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치매 남편 병수발...엄마도 죽고 싶단다

팔에는 시퍼런 멍자국... 치매 노인과 가족 위한 정책 절실

등록 2014.01.09 17:42수정 2014.01.0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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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엄마가 치매 아버지를 돌보실 수 있을지 걱정이다. ⓒ 김혜원


"내가 몸이 너무 아파서 그러는데... 잠깐만 내려와서 네 아버지 밥 좀 해드릴 수 있니? 내가 아프니 네 아버지도 며칠째 변변한 식사도 못 하고 계신다."


웬만하면 자식들에게 부담되는 말을 하시지 않는 엄마의 성격을 잘 알기에 엄마의 전화는  마치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처럼 들렸다.

올해 여든한 살이 되시는 아버지는 2006년에 초기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이후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를 받아 진행속도는 다른 치매 노인들에 비해 훨씬 느린 편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24시간 아버지의 곁에서 손발이 되어 수발을 하는 일흔여섯 엄마의 삶은 온전히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힘든지... 내가 죽을 맛이야"

"솔직히 네 아버지가 나한테 뭘 잘 해줬냐. 김씨네 시집와 마음 고생 몸 고생...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다. 차마 자식들 앞에 창피해서 말도 못 꺼낼 일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고. 그때마다 자식들 커가는 거 보면서 참고 또 참았지. 칠순 지나면서 고집도 조금 꺾이고 마누라 눈치, 자식들 눈치 보면서 집안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도와주고 그래서 이제 살 만하다 했는데... 덜컥 치매가 왔잖니. 그러고 오늘까지 이 모양이다. 아무리 팔자가 기구하다 그래도 뭐 이런 팔자가 다 있니. 하루에도 열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보다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며 김해 아들집에 내려가신 지 한 달. 엄마의 병은 김해 내려가시기 전부터 이미 깊어져 있었다. 지난 8년간 치매 남편을 수발하면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지병에 화병, 노환까지 겹쳐 어디를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쇠약해지셨다.


"점점 애가 되고 고집만 세져서 당해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세수를 제대로 하나 칫솔질을 제대로 하나, 밥을 먹어도 화장실을 한 번 가도 내 손이 꼭 가야 하니 얼마나 힘든지 몰라. 몇 년 전에는 요양보호사가 와서 목욕도 시켜드리고 했는데 한 해 받고 나니, 그나마도 등급을 주지 않아서 받지 못하고 죽으나 사나 내 손으로 모든 걸 하다 보니 내가 죽을 맛이야."

아버지는 3년 전 요양보호 4등급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치매로 장애3등급을 받았지만 집을 방문한 해당 공무원은 아버지를 양호한 상태로 본 것이다. 그리고 한 해 뒤 치매가 치료되었을 리 없지만 요양등급을 받지 못하셨다. 이유인 즉, 더 심한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아버지처럼 경한 증상을 가진 분들에게는 등급을 드리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증상은 경증치매라고는 하지만 심한 기복을 보인다. 배가 부르고 기분이 좋으면 말씀도 잘 하시고 잠시 동안이지만 기억력도 좋아지신다. 특히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나 외부 사람을 만났을 때는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치매인 것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행동하시는 편이다. 그래서 잠깐 아버지를 본 사람들은 치매환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일 뿐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면 금방 치매 증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증상은 '식탐'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눈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절대 손을 놓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 손주들 앞에 놓인 과자나 음료수도 아무렇지 않게 드셔서 아이를 울리기까지 하신다. 그때 누군가 제지를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가 하면, 누가 되었든 욕을 하고 폭력적인 행동까지 한다.

배회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당신 30대나 40대 때 있었던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이야기처럼 꺼내시며 지금은 사라진 그 옛날의 장소를 찾아가시겠다고 혼자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엄마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집에서 사라져 경찰까지 동원해 찾아 나선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집과는 거리가 먼 고속도로 위를 걷는 아버지를 어느 고마운 분이 경찰서에 모셔다 드려 찾아온 일도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버지는 이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 노인들이 많다는 이유로 요양등급에서 제외돼 오직 엄마의 수발에만 의지해 산다.    

