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직접 만드는 밀양 할매들 "한전 끊어버릴끼다"

[송전탑 없앨 수 있다④] 밀양으로 간 햇빛버스

등록 2014.01.17 19:24수정 2014.01.17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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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지만, 밀양은 여전히 울고 있습니다. 오늘도 움막에서 비닐 한 장으로 긴 밤을 지낼 할매·할배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과연, 송전탑은 밀양 주민들만의 문제일까요? 전국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은 3% 정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에너지들이 밀양 등의 송전탑이나 가스관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어떻게 하면 그 부채를 줄일 수 있을까요? <오마이뉴스>와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기획 <송전탑 없앨 수 있다>를 통해, 에너지 자립의 대안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16일 오전 5시 38분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서울시청 대한문 앞. 난방을 틀지 않았는지 지하철 안은 썰렁했고, 바깥 공기는 생각보다 찼다.

"집이 어디예요?"
"산본 쪽이요."
"엥? 여기 어떻게 왔어요?"
"지하철 타고…."
"정성이 뻗쳤구만.(웃음)"
"그러게 말입니다.(웃음)"

서울 인근에서부터 과천, 군포 산본, 안양 그리고 용인 죽전 등지에서 이른 새벽부터 정성(?) 뻗친 사람 20여 명이 모였다. 밀양으로 가는 햇빛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밀양으로 가는 햇빛버스

햇빛버스는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주관하고,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서울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준),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등 10여 개 단체가 주최하여 밀양 분향소와 농성장, 마을회관 등에 독립형햇빛발전소(가정형은 우리집햇빛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그런데 왜 밀양일까.

"도시인들이 마구잡이로 전기를 쓰는 덕분에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목숨 건 싸움을 하고 있어요.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막을 수 있는 건 에너지생산자 햇빛개미들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밀양을 에너지자립마을로 만드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죠. 우리집햇빛발전기는 그 출발이 될 것입니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옥 이사장의 말이다. 실제 부안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2003~2004년 방사능폐기장 반대운동을 이끌었던 문규현 신부와 지역 활동가들이 주민 출자를 받아 2005년 만든 부안시민발전소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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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6m, 세로 1m 크기의 모듈 하나 무게는 20kg 정도.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22kw 정도.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록(맨 왼쪽) 이사가 주민들에게 설치법을 안내하고 있다. ⓒ 최은경


<한겨레21> 기사에 따르면, 방폐장 반대 운동 당시 "부안 사람들은 전기 안 쓰고 살 거냐"는 비난에 시달렸던 이들이 '핵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전기를 만들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 에너지자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단다.

이현민 부안시민발전소 소장은 기자와 한 통화에서 "작은 마을이라 2012년이나 2013년이나 전력 생산량에는 큰 변화가 없다, 지난 2013년에도 44kW 규모의 태양광발전기에서 연간 5만여Wh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는 마을 전력의 70%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부안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지역에서 바람 및 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 생겨나는 등 에너지자립을 위한 노력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은 밀양 역시 에너지자립마을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워진 송전탑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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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옥 이사장은 "시민이 조직되어 그 힘으로 에너지독재에서 에너지민주주의로 가야합니다. 그러면 세워진 송전탑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최은경


오전 7시 서울을 출발한 햇빛버스는 11시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 도착했다. 햇빛은 따갑도록 빛났고, 바람은 매서웠다. 마침 이날은 2년 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밀양에서 어르신 한 분이 분신한 날이다. 햇빛버스단은 잠시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한 뒤, 순례하듯 논둑길을 지나 102번 송전탑이 지어질 논 한가운데 모였다.

파견미술팀(갈등의 현장에서 설치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지난해 10월 설치한 '밀양의 얼굴' 탑 앞에 선 이계삼 밀양 765kV 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희 집이 단독주택인데요. 태양광 발전을 설치해서 실제 전기요금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계량기가 거꾸로 돌아가서 검침원이 놀란 적도 있어요. 에너지 자립 가능합니다. 송전탑 때문에 돌아가신 두 분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우리집햇빛발전소가 잘 되어야 합니다."

