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의 슬픈 이야기가 깃든 섬, 추자도 기행

쪽빛 바다와 올망졸망한 섬, 멸치떼 뛰노는 풍요의 섬

등록 2014.02.04 14:24수정 2014.02.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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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 고향 제주에 가서 모처럼 추자도로 여행을 갔다. 1박을 하면서 추자도 기행을 한 것이다. 1월 23일 김포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렸다. 곧바로 택시를 이용하여 추자도행 쾌속선을 타기 위하여 제주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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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항의 모습 추자초등학교 뒤 봉글레산 중턱에서 잡은 추자항의 모습 ⓒ 김광철


오래 전부터 벼르고 나선 길이라 나름대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추자올레길을 중심으로 이곳 저곳을 살펴보아도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것은 없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참 좋았다. 나바론절벽에서 바라다보는 추자항의 모습과 뭍을 향해 눈길을 돌리면 저 멀리에 보길도와 완도 등이 아스라히 다가온다. 앞에 펼쳐져 있는 다도해의 섬들이 그림 같이 다가오면서 참으로 안온한 느낌을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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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간도 등 추자도의 부속 도서들 용봉산에서 잡은 추자도에 딸린 황간도 등 유무인도들 ⓒ 김광철


특히 추자도의 돈대산이나 봉골레산 등 어디에서나 조금 높은 곳만 올라가면 보이는 다섯개의 섬들이 그림과 같이 놓여 있는 모습은 정말로 환상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섬이름들이 궁금하여 해녀 할머니들께 여쭈었더니 '보름섬', '작은 달섬', '큰달섬', '구멍섬', 상섬'이라 하였다. 이 섬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산의 오륙도를 연상하게 된다. 보는 위치에 따라서 어떨 때는 여섯으로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인근의 다른 섬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같이 간 일행들에게 '추자 오륙도'라 부르면 좋겠다고 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추자로 향할 때도 그랬고, 추자를 나올 때도 그랬고, 추자에서 어느 곳에 있거나 다가오는 다섯 섬의 모습은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섬들을 보고 있노라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대중 가요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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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리 앞에 보이는 다섯 개의 무인도들 이 섬들은 추자도의 언덕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섬들로 '보름섬, 작은달섬, 큰달섬, 구멍섬, 상섬'이라고 해녀들이 말해주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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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추자도 예초리에서 바라보는 해안가와 다도해의 모습 예초리 지역으 바닷가는 물이 아주 맑고 다도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지였다. ⓒ 김광철


제주도가 화산섬이라면 이곳 추자도는 화산섬의 특징인 현무암이나 안산암 등의 돌과 바위들은 전혀 볼 수 없었다. 한반도 땅이 만들어질 때 만들어져 그 동안 수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침강, 융기는 물론 침식을 받기도 하면서 오늘의 추자도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거나 화산섬이 아닌 육지지역과 지질을 함께 하고 있는 섬으로서 남쪽에 뻗어있는 거의 마지막에 위해해 있는 섬으로서 한반도의  막내둥이인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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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 올레길 추자올레길은 상록수가 덮인 터널을 지나는 곳을 지나기도 하고, 바닷가를 끼고 도는 곳이 대부분인데, 풍광이 참 아름답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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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갯쑥부쟁이 가을에 우리나라의 남부지방 바닷가에 피는 국화과 식물, 추자도에서는 겨울임에도 여러 그루 만날 수 있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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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미자 열매 하추자도 신양리 마을 근처에서 만난 남오미자 열래로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 많이 자생한다. ⓒ 김광철


그러다 보니 개성이나 한양 등 도성에서 바라볼 때는 남쪽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섬, 오지 중의 오지이며 변방인 것이다. 그러니 유배지로도 많이 이용되고, 제주로 유배가는 사람들이 들렀거나, 또는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났을 때 숨어 들어오거나 찾아들어온 사람들이 살던 섬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추자 처사각이나 황경현묘 등의 안내판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추자올레길을 다 돌 수는 없었고, 주요한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묘비들을 살피거나 안내판 등을 보거나, 밤에 묵었던 민박집 컴퓨터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추자의 역사'를 검색해 보아도 특별한 기록들은 찾질 못했다.

