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꽃장사, 대박 날 줄 알았건만...

[인턴기자가 뛰어든 세상 ④] 다섯 다발 중 세 다발만 겨우 팔아

등록 2014.02.28 11:49수정 2014.02.2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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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별종이 아니라 새소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모든 시민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시민기자' 또는 '뉴스게릴라'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초부터 7주간 <오마이뉴스>기자들과 함께 땀 흘렸던 19기 인턴기자들이 다시 '뉴스게릴라'가 되어 각자 묵직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인턴기자가 뛰어든 세상' 시리즈를 통해 조심스레 세상을 향해 노크해봅니다. [편집자말]
19일 오전 7시, 남대문 꽃시장은 한산했다. 졸업식을 앞둔 꽃시장은 '꽃보다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발 디딜 틈 '있는' 시장 분위기가 의아했다. 불황인가 싶었다.


"어머니, 졸업식에서 팔 꽃을 여기서 떼어가는 거 아니에요? 사람이 별로 없네요?"

꽃시장 상인들의 움직임이 일순 멈칫했다. 그들의 시선이 기자에게 향했다.

"꽃 떼어가는 사람은 벌써 다 갔지. 지금 와서 무슨…."

여기저기서 웃음기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루 장사 공친다'는 상인들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마음이 급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며 프리지아 두 단과 분홍장미, 백장미, 미니장미 등을 사 모았다. 만들 다발 수를 조절하며 계산하던 찰나, 이상했다. 단가가 예상을 웃돌았다.

미니장미나 백장미와 같은 비교적 대형 꽃들은 한 단에 7000원이었고, 프리지아 같은 소형 꽃들은 한 단에 4000~5000원이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했던 것보다 꽃 한 단의 가격이 2000~3000원씩 더 비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섯 다발을 만드는데 꽃값만 3만8000원이 들었다. 포장에 드는 자재와 부가 비용까지 합하니 5만 원에 달했다. 꽃다발을 다섯개 만들었으니 원가는 한 다발에 만 원꼴.


"생화 한 다발에 만 원! 오늘 아침에 떼어온 거예요"

졸업특수 시즌이라지만, 꽃도매 시장 상인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OO농원'을 운영하는 최광례씨는 꽃다발을 포장하면서 "요즘 이거(꽃 장사) 해서 남는 것도 없어, 학생한테는 그냥 해주는 거야"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생산농가 수 감소와 수요량 급증으로 설 전보다 꽃값이 대폭 상승한 것이다. 그나마 다섯 다발 중 마지막 한 다발은 꽃이 듬성듬성 자리 잡아, 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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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에 앞서 준비해간 꽃다발을 박스 위에 어설프게 쌓아둔 모습. ⓒ 임경호


장사 밑천 다섯 다발을 가슴에 안고 꽃시장을 나가려던 순간, 한 상인이 기자를 불러 세웠다.

"아이고, 학생. 꽃들을 바닥에 깔아놓고 팔려고 하나?"

시장을 돌며 "꽃 장사하러 간다"고 떠들어놓고 불과 다섯 다발을 아무 채비도 없이 들고 가는 기자가 불안했나 보다. 그 상인은 손수 검정 봉투와 대형 종이박스 등을 챙겨서 기자의 품에 안겨줬다.

목적지는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명지대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오전 11시까지 시간은 충분했다(그렇게 생각했다,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다). 꽃을 산 회현역에서 명지대가 있는 증산역까지 약 40분 거리. 검정 봉투에 꽃다발을 가득 담고 종이박스를 접어 허리에 낀 채 어기적어기적 걸음을 옮겼다.

우스꽝스런 행색에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은 묻기도 했다.

"거 뭐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첫 장사에 흥분한 탓인지 눈만 마주쳤다하면 "꽃 장사하러 간다"고 '반 강제로' 알려줬다. 첫 장사의 불안함과 가격의 변수 등 예상 밖 요소에 초조함이 앞섰다. 그 와중에 "다섯 다발은 금방 팔어~!"라는 한 할아버지의 말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됐다.