일흔 여섯 엄마의 삶은 오직 남편과 자식들에게 바쳐진 삶이었다. ⓒ 김혜원


"내 남편이니까 내가 감당해야지. 자식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죽든지 살든지 네 아버지하고 나하고 둘이 살다가 깨끗이 가고 싶은 게 내 마음이야. 하지만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이렇게 니들한테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엄마 뭐가 미안해요. 자식들도 부모 부양할 의무가 있는데, 그걸 잘 못해 드리니 죄송하지요. 딸이든 아들이든 함께 사는 것도 싫다고 하고 도우미 두는 건 부담스럽다고 하니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게 한 번씩 와서 밥 해드리고 이야기 들어드리고 바람 쏘여드리고...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냥 엄마도 조금 마음을 비우고 차라리 자식들과 함께 살아보시면 안 될까?"

함께 살자는 제안에 엄마는 손사래를 치신다. 이미 5년 전 맏딸인 내가 한 번 부모님과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무리 잘해도 딸은 딸이고 사위는 사위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계신다. 딸은 출가외인이고 사위는 백년손님인데 어떻게 딸의 보살핌을 받느냐는 엄마.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 속에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엄마만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 한동안 그 문제로 엄마와 공연한 신경전을 벌여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억지로 우겨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엄마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아들 내외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아들, 며느리의 역할이 맞지만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며느리에게까지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게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든 엄마 혼자 아버지를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혼자 모든 고통 감내한 엄마

하지만 이런 견고한 생각도 병 앞에는 어쩔 수 없다. 치매 남편 병수발 8년 만에 지병인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 신장병 등이 더욱 심해진 것은 물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화병과 우울증으로 매일매일 힘든 나날을 보내는 엄마.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일 년 내내 감기를 끼고 사는가 하면 대상포진 같은 질환도 수시로 걸려 산더미 같은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버티기 어렵다.

'행복한 질병'이라는 치매에 걸리신 아버지는 아무 걱정도 시름도 없이 날로 체력이 좋아지시는 반면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이제는 오히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당신의 책임이라며 아버지를 놓지 못하신다.

"밤새 잠도 안 자고 부산을 떨면서 나를 괴롭힐 때는, 정말 콱 죽여 버리고 나도 죽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저러고 살면 뭐하겠니. 오래 살수록 자식들이나 괴롭히지. 나도 이제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루하루가 고통인데 더 살면 뭐하겠니. 내가 전생에 네 아버지에게 무슨 못할 짓을 해서 이러고 사는 건지.... 행여 나 죽거든 네 아버지 옆에 묻지 마라. 죽어서라도 저 영감한테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시끄러, 그만 해. 조용히 해. 왜 이렇게 떠들어!"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에도 아버지는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엄마의 말을 가로 막는다. 당신 말을 하는지 알아들으시고 듣기 싫다는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가 계속 말을 이어가자 이번에는 눈을 부릅뜨고 물건을 들어 던지겠다는 표현을 하신다. 결국 엄마는 거기서 말을 맺어야 했다. 그리고 조용히 당신 팔을 걷어 올려 보여주셨다.

엄마의 팔에 시커먼 멍자국이 있었다. 당신을 말리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때리고 밀고 안 되면 물기도 해. 지난번엔 밀어서 엉덩이뼈를 다쳤잖니. 다리도 시원치 않아 서 있기도 힘든데, 네 아버지가 힘으로 밀면 넘어지지 별 수 있니. 그런데 저 노인네는 내가 다치든 말든 그런 것도 몰라. 내가 쓰러지면 자기가 밥도 못 얻어먹는다는 걸 몰라."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 엄마에게는 가장 큰 위로를 준다. ⓒ 김혜원


생전 약한 소리, 아쉬운 소리 하지 않으시는 엄마가 오죽 힘들고 답답했으면 이렇게 속마음을 쏟아 놓으실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속이 터져 죽어 버릴 것 같은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었다. 들어 주는 것 외에 내게도 이렇다 할 해결책이 있을 리 없다.

유명 연예인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함께 세상을 등졌다는 뉴스를 들으며 남의 일 같지 않은 슬픔에 눈물을 흘렸다. 오죽했으면... 오죽하면 저 방법을 택했을까.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거동이 가능한 치매노인도 '치매특별등급'을 신설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점차 혜택의 폭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버지처럼 거동이 가능한 치매노인은 아무리 보호와 요양이 필요한 상태여도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한 사람이 종일 치매노인의 보호와 수발을 감당해야 하고, 다른 가족들도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으니 이제 치매는 남의 일이 아니다. 수년 혹은 수십 년 안에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유명 연예인 가족의 일로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인 만큼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가 진행돼 실질적인 대책이 만들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치매노인 #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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