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덫에 걸린 윤여준과 박기춘

[주장] '야권연대'는 낡은 정치? 그러면 '야권 필패'다

등록 2014.01.16 16:55수정 2014.01.17 12:43
45
원고료로 응원
a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지난 14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선거만을 위한 연대는 보기도 좋고 먹을 만하지만, 따먹으면 금단의 사과라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기춘 사무총장도 지난 12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연대 없이 가야 한다, 국민들은 정치 공학적 연대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안철수 의원 측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여준 의장 역시 지난 10일 "지금까지 야권이 만날 연대하지 않았나? 단일화하고, 그런데 그것을 국민들이 지금은 굉장히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마치 어떤 거래, 선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 정치세력 간의 뒷거래라고 간주한다"고 독자후보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도 지난 14일 "서울·경기 중 하나는 세게 내야 하지 않나?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저, 이정미 대변인까지 포함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연대·단일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

이처럼 여야 모두가 한목소리로 동의하는 사안이 또 있을까? 새누리당, 민주당, 안철수 신당(새정치추진위원회), 정의당은 모두 야권 연대와 단일화를 '뒷거래'요, '금단의 사과'며, '낡은 정치'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일화와 야권연대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요, 자랑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권력으로 하여금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다. 야권이 스스로 야권연대와 단일화를 낡은 정치로 규정하는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만들어낸 '민주세력 필패, 보수 세력 필승의 덫'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무시하고 폭주할 수 있는 것도 야권연대와 단일화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선거를 통한 박근혜 정부 심판이 사실상 막혀 있는 게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권력이 국민을 무섭게 느낄 때는 언제일까? 언론이 떠들어대도, 야당이 공격해도, 심지어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도 권력을 빼앗길 가능성이 없다면 권력은 결코 국민을 무섭게 느끼지 않는다.

권력이 국민을 무섭게 느낄 때는 권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 때뿐이다. 그럴 때 비로소 권력은 국민의 말을 듣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이 자신의 권력을 빼앗기는 경우는 선거에서 져서 야당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뿐이다. 그러므로 선거 승리가 계속 보장된다면 권력은 국민을 우습게 알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박근혜 정권의 폭주 역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의 승리에 대한 확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지금의 정치구도는 올해 6월 지방선거 당시 새누리당의 압승과 야권의 전멸을 예고한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가 왜 국민을 무서워하고, 왜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선거연대·단일화 없었으면 한국 민주주의도 없었다

a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박수를 치는 정몽준 대표 ⓒ 권우성


민주세력의 선거연대와 단일화는 한국의 선거제도와 정당구도의 근본 특징에 기인한다. 한국 선거제도의 특징은 단순다수제라는 점이다. 한국의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와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모두 단순다수제로, 한 표라도 표를 더 얻은 후보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제도다.

한국 정당구도의 특징은 보수정당의 압도적 우위라는 점에 있다. 새누리당은 언제나 40% 전후의 압도적 지지율을 차지하는 제1당이다. 이러한 한국 선거제도의 특징인 단순다수제와 정당구조의 특징인 새누리당 압도적 우위가 결합하면, 그 결과는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항상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것을 막는 방법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40% 지지의 보수정당 외의 다른 정당들이 연대하고 단일화하면 보수정당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997년 대선에서는 DJP연대로,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선거연대와 단일화가 있었기에 정권교체가 가능했다. 정권교체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권력이 잘못했는데도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면 권력은 국민을 우습게 안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선거연대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뤘고, 한국 정치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단일화를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자랑이요,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주장한다.