박승옥 이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탈핵 그리고 송전탑 없애는 데 재생에너지가 답은 아닙니다. 전기 소비 가장 많이 하는 도시인들이 나서야죠. 우리집햇빛발전소 설치해서 에너지 생산하고 소비해야 합니다. 물론 적게 쓰는 운동도 나서 해야 합니다. 시민이 조직되어 그 힘으로 에너지독재에서 에너지민주주의로 가야합니다. 그러면 세워진 송전탑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4대강 전문가 최병성 목사도 마이크를 받았다. 그의 눈시울은 젖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최 목사는 "밀양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는 어른신들, 고통스럽고 힘들고 눈물겨운 이 자리를 잘 지켜주세요, 저도 미약하지만 부당함을 알리며 어르신들과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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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컨테이너 초소에 우리집햇빛발전기 1기가 설치됐다. ⓒ 최은경


마을회관으로 되돌아 가는 길, 마을 입구 컨테이너 초소에 독립형 햇빛발전기 1기가 설치됐다.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한국전력에 대한 반감때문인지 독립형햇빛발전기에 대한 할매 할배들의 관심은 높았다.

"이것이 여름에는 더 좋겠구만."
"아닙니다, 어르신. 이건 열이 아니라 빛을 받아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겨울에 더 효율적입니다."

우리집햇빛발전소의 원리
햇빛전지판에 햇빛에너지가 투입되면 전자 이동이 일어나고 전류가 생깁니다. 이 전류를 인버터라는 부품을 통해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전류로 바꾸고, 내부 콘센트에 인버터를 연결하여 가정에 들어오는 전류와 섞습니다.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투입되는 전기를 계측하는 계량기가 천천히 돌아가게 되어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얻게 됩니다. 물론 콘센트에 인버터를 연결하지 않는 독립형 햇빛발전소도 있습니다(밀양에 설치된 것인 바로 이 독립형이다).

하지만 축전지와 컨트롤러 등으로 인해 비용이 상승하게 되어, 굳이 전기를 쓸 수 없는 오지가 아니라면 독립형보다는 콘센트에 연결하는 계통형 우리집햇빛발전소가 낫습니다.
가로 1.6m, 세로 1m, 250W(와트) 용량의 태양광전지판(아래 모듈) 하나의 무게는 약20kg. 이 한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량은 한 달에 약 22kWh 정도. 이는 냉장고 1대의 사용량을 절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록 이사는 말했다.

이번 햇빛버스를 주최한 각 단체들의 도움으로 마련된 독립형 햇빛발전기 24개는 밀양 분향소, 마을회관, 농성장 등 에너지가 필요한 곳 12개소에 나눠 설치할 예정이다.

제일 처음 햇빛버스단을 맞으며, 따뜻한 차며 먹을거리 등을 챙겨주시던 보라마을 이종숙 이장님께 물었다.

"어르신, 이 햇빛발전이 생활하시는 데 좀 도움이 될까요?"
"되지 하모. 근데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그리 중요치 않다. 요 손꾸락에 한 개 더 달린 기분이다. 뭔 말인지 아나? 마, 우리 뒤에도 누가 있구나 외롭지 않구나, 이래 생각된다. 그 마음이 고맙고 고맙다."

순간 가슴 속이 뜨끈해졌다. 서울에서 밀양까지 하루 일손 돕기를 하러 오는 이유(오며 가는 시간 빼면 사실 일할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31개월 딸아이와 함께 기차 타고 택시 타고 밀양 마을로 들어오는 이유, 어떻게든 밀양에 오고 싶어 왔다는 참가자들의 마음을, 할배 할매들이 더 잘 아는 구나, 싶었다. 서로 미안하고 고마운 이들의 두터운 연대가 지금 밀양을 덥히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 마을에서 한전 전기 다 끊어 버릴끼다"

오후 2시를 넘어 햇빛버스단이 이동한 곳은 96번 송전탑 진입로에 설치된 단장면 동화전 마을 천막농성장. 농성장 양 옆으로 거대한 송전탑 두 대가 버티고 섰다. 한 대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경찰에 의해 길목이 차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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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번 송전탑 진입로에 설치된 동화전 마을 천막농성장에 햇빛발전기 설치를 마친 뒤 주민들과 함께. 농성장 뒤 양 옆으로 거대한 송전탑 두 대가 보인다. ⓒ 최은경


밀양엔 햇빛발전뿐만 아니라, 풍력 발전이 들어와도 좋겠다고 농을 할 만큼 이날 바람은 대단했다. 이런 추위에도 농성장을 삼삼오오 지키고 있는 할매들. 엉덩이는 전기매트로 따뜻하지만, 코는 바람에 시린 웃지 못할 상황. 농성장 입구로 바람이 한움큼씩 들어왔다. 비닐 한 장으로 바람에 맞설 만큼 열악한 환경이지만,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고 했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팽창섭(58) 어르신에게 물었다.

