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버튼도 못 누르게 했어요, 더럽다고"

[동행 취재]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 김은경씨... 집회 후에도 청소

등록 2014.02.11 11:04수정 2014.02.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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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몸에 두르는 청소노동자 김은경씨가 '노동기본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가 적힌 천을 두르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학교측에 기본권에 대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사태의 해결은 요원해보인다. ⓒ 양태훈


중앙대 청소노동자 김은경(49)씨. 민주노총 서경지부 중앙대분회 소속인 그녀와 동료 40여 명이 근로조건 개선과 노조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지도 50일이 훌쩍 넘었다. 지난달 29일 학교 측과의 면담으로 농성천막은 걷었지만, 아직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학교 측은 지난 1월 16일 '총장실 점거' 사건에 대해 '퇴거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면 1회에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하도록 요청했다가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은 차례차례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고 있다. 중앙대분회는 현재 임금 인상을 포함한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고 쟁의중이다.

중앙대학교 측은 노조와 용역업체 티엔에스와의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다 청소노동자들이 교섭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노총 소속의 복수노조가 생겼고, 다른 노조에 속한 조합원들끼리는 경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지난 2월 4일. 그녀의 일과는 경기도 광명에서 새벽 5시 30분에 첫차를 타며 시작된다. 6시에 그녀가 일하는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의학대학에 도착한다. 휴게실에 비치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추운 몸을 녹여본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무렵, 동료들이 휴게실로 들어온다.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고, 입고 왔던 보랏빛 털옷을 옷장에 걸어둔다. 시장에서 산 1만7000원짜리 겨울용 앞치마를 꺼내 입는다. 원래는 2만 원에 팔던 옷이다. 약간 비싼 가격이었지만 값을 깎아 한 벌을 샀다. 솜으로 가득 차 있고, 안감에도 기모 처리가 된 앞치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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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출근' 김은경씨가 새벽 6시에 일터인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으로 걸어가고 있다. 미화원들은 "이른 시간에 출근하지만, 적응이 되다보니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 양태훈


"학교에서 겨울용 조끼를 주긴 했는데, 그걸 입으면 둔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조금만 더 신경써 주지."

다른 동료들도 앞치마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예쁘고 편한 것을 골랐다는 동료들의 앞치마에는 꽃이나 레이스가 곱게 달려 있다. 김은경씨는 앞치마 위에 '최저임금 대폭인상, 생활임금 쟁취'라 적힌 빨간 천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두른다.

"요즘엔 학교가 경비 아저씨들을 시켜서 우리를 감시해."


그 때, 1층에서 경비를 보는 '아저씨'가 불쑥 노크도 없이 휴게실에 들어온다. 노크 좀 하고 들어오라는 은경씨에 말에 대꾸도 없이 무언가를 확인하고 나간다.

"예전엔 우리랑 경비 아저씨들도 친하게 잘 지냈는데, 복수노조가 생겨서 요즘은 학교가 아저씨들을 시켜서 우리를 감시해... 학교가 사람들을 갈라 놓는 거야."

말을 마치고 3층 남자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홍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고 청소도구함에서 손걸레와 대걸레를 꺼낸다. 간밤에 쓰레기가 큰 봉투로 몇개가 나왔지만 그나마 방학이라 사람이 적어 쓰레기가 별로 없는 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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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화장실'의 청소노동자 중앙대 청소노동자 김은경 씨가 남자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며 청소 준비를 하고 있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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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 만한 쓰레기 김은경씨가 자기 몸만한 쓰레기들을 버리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하루에 이런 큰 쓰레기들이 기본적으로 5~6개는 나오고 있다. ⓒ 양태훈


오전 7시가 채 안된 이른 시간이지만 교수 연구실이나 실험실에 종종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아침시간에 청소를 하지 못하고, 오후에 청소를 마무리해야 한다. 한 실험실의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어수선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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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청소구역' 중앙대 청소노동자 김은경 씨가 남자 화장실과 연구실을 청소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은 1명당 2~3개층의 구역을 배당받는다. 청소량이 많은 학기 중에는 하루에 청소를 끝내지 못하는 일도 허다하다. ⓒ 양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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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가는 '학생들' 청소를 하는 김윤경씨 앞으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의 쟁의에 관해 두 패로 나눠져 있는 실정이다. ⓒ 양태훈


