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좋아요"라고 못하는 나...이별할란다

[스마트 폰 작별기-상] 질적으로 다른 스마트폰 중독, 그녀와의 추억들

등록 2014.02.28 15:57수정 2014.02.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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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구석의 연인 한 쌍.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 지 오래다. 서로의 눈빛을 바라볼 수 없는 연인. 둘 중 한 사람이 혹은 둘 다 서로에게, 무언가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게 틀림없다. 어색한 첫 만남? 두사람은 이미 커플티를 입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조금 주의깊게 들여다보니 그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스마트폰이었다.


고개를 더 높이 쳐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방금 전 그 커플뿐만이 아니다. 혼자 온 사람, 친구끼리 온 사람들도 모두 시선은 한곳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탄 지하철 안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재현되었다. 어르신 몇 분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고개를 처박고 스마트 폰에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신흥종교다. 폭발적인 신도 수의 증가와 광적인 믿음을 양산하는 신세기 최고의 흡인력을 지닌 종교로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우는 아이도 멈추게 하는 스마트폰, 이것은 신흥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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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의 폐해-아이들의 중독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씩 보여주던 스마트 폰에 이제는 중독이 되어 가는 아이들. 스마트 폰을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 이정혁


2년 전,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라는 후배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스마트교'의 대열에 합류했다. 새로운 세상, 그 말은 정확한 표현이었다. 손바닥만한 작은 기계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길치인 나를 위해 길찾기 앱이 깔리고, 기차 예매, 시내버스 도착 시간등을 시작으로 심심할 때 놀아주는 게임에다, 아이 가진 부모의 필수 동영상인 뽀로로까지, 원하는 무엇이든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카친, 페친에 트친까지, 평생 사귄 친구들의 백배가 넘는 사람들과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과의 소통은 분주했고, 각종 모임 등이 결성되었으며, 소속감에 불타 올랐다. 이제 나는 어디에 가도 외롭지 않다. 스마트폰 속의 그 많은 친구들이 1시간이 멀다하고 안부를 물어오고, 나 역시 그네들의 멘트에 오글거리는 댓글을 달아줘야 하니까. 도저히 외로울 틈이 없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과 장점은 회사의 매뉴얼만 옮겨 놓아도,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이다. 지면을 할애해서 구구절절 적는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고, 이제 스마트폰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녀와의 좋았던 기억들 몇 가지만 떠올려보려고 한다. 일종의 작별의식이다.


스마트폰은 '홍의장군 곽재우'와 같아서 우는 아이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TV광고에서 소개된 것처럼, 두세 살 아가들의 맹목적인 울음도 스마트폰 속 뽀로로나 코코몽이면 해결된다. 아이들에게 전자파가 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그 고요의 달콤함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사람 많은 식당이나 기차 객실에서 특히나 효력을 발휘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고사리 같은 두 손에 폰을 들려준다.

시내버스 운행 위치 조회. 이건 정말 기똥차게 잘 만들었다. 뱃살빼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 기간이 있었는데(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직원이 깔아준 버스 운행 시간 앱은 현재 버스의 위치를 알려주어 정류장에서 시간 낭비하는 일을 없애 주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개인용 인공위성을 돌리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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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활용-글쓰기 연습 카카오 스토리를 6개월 정도 꾸준히 하면서 글쓰는 연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민기자의 문을 두드리게 된 큰 뒷배경이다. 카카오 스토리에 적었던 글 중 하나. ⓒ 이정혁


또한, 'K' 스토리는 나의 습작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진설명으로 몇자 끄적이는 수준이었던 것이,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제목이 달리고, 내용이 생겼다. 6개월쯤 지나자 독자를 자청하는 팬까지 확보했다. 거의 매일을 일기쓰듯 매달렸고, 그때 적었던 단편적인 내용들과 문장들을 요즘도 땅콩 까먹듯 쏠쏠하게 써 먹는다.

그런데, 위와 같은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녀를 떠나보낼까 한다. 약정이 1년이나 남긴 했지만, 이미 배터리는 반나절을 못 견디고, 조울증까지 겹쳐 저절로 꺼졌다가 켜지기를 저 혼자 반복한다. 그렇다면 더 크고 빵빵 터지는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면 될 게 아닌가? 뭐, 스마트폰 바꾼다고 기사까지 쓰고 난리냔 말이다! 물론, 그렇다면 욕먹어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스마트폰과 영영 작별을 준비 중이다.

스마트폰은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나

스마트 폰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나, 그 새로운 세상은 기존의 나와 내 주변의 평화로운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물론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지만, 변화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또한 지나친 변화는 본질을 훼손시키기 십상이다.

스마트폰 중독은 기존의 휴대폰 중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휴대폰이 없으면 무언가 좀 허전하던 차원을 넘어서서, 스마트 폰이 없으면 일상에서 증발당한 느낌이다. 어쩌다 스마트 폰을 집에 두고 오는 날이면, 갈피를 못잡고 좌불안석이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벌받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리 상태라고 할까? 어떤 날은 퇴근하고 아이 둘 재우고 나서 침대 맡에 아내랑 둘이 앉아 서로 스마트 폰만 보는 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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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폰의 인수인계 이제 과감히 스마트 폰을 버리고 예전의 2G폰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기념 찰영 사진. ⓒ 이정혁


그렇다면 스마트 폰은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가? 이별을 결심할 정도로 그녀는 나를 잠식해 들어간 것인가?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 적어본다. 첫째, 집중력이 사라졌다. 전자파 탓인지, 중독성 탓인지(물론 나이 탓도 있겠지만) 스마트 폰이 옆에 있으면, 책 읽는 것도, 글쓰는 것도, 집중도가 굉장히 떨어진다. 뭐 조금 하다가 다시 만지작거리기 일쑤고. 특별히 관심도 없는 뉴스 검색하고…그러다 내가 뭐하고 있었지? 하며 원래의 일로 돌아온다. 뇌의 절반쯤을 스마트 폰에 점령당한 기분이다.

둘째, 기억력이 사라졌다. 스마트 폰을 통해 모든 것을 저장하고 검색하는 습관이 생기자 내 머릿속은 지우개로 채워졌다. 기억하기 귀찮으면 그냥 녹음해 버리면 되고,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내용은 바로바로 메모장에 입력해 버린다. 웬만한 단어나 사건들은 검색하면 되므로 굳이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나의 기억에 관한 장치는 점차 퇴화되어 가고 있다. 지금은 아내의 전화번호 빼고는 기억하는 번호도 없다.

셋째, 소통이 사라졌다. SNS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였는데, 정작 내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은 사라졌다.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의 글에는 '좋아요'를 연신 날려주면서도, 가끔씩 아침 밥을 차려주는 아내에게 '좋아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직원들과의 대화도 카톡이나 페북을 통하는 게 더 편하다. 물론 그렇게 하는 대화에 깊이가 있을리 없다. SNS는 소통의 범위는 확장해 주었지만, 소통의 깊이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사라졌다.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 하루에 대해 사색할 시간, 출근 후에 틈틈이 남는 시간에 책을 펼쳐들 시간, 무언가를 기다리며 곰곰 생각에 잠길 만한 시간들이 송두리째 없어졌다. 일하는 중에도 잠깐 짬이 나면 스마트폰을 열고 밀려있는 SNS 글들을 확인해야 하고,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도 거의 손에 쥐고 산다. 심지어는 운전할 때, 신호대기 중에도 만지작거리다 뒷차의 요란한 경적 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스마트폰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려 한다(하편에 계속).
#스마트폰 중독 #스마트폰의 단점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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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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