"지금 농성장에서 필요한 전기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전등하고, 할매들 요 전기매트는 윗집에서 끌어다 쓰고 있지. 근데 이기 전력이 어느 정도 나오는 거고?"
"22kW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면 농성장에서 전등 켜고 간단한 전기용품 쓰기는 충분하지 않겠나. 내사마 해보고 좋으면 우리집에도 할란다. 그래가 우리 마을에서 한전 전기 다 끊어 버릴끼다."

오후 4시, 이 작은 농성장에 또 하나의 독립형 햇빛발전기가 설치됐다. 평평한 자리에 거치대를 놓고, 그 위에 모듈을 올린 뒤 배터리에 모듈 케이블만 연결하면 끝(가정용은 따로 배터리도 필요없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마치 시골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을 때의 기분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이어 "힘들게 버티면서 싸우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이 작은 햇빛발전기가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지난해 가을 일본의 겐카이, 이타카, 후쿠이 원전지역에서 반핵 운동하는 주민들을 만나고 돌아온 한 선배가 들려준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밀양 송전탑 싸움이 정말 중요한데 사람들이 몰라, 그게 참 안타깝지"라는 말도. 오늘의 밀양을 막지 못하면, 내일엔 우리도 '믿기 힘든 밀양'의 이야기를 전해야 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햇빛버스는 2차, 3차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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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버스 참가자 윤태환씨. ⓒ 최은경

밀양의 빨간 잠바. 이번 햇빛버스에서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참가자 윤태환씨의 첫 인상이다. 덴마크에서 재생에너지 관련 공부를 하다 지난해 여름, 귀국해서 협동조합 관련 일을 준비 중이라는 간략한 자기소개만으로도 충분히 그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빨간 잠바 그는 왜 밀양에 왔을까.

- 덴마크에서 풍력에너지 등에 대해 공부하고 왔다고 들었다.
"덴마크공대에서 석사과정으로 풍력에너지, 에너지협동조합, 지역간 전력거래 등을 공부했고, UNEP Risoe center에서 풍력단지 개발 프로젝트와 EU 과제로 국가별 기후가 다른 세 나라(이탈리아, 독일, 노르웨이)의 각 학교 건물에 최적화한 재생에너지 기술을 찾고, 그 경제성을 평가하는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했었다."

- 덴마크에서의 재생에너지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덴마크의 재생에너지는 폐기물과 수력을 제외하고, 전체 에너지의 30%를 차지하고, 그 대부분이 풍력이며, 그 중 70~80%가 모두 협동조합 혹은 합작회사(Joint venture) 형태의 주민들의 소유이다. 국가적으로 2020년까지 전체에너지 중 풍력을 전체 전기 소비량의 5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며, 2050년까지 전체 전기, 난방, 산업 및 교통 분야에서 100% 재생에너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할 계획이다(항상 계획보다 더 빨리 목표를 달성하여, 이 계획은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있다)."

- 밀양 문제는 어떻게 알게 됐나?
"밀양 송전탑 반대는 주로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들었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이 지경인데 아프리카에 왜 가나 하는 회의가 들어 오게 됐다."

-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한다고 생각하나.
"덴마크처럼 주민 주도의 상향식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이야말로 밀양과 같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 즉 국내처럼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하고 주민부터 이익을 보게 하여 소비의 가장 아래 집단을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산업을 발전시킨 상향식 접근 방식이 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국내 에너지 정책도 중소규모의 지역 에너지 확대에 주안점을 두고, 확실히 주민들이 그로부터 이익을 볼 수 있게 정책적 기반을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가는 그저 거들뿐이다. 제품 및 서비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 및 전문기업 인증 제도 등을 강화하여, 자연스럽게 해당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도와야 할 것이다."

- 오늘 몸소 나서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햇빛버스를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오늘 처음으로 추운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할매, 할배들께 작은 도움을 드리려고 왔는데, 오히려 그분들의 따스함과 진실된 눈빛에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2차, 3차 햇빛버스에 참여하여, 작으나마 꾸준한 도움을 드리고 싶다."

#밀양 #송전탑 #햇빛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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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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