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알고도 호주 워킹홀리데이 하시겠습니까?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실태④] 한인 컨트랙터-슈퍼바이저 농장 관리 구조

등록 2014.02.28 15:22수정 2014.02.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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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호주 브리즈번에서 한인 세 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사망자 셋 모두 한국인 '워홀러'였다. '워홀러'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등 외국에 와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망 사유는 모두 달랐지만, 사망 사건이 잇따르면서 호주 워킹홀리데이 실태가 이슈화됐다. 영어권 나라 중 캐나다·뉴질랜드·아일랜드 등도 우리나라와 청년 워킹홀리데이 협정을 맺고 있지만, 호주는 비자 발급 절차가 간단해 한국청년들이 특히 많이 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멜버른(Melbourne)에 머물다 왔지만, 그 기간 동안 소위 '워홀러'라고 불리는 한국인을 만난 적이 없었다. 회사 동료, 프로젝트를 통해 만났던 한국 출신들은 국적이 호주나 뉴질랜드여서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었다. 살던 동네에도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시티'(City)라고 부르는 시내 중심가에 나갔을 때, 그곳을 동네 주민처럼 다니면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20대 초반 사람들을 보면 '워홀러인가 보다' 하고 추측하는 게 전부였다. 진짜배기 한국인 워홀러가 호주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 기자말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와서 추가로 1년을 더 머무르기 위해서는 '세컨드 비자'(Second Visa)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비자를 받으려면 흔히 '농장일'(Farm Work)이라 불리는 일을 88일간 해야 한다. 호주에서 농장일을 구할 때는 슈퍼바이저(Supervisor, 감독관), 컨트랙터(Contractor, 하도급 계약자) 등의 직책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실태를 취재하던 도중, 우리는 호주 농장에 퍼져있는 '한인 커넥션'에 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브리즈번, 멜버른, 애들레이드 등 한인 컨트랙터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형·동생이고 선후배예요. 그러니까 어느 농장을 가든 똑같이 운영되곤 하지요."

한인 컨트랙터에게 딸기 농장 슈퍼바이저 자리를 제안 받은 적이 있다는 박명훈(가명·25)씨는 한인 컨트랙터들이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컨트랙터는 농장의 하도급 계약자다. 한인 워홀러들은 편의상 "컨트랙터가 농장 두 개를 가졌다"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는 농장 두 군데에 워커(Worker, 노동자)를 보낼 수 있게 돼 있다는 의미다. 농장이 어떤 구조로 돼 있길래 한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 것일까.

내가 일했던 농장의 슈퍼바이저 김민철(가명·24)씨는 본인을 "농장 셰어하우스의 마스터(Master)이자 농장의 슈퍼바이저"라고 소개했다. 김민철씨는 대학을 휴학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지난해 5월 호주에 온 워홀러였다.


그는 세컨드 비자를 받기 위해 브리즈번 농장에서 워커로 일한 적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 현재 농장의 컨트랙터를 알게 됐다. 그 컨트랙터는 김민철씨를 슈퍼바이저로 스카우트했다.

워커 시절 김민철씨는 딸기 농사 실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학창시절을 중국에서 보내 중국어에 능통했는데, 한국 및 대만·홍콩 워홀러를 관리하는 농장에 슈퍼바이저로 제격이었다. 그는 브리즈번 시티에서 중고차 딜러·청소일 등을 했었지만 "농장일이 더 돈이 되기 때문에 슈퍼바이저를 한다"고 말했다.

농장 속 피라미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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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은 '사장-매니저-컨트랙터-슈퍼바이저-워커' 구조로 돼 있다. ⓒ sxc


농장은 '사장-매니저-컨트랙터-슈퍼바이저-워커' 구조로 돼 있다. 제일 위에 농장 주인인 사장이 있고, 그 밑에 농장 운영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있다. 그리고 매니저는 컨트랙터를 고용해 워커 관리를 포함한 농사일을 맡긴다. 여기서 컨트랙터는 슈퍼바이저를 고용한다. 슈퍼바이저는 워커를 모집하고 숙소를 운영하는 등의 일을 한다. 보통 슈퍼바이저는 10~15명 정도의 워커를 맡고, 농장에서 일을 지시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숙소를 관리한다.