'추자면사무소' 사이트 검색을 해 보면, 고려, 조선 시대에는 전남 지역의 행정구역 단위에 소속되었으나 2010년에 제주도로 편입되면서 행정구역상 제주도 소속이 된 것은 이제 100년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제주 본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이섬은 상,하추자,추포,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를 합쳐 42개의 군도로 형성 되어 있다. 1271년(고려 원종12)까지 후풍도(候風島)라 불리웠으며, 전남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태조 5년 섬에 추자나무 숲이 무성한 탓에 추자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있다. 1896년 완도군으로 편입되었고 1910년에는 제주도에 편입된 후 1946년 북제주군에 소속되었다가 2006년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로 통합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 일행이 추자탐방을 마치고 하추자의 신양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제주향으로 향하는데, 그 배에는 추자도에서 분리수거된 재활용품들이 잔뜩 트럭에 실려 제주도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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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사당 제주의 목호들을 토벌하러 가던 최영 장군이 이곳에 들러 고기잡는 법 등을 가르쳤다 한다. ⓒ 김광철


상추자에 있는 최영장군의 사당 안내판에 의하면 최영장군이 제주의 목호들을 토벌하러 가다 들러서 이곳 섬 주민들에게 낚시 만드는 법이며 멸치 잡는 법 등을 가르쳐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하여 사당을 세웠다는 기록을 대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상추자 올레길을 돌면서 만났던 커다란 분묘군의 주인이 누군가 묘비를 살펴 보았더니 '효령대군파' 후손이라 적혀 있다. 이를 보면서 '왜 왕손들이 이곳 험난한 추자까지 밀려들어와 살았을까?' 온갖 추측을 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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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한의 묘 천주교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과 그의 부인 정난주(정약용의 조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황경한의 묘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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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한의 묘 안내판 황경한이 이곳 추자도에 자리잡게 된 사연을 기록해 놓은 안내판 ⓒ 김광철


특히 하추자도 예초리 언덕받이에 묻혀있는 '황경한의 묘'에서는 그의 출신과 그가 추자도에 입도하게 된 연유가 적혀 있는 안내판의 기록을 읽었다. '이런 슬픈 역사가 비록 황경한만이겠는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 정착을 한 박처사의 이야기이며,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황경한의 아버지는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도 신유사옥 때 천주교백서 사건으로 인하여 능지처참이 되고, 그의 부인인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는 2살박이인 어린 아들과 함께 제주의 관노로 끌려가다 도사공의 도움으로 이곳 추자에 들러 그의 아들(황경한)을 놓아두고 가게 되었다. 아이를 싸고 있는 포대기에는 그의 이름이며, 출생과 관련된 내용 등을 적어놓아, 그 아이는 이를 처음 발견한 오씨부인에 의하여 키워지고 그 후 그의 후손들은 이곳 창원황씨들로서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정난주가 제주 유뱃길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으로 기구한 인연이고 운명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를 대하는 우리 일행들은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난주는 37년 간 관노 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제주도 대정읍 신평리에는 그의 묘가 있고 성지로 정해져서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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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젓을 담그고 있는 모습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를 이용하여 만든 멸치액젓은 이곳 특산물 중의 하나이다. ⓒ 김광철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산비탈진 곳에 밭이라고는 조금 일구어 채소 정도 재배하고 있었다. 그 땅 조차도 서너 평 정도씩 또박또박 구획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옛날 교통이 험하던 시절 어떻게 식량은 조달을 해서 살았으며, 땔감 등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곳곳에 파인 여러 곳의 우물들을 보며 제대로 된 식수조차 구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지금도 산 비탈을 뚝으로 막아 비가 올 때 흘러드는 물을 막아 상수원으로 쓰는 것을 보면서 이곳 섬 주민들의 물 사정 또한 참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 정착해서 살던 사람들의 삶은 어찌 했을까? 참으로 곤궁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하였다.

