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막내딸, 최종학력은 초졸... 그래도 괜찮아

[서평] 송경호 <쫄지마, 학교 밖으로>

등록 2014.02.25 09:58수정 2014.02.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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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마, 학교 밖으로> 표지 ⓒ 세창미디어


지난해 말, 너굴은 로드스쿨러 생활에서 벗어났다. 굳이 공교육 학제를 들어 말하자면 대안교육 과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이다. 올해 1월로 성인이 되니 홈스쿨이든 로드스쿨이든 더는 스쿨(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는 거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으니 성적표 따위도 있을 리 없다. 물론 빛나는 졸업장 같은 것도 없고, 그저 가족끼리 간단한 축하 파티나 해줄까 한다. 대안학교와 거리학교 등 가는 사람 별로 없는 길을 가느라 애썼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쫄지마, 학교 밖으로> 210쪽

딸이 둘인 아버지가 있다. 큰 딸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한데 막내딸은 '정상적인' 절차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학교' 생활을 했다. '너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막내딸의 현재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너굴은 방송통신대학교를 기웃거리기도 했으니, '초등학교 졸업' 학력 다음에 '방송대 중퇴 혹은 재학 중'이라는 학력이 보태질 수 있다. 하지만 '초졸'이라고 당당하게 학력을 밝히는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보태는 학력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쫄지마, 학교 밖으로>으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학교 밖으로 나와 세상을 학교 삼은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의 성장과정을 함께 하면서 지켜본 아버지가 아이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거부한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속내는 무척이나 복잡했을 것이나, 저자는 순순히 아이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19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쫄지마, 학교 밖으로>에는 그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전학한 뒤 학교 안 '이방인'이 된 아이... 중학교 진학 포기

너굴이 학교와 멀어지게 된 건 전적으로 부모 탓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가족은 신도시를 떠나야했고, 너굴도 덩달아 5년 동안 다닌 학교와 친구들을 등지게 됐다. 초등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학교를 옮겼으니 적응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6년간 '학교 밖 생활'을 하게 되는 (나름 파란만장한) 너굴의 행보는 여기서 비롯됐다 해도 좋다. - <쫄지마, 학교 밖으로> 19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찔끔했다. 나 역시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날, 군포에서 서울로 이사했고 아이를 전학시켰기 때문이다. 이사 전, 아이에게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켰다고 믿었는데, 그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너굴의 1년 남은 초등학교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중학교 진학까지 망설이게 했다. 전학 간 학교 안에서 '이방인'이 된 아이는 중학교에 가서도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로 결심했고, 부모는 이런 아이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고작 열두 살이었으니까. 부모의 이런 선택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안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학교 안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세상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오고 싶어했고, 아버지는 아이의 선택을 다시 존중했다. 이런 이면에는 아버지 역시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 많은 작용을 했단다.

행복하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선택도 가능하다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쫄지마, 학교 밖으로>를 읽으면서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인 것은 지금 대학교 4학년인 내 아이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한 아이는 순탄하게 중학교에 진학했다. 공부, 잘 하는 편이었다. 공부를 잘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심을 내게 된다.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면서 아이를 닦달하면서 성적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대안학교에서 아이가 공부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이와 충분히 논의했다고 여겼지만, 아이에게 대안학교 선택을 강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안학교를 1학기만 다니고 전학했기 때문이다.

대안학교는 기대와 많이 달랐다. 역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여름방학을 앞둔 아이에게 전학의사를 물었더니 아이는 전학을 희망했다. 일반 고등학교로 아이를 전학시키면서 내가 한 말은 "학교에 다니기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는 것이었다.

만 19살 된 아이, 돌아올 기약없는 해외배낭여행 떠난다

이런 경험이 있으니 너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아이가 자꾸 겹쳐지는 건 당연했다. 아니 어떤 부모라도 <쫄지마, 학교 밖으로>을 읽으면 자기 아이가 생각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땠나, 내 아이는 어땠더라, 하면서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게 부모 마음이 아닐지. 아직 아이가 어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될 것이고.

대안학교를 끝으로 학교 밖으로 완전히 나온 너굴은 '로드스쿨러'가 되었다. '로드스쿨러'가 물론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처음에는 '청년 백수'와 다름없는 생활이었다는 것이 아버지의 고백이다. 하지만 너굴은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모색했다.

어느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1년 동안 사진강좌를 들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기도 했다. 지역 청소년수련관의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국토대장정을 떠나기도 했으며, 해외봉사활동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또한 방송통신대학교에 지원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또래 친구들과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는 인생친구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 아버지인 저자의 술회다.

만 19살이 된 너굴은 이제 언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해외 배낭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쫄지마, 학교 밖으로>의 송경호 저자는 말한다.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겠지만, 자신은 대학에 가는 대신 세계를 떠돌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겠다는 것이다. 맘에 드는 곳이 있다면 잠시 눌러앉을 수도 있겠고, 공부나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그런 일은 원치 않지만, 길에서 만난 녀석과 사랑에 빠져 엉뚱한 길로 가도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자기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니까. - <쫄지마, 학교 밖으로> 211쪽

쿨한 아버지다. 길 위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그건 네 몫의 삶이라는 것이다. 송 저자의 말대로 19살이면 스스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나이다. 아이를 세상 밖으로 서둘러 내몰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아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게 마련이 아닌가. 제 삶은 제 몫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너굴의 해외배낭여행 비용의 일부는 부담하겠단다. 왜? 큰딸 대학등록금의 일부를 부담했으니 막내딸에게도 공평하게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다.

고작 19살인 너굴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푸르디푸른 나이다. 그가 나중에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 모르지만, 무엇을 하든 아주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면서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아이의 진로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면 <쫄지마, 학교 밖으로>을 권한다. 꼼꼼하게 읽으면서 내 아이를, 나를 너굴과 너굴의 아버지 자리에 대입한다면 아이를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경험을 공유하는 것 아니겠나.

쫄지 마, 학교 밖으로! - 막내딸과 함께한 거침없는 대안교육 에세이

송경호 지음,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2014


#쫄지마 #학교밖으로 #송경호 #로드스쿨러 #홈스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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