명해야 순서가 아닐까.  

6일 신년 기자회견을 앞두고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특검 도입, 개각, 경제민주화 실현, 사회적 대타협위원회 구성,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전향적 대북정책, 정치복원 등 7가지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다양한 이유를 대면서 수용하지 않았다. 야당과의 소통을 고려했더라면 몇 가지 항목에 대해서 '향후 검토' 정도의 립서비스라도 해줄 수는 없었던가.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 날 천주교 수원교구에서는 '박근혜 퇴진' 시국미사가 열렸다. 사제들은 이 자리에서 '박근혜씨는 댓글 대통령, 회개하고 사퇴하길' 기도했다. 이번 달 말에는 영남에 위치한 마산교구에서 또 한번의 '박근혜 퇴진' 시국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정치'가 아닌 '옳고 그름'에 맞춰진 사제들의 시계는 2012년 12월 19일에 멈춰진 상태인 것이다.

사제들뿐 아니라 지난 대선 때 48%의 야당후보 지지 국민들, 이에 더해 상식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특검'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채동욱, 윤석열 등을 통해 지난 대선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는 실체의 존재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검'을 통해 지난 대선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한 후에 그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이다.

잘 준비된 기자회견을 수십 차례 갖는다 해도 스스로 '잘못'이라고 언급한 사건의 실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신년 기자회견 #박근혜 #통일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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