졸업식을 앞둔 명지대 정문에는 이미 꽃다발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정문 앞부터 시작된 장사 행렬은 30여 미터 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이어졌다. 화려한 진열대부터 빨래를 말리는 휴대용 행거에 꽃다발을 끼워놓고 파는 이색 판매대까지 등장했다.

판매하는 사람도 가지각색이었다. 혼자 나온 40~50대 중년 남성부터 친구와 함께 나온 20대 여대생까지 양손에 꽃을 들고 판매에 열을 올렸다. 정문 쪽엔 이미 빽빽할 정도로 많은 상인들과 진열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30여 분이나 이리 저리 오가며 서성였다. 어디에 가든 기존 상인들의 틈새를 파고드는 꼴이었다. 남대문 상인들의 말대로 "늦었다"는 걸 거듭 실감했다.

정문에서 멀찍이 떨어진 버스 정류장 옆에 간신히 박스를 펼치고 자리를 잡았다. 직사각형의 박스 위에 꽃을 올려놨다. 다섯 다발이라 진열이랄 것도 없었다. 다행히 꽃 상태는 흐트러짐 없이 양호했다.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려는데, 그제야 주변 상인들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렸다.

"비누장미가 한 다발에 만 원!"
"생화 하나에 만 원!"

주변 상인들 대다수가 꽃 한 다발을 만 원에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2만 원에는 팔아야지'라는 기자의 가격선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철저한 시장 논리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기자의 입에서도 노래방 같은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생화 한 다발에 만 원! 오늘 아침에 떼어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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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남은 꽃 두 다발을 손에 들고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임경호


모든 꽃이 만 원에 팔리는 건 아니다. 정문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다발 가격이 올라갔고, 정문 인근에서는 2만 원대 팔리는 꽃다발도 종종 보였다. 하지만 아무도 '2만 원'을 외치지 않았다. 미끼상품으로 "만 원"을 외친 후, 화려한 꽃을 들이밀며 2만 원의 가격을 붙이는 식이었다.

기자처럼 학교 정문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꽃을 판매하는 경우는, 가격을 높게 부를 수 없다. 학교 입구까지 이어진 꽃 장사 행렬을 본 손님들은 당장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가격을 부르는 즉시 구입하게 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기 때문에 가격이 쌀 수밖에 없다.

생화 다섯 다발, 비누장미에 완패하다

꽃을 팔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꽃다발을 사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속 서서 소리치다 보니 다리는 아파오고 발끝이 시렸다. 영하의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한 장소에 멈춰선 이에게 한기는 쉽게 감겼다.

반면 인도를 마주하고 맞은편에서 장사를 하던 이아무개(경기도 일산·40대)씨는 꽃을 척척 잘도 팔아치웠다. 오전 6시에 나와서 자리를 지켰다는 이씨는 "꽃 장사 하는 사람들은 원래 일찍 나온다"며 "(나도) 아침에 일찍 나왔지만 좋은 자리를 못 잡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생화가 아닌 비누장미를 팔고 있었다.

이씨에 따르면, 비누장미는 생화와 달리 시들지 않아 재고 걱정이 없고, 유행 아이템이라 판매도 수월하단다. 이씨는 "향기 나는 비누장미가 한 다발에 만 원"이라며 목청을 높이다가도 "…만 원, 그리고 한 송이 더!"라고 금세 판매 전략을 바꾸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졸업식에 참석하려 한껏 치장한 채 급히 학교로 향하던 사람들도 이씨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발길을 멈췄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진열대에는 빈 공간이 늘어갔다. 이씨는 한 다발도 팔지 못하고 있는 기자가 안쓰러웠는지, 선심 쓰듯 판매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서 꽃 장사를 할 때는 양손에 꽃을 들어야 해."
"어차피 (판매하려는 꽃이) 몇 다발 안 되니 장사를 잘 하는 상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여자들은 꽃을 고른단 말이지. 그런데 남자들은 쑥스러움이 많아서 꽃을 내밀면 대부분 그냥 사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면 팔린단 말이야. 택시에서 내리던 남자 봤지?"


