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에 쓰러진 공무원... 동료들 "울부짖는 닭 괴로워"

'AI 살처분 현장 투입' 공무원 뇌출혈... 안녕하지 못한 공무원들

등록 2014.02.14 11:41수정 2014.02.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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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매몰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방역요원들. ⓒ 이화영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안타까워 어떻게 해."
"무작위로 내돌리던 폭탄이 터진 거지 뭐."


충북 진천군 40대 공무원이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매몰처분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데 대한 동료 직원들의 반응이다.

진천군 주민복지과 노인장애인팀에 근무하는 정아무개(41·7급) 사회복지사가 지난 12일 오후 8시 20분께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다 근무지에서 5분 거리인 집 앞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13일 현재 청주 성모병원 2층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정아무개씨는 지난 설 명절 연휴 기간인 1일 이월면의 한 농장에서 동료 공무원 24명과 함께 오리 2만8000마리를 매몰처분 했다. 지난 2일과 7일에는 매몰처분 현장과 방역초소에 점심, 저녁, 밤참 등을 배달하기도 했으며, 13일에는 매몰처분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의 업무는 노인복지시설 인허가 운영 지원을 비롯해 노인복지시설 운영 지원, 독거노인 원스톱 지원 사업, 노인회와 경로당 운영 지원, 노인복지시설 기능보강 사업,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등이다. 관내 경로당 270여 곳과 사회복지시설 17곳의 관리 등 노인 관련된 업무 전반이 그의 몫이었다. 1주일에도 4~5일은 야근을 해야 겨우 일 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업무가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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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 발생으로 매몰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공무원들이 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 이화영


정덕희 진천군 노인장애인팀장은 "(정씨가) 어제 감기 증세가 있다고 피곤해 했지만 밀린 업무 때문에 야근을 하고 퇴근했다"며 "최근 불거진 조류인플루엔자로 모든 직원들이 매몰처분 현장과 방역 초소 근무에 매달리면서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 힘들어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올해 공무원 14년차인 정아무개씨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고 동료들은 입을 모았다.


정 팀장은 "같은 부서에 근무하면서 늘 지켜봤지만,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상대하면서 눈살을 찌푸릴 만도 한데 전혀 내색하지 않던 동료였다"며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현재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추서한 상태인데 이런 일이 생겨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정아무개씨는 부인과 초등학교 4학년(남)과 1학년(여)에 다니는 자녀를 둔 가장으로 2년 전 별세한 아버지를 대신해 노모의 농사일까지 돕는 성실한 아들로 이웃들은 평가하고 있다.

"닭이 울부짖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매몰처분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에 대한 안전장치는 인수공통 감염을 우려해 맞는 독감예방 주사와 타미플루 복용이 전부다. 예방 접종마저도 항체를 미리 생성하게 하려면 최소 4시간 전에 맞아야 하지만 투입 10분 전에 맞고 매몰현장으로 향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공중보건의는 "예방 접종은 바이러스를 주입해 항체를 미리 만들어 내성을 생기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그러려면 최소 4시간 전에는 맞아야 하는데, 지금의 예방 접종 방식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타미플루 복용도 문제다. 이 약 사용설명서에 보면 신장에 문제가 있거나 천식, 만성기관지염 환자는 신중하게 투여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매몰처분 투입 공무원에게 별다른 교육이 없거나 있더라도 주마간산식 설명이어서 위험성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두통과 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공무원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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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에 감염돼 폐사한 닭을 공무원들이 자루에 담고있다. ⓒ 이화영


장성유(50)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천군지부 사무국장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자료나 병원진료 진료 기록 등을 제출받아 매몰처분이나 방역초소 근무 등으로 편성해야 했지만 이런 노력은 없었다"며 "결국 성실한 공무원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불상사를 불렀다"고 목청을 높였다.

재해를 당하고서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인 트라우마도 심각한 문제다. 살처분 현장 경험이 많은 공무원이라면 모를까, 새내기 공무원들은 동물을 죽여야 한다는 부담과 사체를 목격하고 나서 오는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2일 매몰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공무원 김아무개(28)씨는 "도시에 살면서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만 봐도 고개를 돌렸는데, 동물을 죽여야 하고 죽은 동물을 자루에 담아 옮겨야 하는 데 큰 부담을 느꼈다"며 "닭이 도망가다가 나에게 잡혔을 때 울부짖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고 힘들어했다.

충북 진천과 음성 지역에서는 11개 농가에서 현재까지 66만6000마리의 오리와 닭이 매몰처분됐으며, 앞으로 19만 마리의 닭을 더 매몰처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화영 기자는 음성군청 소속 공무원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 #공무원 #충북 진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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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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