때문에 단일화와 선거 연대는 언제나 한국 보수 세력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었다. 한국의 정치구도에서 민주세력의 선거연대와 단일화가 없다면 언제나 보수정당이 필승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보수 세력은 항상 선거연대와 단일화를 '정치담합'이요, '권력만을 노린 게임'이며, '국민이 빠져 있는 낡은 정치'라고 공격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야권도 이러한 보수 세력의 공격논리를 수용해 버렸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만든 '민주세력 필패, 보수세력 필승의 덫'에 어느새인가 빠져 버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됐나.

a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사진은 2012년 12월 6일 두 후보가 단독회동을 마친 뒤 악수하는 모습. ⓒ 남소연


그것은 바로 지난 대선 무렵부터였다. 그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단일화 프레임에 매몰됐다는 비판이 민주당 내부와 일부 정치평론가들에게 의해 제기되고, 보수언론이 이를 증폭시키더니,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 국면을 거치면서 단일화에 매몰되어 대선에 졌다는 논리가 기정사실처럼 돼버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난 대선 패배가 단일화에 매몰됐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 역시 단일화 없이는 승리하기 어려웠는데, 승리를 위한 단일화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졌다. 승리를 위한 단일화가 되려면 가능한 빨리 단일화에 집중해 성사시켜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즉, 단일화에 매몰돼 진 게 아니라 되레 단일화에 집중하지 못해서 졌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패착은 단일화가 늦어졌다는 데 있었다. 단일화의 블랙홀이 워낙 커서 단일화가 끝날 때까지 문재인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박근혜 후보와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매일같이 정책을 발표해도 단일화 이슈에 묻혀버렸고, 박근혜 후보와의 차이가 부각되지 않았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정책에 관한 논쟁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문재인 의원이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단일화의 구도와 본선 구도가 아주 달랐는데도, 단일화가 늦게 되는 바람에 선거구도가 본선 모드로 전환할 시간이 부족했다.

단일화 구도는 세대로는 20대와 30대, 지역으로는 호남, 이념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세력으로부터 누가 더 지지받느냐를 놓고 벌인 경쟁인 반면, 본선 구도는 40대와 50대, 수도권과 중부권, 중도·중간·무당파 층의 지지를 누가 더 끌어내느냐의 경쟁이었다. 그런데 단일화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바람에 본선 구도 경쟁에 투입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야권, '선거 연대=낡은 정치'라는 덫에서 벗어나라

지난해 대선을 3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 두 정치평론가는 단일화에 대해 정반대의 서로 다른 전망을 내놨다. 한 사람은 단일화에 매몰되지 말고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했고, 한 사람은 빨리 단일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 후보들의 일성이 후보단일화가 돼서는 안 된다. 단일화를 표방하면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야권의 후보들은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후보다운 후보가 될 것이고, 또 홀로서기를 통해 규합·결속된 지지층이라야 단일화에 나서더라도 후보를 따를 것이다."(이철희, 2012. 9. 17. <프레시안> 기고문 중에서)

"지금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각자 뛰어서 합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권교체가 절박하다면, 빨리 단일화의 길을 열고 의제들을 정리해 나가야 한다. 각자 뛰면 갈등과 분열의 에너지는 더 커진다. 87년도 다 그랬다. 막판가면 단일화된다?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도덕적 선의의 문제로 단일화를 바라보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킨다."(박상훈, 2012. 10. 1 <미디어오늘> 인터뷰 중에서)

두 정치평론가의 차이는 단일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단일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시각은 대선 패배 후에는 '야권 연대·단일화 프레임 극복'의 논리적 기반이 됐다. 그러나 이 주장은 민주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를 폄훼하고 '낡은 정치'로 몰아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와 안철수 신당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민주세력 필패의 덫'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인데, 야권연대와 단일화를 낡은 정치로 폄훼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압승과 야권 전멸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지지부진에 더해 야권 분열과 야권 연대의 어려움은 새누리당에게는 필승의 구도를, 야권에게는 전멸의 구도를 선사하고 있다. 그 점이 바로 지금 박근혜 정부 폭주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무섭게 여기고,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려면 최소한 야권연대와 단일화의 길은 터놔야 한다. 그러려면 야권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단일화=낡은 정치'라는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유창오님은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입니다.
#선거연대 #박원순 #안철수 #민주당
댓글4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종영 '수사반장 1958'... 청년층이 호평한 이유
  2. 2 '초보 노인'이 실버아파트에서 경험한 신세계
  3. 3 '동원된' 아이들 데리고 5.18기념식 참가... 인솔 교사의 분노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