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와 두 개의 조국

등록 2014.02.18 17:26수정 2014.02.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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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동계올림픽이 중반전을 넘었다. 선전한 선수와 아쉬운 패배를 한 선수들에게 격려와 찬사가 쏟아진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선수는 단연 안현수다. 그의 이름이 러시아에서는 빅토르 안이다.

빅토르 안은 대한민국 선수였다. 그는 소치에서 8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러시아의 영웅이 되었다. 그에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그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과 재기할 기회를 준 러시아다.

우리 국민들은 그가 아이스링크에 입 맞추고 오열할 때 함께 기뻐했고, 러시아 국기를 흔들 때 어쩐지 낯설고 어색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 안현수 선수가 조국을 떠나게 되었는지 새삼 답답함과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대통령조차 이 문제를 언급했다. 빙상연맹의 문제점에 대해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들은 안현수의 성공을 축하한다. 그리고 그의 외로움과 고통에 대해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결단과 선택에 그저 박수만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 같다.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체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연주의와 파벌주의를 완전히 내몰아야 한다. 애국가가 울려 퍼져야 할 그 자리에 다른 나라의 국가가 울려 퍼지게 되는 일이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된다.

이제 빅토르 안과 그의 또 하나의 이름, 안현수에게는 대한민국과 러시아라는 두 개의 조국이 생겼다. 그는 지금부터 진짜 잘해야 한다. 마치 '낳아준 부모와 길러준 부모'를 동시에 사랑하듯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가교가 되어 멋진 대인(大人)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국적을 버린 안현수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낸 국민들 곁으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선수로서 어려움을 겪는 안현수를 따뜻하게 받아주고 재기를 뒷받침한 러시아의 성원과 사랑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안현수를 있게 한 대한민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원망은 물에 새기고 사랑을 돌에 새기라'는 말처럼 이제 흘러 보내야 한다. 조국은 그런 분노 이상의 존재이고 국적(國籍)이상의 가치이다.

올림픽도 금메달도 우리 인생의 목적일 수 없다. 그보다 더 소중한 가치는 무수히 많다. 이름 없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죽어간 무명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해 보라. 썩고 무능한 조선왕조의 온갖 핍박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왜적을 맞아 싸운 이순신과 의병의 역사를 기억해 보라. 성직자들이 부도덕하고 무능하다고 하여 신앙을 버리지 않듯이 지난날의 안현수가 겪은 조국에 대한 실망이 원망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기량이 모자라 메달 하나를 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안현수가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오늘도 빙상장을 달리고 있다. 당장 여섯 번의 올림픽에 도전했으나 단 하나의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고 은퇴하는 이규혁 선수에게 국민들은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있다. 열여덟 살의 어린 심석희 선수가 생애 첫 메달을 소치에서 따내고 이름도 생소한 봅슬레이 경기와 컬링장의 어린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고 국가대표로서 경기를 완주하고 있다.

이미 우리 국민은 안현수 선수가 국적을 바꾸고 올림픽에 도전한 것을 이해한다. 그가 귀화하게 된 것을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이제는 안현수가 답할 차례이다. 이제 남은 선수생활과 여생을 대한민국과 러시아 두 조국을 위해 살아가면 좋겠다. 그는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선린(善隣)의 가교(架橋)가 되고 교류의 터널이 될 것이다. 두 나라 국민의 우정의 길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쇼트 트랙'에서 그가 '롱 트랙'으로 나서는 일이 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 국민은 그를 받아 안을 준비가 되어 있다. 소치 다음에 평창이 있다.
#김영환 #안현수 #빅토르안 #소치 올림픽 #평창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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