김은경씨는 묵묵히 대걸레로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전날에 청소를 해놓아서 깔끔한 편이라 했지만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닥을 닦고 손걸레로 시약들이 가득한 선반과 연구원들의 개인책상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운다.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했죠"

4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김은경씨는 허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 버튼도 고무장갑 낀 손으로 못 누르게 했어요. 더럽다고요... 함부로 교직원이나 학생들한테 먼저 인사도 못했어요.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했죠"

수십여 개의 방을 청소하고,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다시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을 마친 동료들이 늦은 아침을 먹고 있다. 휴게실에는 밥솥이 있어 미화원들이 각자 쌀을 가지고 와 밥을 짓는다. 물론 반찬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와, 함께 나눠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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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 만한 휴게실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앙대학교의 청소노동자는 120명에 달하지만 그들을 수용할 만한 변변찮은 휴게실도 없는 실정이다. ⓒ 양태훈


"오늘 중식 집회 있는 날이지?"
"응, 오늘부턴 병원 앞에서 한다드라."

말을 하던 중 윤화자 중앙대학교 분회장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분회장은 사람들의 안부를 물으며 중식 집회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공지했다.

"오늘 중식 집회 병원 앞에서 있는 거 맞지?"
"응, 맞는데, 오늘 추우니까 다들 옷 두껍게 입고, 언니는 몸 안 좋으니 오늘은 (작은 목소리로) 쉬!어!"

김은경씨는 옷장에 붙어있는 휴가계획표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한 반기마다 10일의 연차가 있지만, 미화원들은 연차를 맘대로 쓰지 못한다. 학교에서 휴가일자를 강제로 정해서 '통보'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매주 열리는 '화요집회'

짧은 휴식을 마치고 미화원들은 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실을 나섰다. 윤화자 분회장의 말대로 옷을 두껍게 입고, 신발도 털이 달린 신발로 갈아신었다. 식사를 마치고 중앙대학교 병원 앞에 그들이 모였다. 중앙대학교와 티엔에스 측에 항의를 하는 집회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병원 앞에서는 보안직원들이 귀찮다는 말투로 대화를 하고 있다.

"야, 할머니들 모이면 나한테 연락해. 들어가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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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청소노동자' 김은경(오른쪽)씨와 동료 청소노동자들이 서울 중앙대학교 병원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추고 있다. 김은경씨는 "파업을 하기 전엔 집회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 양태훈


이날 집회는 병원 바로 앞에서는 진행할 수 없었다. 병원 앞 보도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집회가 불가능했고, 그 옆에 붙은 분홍색 보도블럭 위에서 미화원들은 집회를 열었다. 김은경씨와 동료들은 구호를 외치고 민중가요에 맟줘 율동을 췄다. 추운 날씨 때문에 30분간 짧게 열린 집회를 마치고 김은경씨는 오전에 미처 못했던 청소를 마저 해야 한다며 다시 학교로 걸어갔다.

오전에 사람이 있어 청소하지 못한 곳을 청소하고, 창틀을 닦으니 시간은 어느덧 3시가 됐다. 평소에는 이 시간쯤에 퇴근을 하지만, 오늘은 동작경찰서에 가야 한다. 얼마전 '총장실 점거' 사건으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학교 체육관 창고에 모여, 동작경찰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십여 분 정도 버스를 탔을까. 다음 정류장이 노량진역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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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들어서는 '청소노동자'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경찰의 조사에 응하기 위해 서울 동작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18일에 총장실을 점거한 청소노동자들에 대해 출두와 조사를 요구했다. ⓒ 양태훈


경찰서에 들어서자 한 미화원이 말했다.

"아줌마들이 우르르 몰려가니까, 옆에서 누가 도박하다 걸렸냐고 그러던데?"

그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사를 받으러 건물에 들어서자 다들 긴장을 한다. 조사를 기다리는 동료들 사이로 "우리가 뭘 잘못했냐"는 볼멘 소리가 들린다. 20여 분간의 조사를 마친 오후 5시쯤, 김은경씨는 새벽부터 시작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양태훈 기자는 오마이뉴스 19기 인턴기자입니다.
#중앙대학교 #청소노동자 #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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