컨트랙터는 농장 여러 곳과 계약해 일을 받고, 워커에게 제공할 숙소도 여러 개 운영한다. 컨트랙터 또한 농장 소유자가 아닌 하도급 계약자이기 때문에,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여러 농장에서 계약을 따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 잘하는 워커들을 모아 농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일한 농장의 경우, 컨트랙터는 농장 두 곳과 계약을 맺고 있었고 슈퍼바이저 세 명을 통해 셰어하우스 세 채를 총괄하고 있었다. 워커는 우리가 일하는 농장에 약 30명, 다른 농장에 약 15명이 있었다.

불법 셰어 돌려서 부가수입 얻는 슈퍼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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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일했던 농장 셰어하우스 현관 모습. 성인 6명이 살 집이었는데 12명이 함께 살았다. 신발장에는 수납 공간이 부족했다. ⓒ 이애라


숙소 관리 상황은 대부분 비슷했다. 세컨드 비자를 받기 위해 가는 농장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워커는 개인적으로 통근하기 어렵고, 지낼 곳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농장의 경우, 일의 특성상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출근시간도 날마다 달라지는 등 일정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장은 워커를 대상으로 한 농장용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농장용 셰어하우스는 시내에서 이뤄지는 불법 렌트와 유사한 구조로 운영된다. 우리가 지냈던 농장 셰어하우스를 기준으로 실태를 살펴보자. 슈퍼바이저는 부동산에서 집을 빌려, 침실 하나를 4인 1실로 운영한다. 이와 동시에 워커 1인당 주 100~150호주달러 내외를 방값으로 받는다.

우리가 지냈던 집은 침실 세 개가 딸린 집이었다. 성인 여섯 명이 살 수 있는 집이었지만, 최대 열두 명이 함께 지냈다. 심지어 거실에도 매트리스를 둬 방처럼 사용했다. 슈퍼바이저는 워커를 모집해 자신이 빌린 집에 살게 하면서 주세를 받아 자신의 부가수입으로 삼았다. 슈퍼바이저는 집을 운영·관리하는 것을 두고 "컨트랙터가 집을 해줬다"고 말하곤 했다. 정리하면, 슈퍼바이저는 농장에서 일한 시급에 더해 셰어하우스를 돌려서 얻는 부가수입을 약속받고 컨트랙터 밑에서 일하는 것이다.

워커 모집 역시 슈퍼바이저의 몫이었다. 워커가 부족하다는 것은 집을 셰여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고, 이는 곧 슈퍼바이저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김민철씨는 호주바다·호주나라 등 한인 누리집뿐만 아니라 대만인들의 해외생활 정보 공유 누리집인 '백팩커스'(背包客棧, http://www.backpackers.com.tw) 등에도 직접 농장 홍보글을 올려 워커를 모았다.

슈퍼바이저의 시급은 18호주달러(한화 1만7300원가량) 정도. 슈퍼바이저는 주 4~5일 농장일, 하루 6~10시간 내외로 일했다. 하루 여덟 시간씩 주 5일을 일한다고 해도 40시간이면 주급이 720불이다. 시내에서 일해서 벌 수 있는 돈과 비교해 보면 그리 큰 돈은 아니다. 하지만 김민철씨는 "돈이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불법 렌트를 통해 생기는 부가수입 때문이었다.

슈퍼바이저는 컨트랙터에게 '용돈'을 받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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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떼이거나 세컨드 비자 폼을 받지 못할 때, 컨트랙터들은 워커들에게 슈퍼바이저 역할을 제안하곤 한다. ⓒ sxc


김민철씨는 호주 브리즈번에 처음 도착해 농장에서 일한 뒤, 돈도 세컨드비자 폼도 받지 못한 채 일을 그만뒀다. 이후 그는 몇 번이나 돈을 받으려 애썼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당시 컨트랙터가 건너 아는 사람인 현재 농장의 컨트랙터에게 김민철씨를 소개했다. 김민철씨는 "그 당시 일한 돈은 못 받을 것 같았다"면서 "다만 전 컨트랙터가 커미션(Commission, 소개비)을 조금 떼어주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전 컨트랙터는
떼먹은 임금을 주지 않는 대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길을 소개해준 셈이었다.