이씨에게 배운 요령대로 했더니 꽃이 팔리기 시작했다. 용기를 얻는 기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방언'(경상도)이 터졌다.

"어머니, 이거 생화. 너무 화사한 꽃 사면 사진 찍을 때 인물이 죽어요. 적당한 색과 톤, 제가 또 사진했잖아요."

나오는 대로 뇌까렸다. 뭐라고 말하는지 나 자신도 알기 힘들 무렵, 또 한 다발의 꽃이 팔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잠시나마 어머님들과 여대생들의 관심과 웃음을 샀지만, 그들은 쉽게 기자의 꽃을 사주지 않았다.

기자의 손에 들린 꽃을 두고 "예쁘다"는 말만 수차례 던졌다. 하지만 누구 하나 '예쁜' 꽃을 사지 않았다. 기자의 얘기를 들으며 환하게 웃는가 싶더니, 정작 꽃은 옆에 있는 상인에게서 사버리곤 했다.

꽃 장사는 시간이 '돈'

모든 생물은 시든다. 꽃도 그렇다. 특히나 생화를 준비해온 기자에게 시간은 치명적이었다. 이른 아침 샀던 꽃은 추운 날씨에서 급격히 시들어갔다. 오전 11시, 졸업식 시간이 지나고 아직도 손님이 드문드문 있을 무렵 꽃들이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리지아는 꽃잎이 쭈글쭈글해졌고, 장미도 생기를 잃고 꽃잎의 일부가 아래로 처졌다.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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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자 프리지아가 급격히 시들었다. ⓒ 임경호


시간을 다투던 이른 아침과 달리 꽃이 시들기 시작하자 분초를 다퉜다. 한 번 시들기 시작한 꽃은 눈에 띄게 빛을 잃어갔다. 그 와중에 하나둘 팔리고 남은 두 다발이 사경을 헤맸다. 양손에 들고 가격을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꽃잎이 망가졌다. 그 탓일까. 오전 11시부터 남아있던 두 다발은 오후 두 시가 될 때까지 그대로 박스 위에서 자리를 지켰다.

졸업식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꽃다발의 생명도 함께 끝나가고 있었다. 가격대를 낮춘 까닭에 본전을 목표로 완판 생각이 간절했지만 시든 꽃을 보니 그런 생각마저 사치라고 여겨졌다. 춥고 배고팠다. 또 피곤했다. 결단이 필요했고 나는 꽃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장사를 접었다.

어쨌든 적자다. 다 팔겠다는 중압감과 내 업이 아니라는 가벼움 속에 하루를 보냈더니 뒷맛이 영 개운하지 못했다.

주섬주섬 뒷정리를 하는 내게 주변 상인들이 말을 건넸다.

"벌써 가면 어떡해."
"다 팔고 가야지."
"5000원에 풀어!"
"1만 원 손해 볼 거 5000원이라도 건져야지?"

크고 작은 격려가 쏟아졌다. 어눌한 모양새와 어설픈 상인 흉내에 마음이 동했을까. 아니면 너무 떠들고 다닌 걸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등을 토닥였다. 비단 현장뿐 아니었다.

꽃을 사던 남대문 시장의 그이들도, 명지대로 향하던 길에 만난 낯선 사람들도, 현장에서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꽃을 팔던 상인들도 갖가지 이유로 기자를 격려했다. 타지가 고향인 게, 아직 학생인 게, 장사가 처음인 게 이렇게 따스한 이유일 수 있을까.

"내일은 서울을 벗어나 강원도로 갈까?"

이씨는 벌써부터 다음날 장사할 곳을 고민하고 있었다. 빙그레 웃는 이씨의 얼굴에 꽃장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이들의 '향긋한 치열함'이 배어났다.
덧붙이는 글 임경호 기자는 19기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입니다.
#꽃장사 #졸업식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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