물론 고기잡이도 하고 물질도 하면서 살았겠지만 그렇게 잡은 것을 식용으로 사용도 하겠지만 바깥 세상으로 내다 팔아 식량 등 생활용품들을 구입해서 살아가야 할 텐데, 그 먼 뱃길이 녹녹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 옛날에는 참으로 고단하고 곤궁한 삶이었겠다 싶다.

그러나 현재는 어업전진기지가 있고, 굴비를 만드는 우리 나라 조기들 대부분이 이곳 어장에서 잡히고 있고, 멸치액젓은 이곳 특산물이라 집집마다 멸치젓 담근통들이 즐비했다. 또한 낚시꾼들이 몰려들 뿐만 아니라 소라, 전복 등의 양식을 하거나 해녀들이 물질을 해서 채취를 하고, 해마다 관광객도 증가하고 있어서 주민들의 소득 수준도 높아져서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묵었던 '그린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였다. 방도 깨끗하고 따뜻해서 좋았는데, 저녁과 아침 식사를 시켰더니 해물탕과 각종 해산물 반찬이 푸짐하게 올라왔다. 낮에 사 먹었던 여느 식당의 것보다 맛있고 훌륭했다. 그리고 추자 사람들은 누구나 다 친절하여 아무 집에나 들러 짐을 맡겨도 잘 받아주고, 화장실 이용도 쉽게 허락해 주었다. 물어보는 것은 아주 친절하게 잘 안내해 주어, 넉넉한 시골 인심을 느끼면서 좋은 추자여행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다.

추자여행 중의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모아 시 한 편을 읊조려 보았다.

      추자도에서
                김 광 철

  하늘과 땅이 열리던 날
  하늘님께서 반도 땅덩어리 쪼개어 몇 조각 휙 집어 던지니
  제일 멀리 날아가 생긴 땅덩이런가
  시시철철 가고오는 온갖 바람 다 스쳐가고
  짠기운 소금기 넘쳐나는 동네
  땅뙈기라곤 편평하게 누울 자리조차 변변찮은 좁은 땅에
  살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살았을까
  밥술은 제대로 뜨면서 살았을까
  궁금하고 궁금한 것이 하도 많아
  인터넷을 이리 저리 뒤져보건만
  사람들이 살았다는 기록조차 마땅찮다

  이곳 올레길을 걸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묘비들을 찾아 살펴보니
  왕손들도 살았고
  명문세가 피붙이들도 살았다는데

  도성에서 수천리 떨어진 절해 고도에
  무엇이 좋아 이곳으로 들어왔겠는가
  부처지로, 피난지로
  서러운 사람들이 모여 들지 않았겠는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후손들이 사는 동네 아니겠는가

  정난주와 황경한 모자의 이야기에 이르러선
  그 생각의 정점을 찍는다

  추자섬의 아들 생각으로 눈물 마를 날 없었을 어미
  제주섬의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지었을 아들
  몰래몰래 천주님 찾아 아들의 무사안녕 기도드리며
  세 식구가 천국에서 상봉할 날만 기다리던 어머니
  죽어서도 그 어미를 잊지 못하는 아들의 한을 풀어드리려는 듯

  예초리 높은 언덕받이에 누워있는 황경한의 이야기에 넋을 잃고 있다가  
  허겁지겁 신양항으로 내달려 뱃시간에 겨우겨우 마추었거늘
  제주로 돌아가려는 한일카페리는
  나그네의 이런 심중을 꿰뚫기나 하듯 연착하여 느긋하게 들어온다

  돌아서는 바닷길엔
  추자섬 구석구석, 동네동네에 넘쳐있을
  뭍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 많은 한과 눈물 이야기를 제대로 더 들어보고 가라는 듯
  집채 같은 파도가 뱃머리를 사정없이 덮쳐 하얀 분말만 흐트러 놓고 있었다
#추자도 #돈대산 #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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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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