앞서 소개된 김민철씨는 그나마 잘 풀린(?) 사례다. 박명훈(가명·25)씨도 브리즈번 농장에서 일하고 돈을 받지 못했다. 박명훈씨가 항의하자 농장 컨트랙터도 "농장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박명훈씨의 말에 따르면 돈을 떼먹은 컨트랙터는 "돈은 못 주지만 대신 다른 곳에 가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컨트랙터는 박명훈씨를 다른 컨트랙터 밑에서 일하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박명훈씨는 이전 컨트랙터만 믿고 거주 도시를 옮긴 뒤였다. 이후 박명훈씨는 세컨드 비자를 따기 위해 다시 다른 농장에서 워커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돈을 떼이거나 세컨드 비자 폼을 받지 못할 때, 컨트랙터들은 워커들에게 슈퍼바이저 역할을 제안하곤 한다. 컨트랙터들이 워홀러에게 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알선하는 셈이다.

고용 형태도 우회적이었다. 슈퍼바이저 김민철씨는 "지난해 11월에 지금 일하는 농장에 왔고, 올해 6월까지 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슈퍼바이저 진지희(가명·26)씨는 "지난해 6월부터 7개월째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는 한 고용주 아래서 6개월 이상 일할 수 없다. 김민철씨와 진지희씨는 이 규정에 어긋난다. 하지만 농장 슈퍼바이저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슈퍼바이저가 컨트랙터에게 사실상 '용돈'을 받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슈퍼바이저는 회사(농장)에 고용돼 있는 게 아니라 컨트랙터 개인에게 고용된 신분이라는 이야기다. 시급도 슈퍼바이저와 컨트랙터의 약속에 의해 책정된다. 김민철씨는 이런 구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굳이 말하자면 용돈을 받는 거예요. 컨트랙터가 돈을 받고, 그걸 떼어내서 슈퍼바이저에게 주는 거죠. 사실상 저도 똑같은 워커예요."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없는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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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바이저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세입자들에게는 계약서 없이 간이영수증만 작성해줬다. ⓒ 이애라

우리가 일했던 농장의 경우, 운영 구조가 불법적인 만큼 계약서 같은 것도 없었다. 셰어하우스는 세입자에게 간이영수증만 제공했다. 워커들에게 근로계약서 같은 문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대신 '디테일'이라 불리는 A4 한 장짜리 문서가 있었다.

이 문서에는 워커의 이름, 여권번호, TFN(Tax File Number의 약자로 세금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별 고유번호), 일 시작 날짜, 생일, 휴대전화 번호, 메일주소, 계좌정보 등을 적어야 한다. 이 문서는 농장에 제출된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일하게 될 농장 이름, 고용주 이름, 근무조건에 대한 설명은 한 구절도 없었다.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에 대해 슈퍼바이저 김민철씨는 "한 번도 쓴 적 없지만 아무 문제 없었으니 그냥 믿으라"고, 진지희씨는 "돈 떼일까봐 그러는 거라면 걱정마라, 우리는 돈을 떼먹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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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를 요구했을 때, 받은 '디테일'. 워커의 정보를 제공하는 게 전부다. ⓒ 이애라


이들 워커들은 확실한 계약도 없이 슈퍼바이저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시키는 대로 쉰다.

워커들은 해고 통지를 바로 전날 밤에 받아도, 계약서가 없기 때문에 변변히 따지지도 못하고 떠나야 한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고 다른 농장을 찾아간 최지민(가명·18)씨는 다른 곳에서 꼭 같은 농장을 만났다고 한다. 슈퍼바이저도 한국인, 워커들은 한국·홍콩·대만 사람인 그런 농장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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