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장학금 받은 나, 이런 사람입니다

'친구장학금' 받고 감이당 수업... "나 안 갚을거야"

등록 2014.03.03 15:33수정 2014.03.0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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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공부하러 다닐 작정을 하게 되면서 넘어야할 숙제가 몇 개 있었다. 굳이 그렇게 공부할 필요가 있냐고 싫어하는 남편을 넘고 어머니를 위해 요양보호사를 부르고 7살 막내는 일일 종일반 보냈다. 이제 다 해결 되었다 싶었더니 난관이 하나 더 생기게 되었다. 작년에 하던 아르바이트를 못하게 됐다.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다. 작년 그 아르바이트 덕에 친정에 남편 눈치 안 보고 회를 쏘고 이웃 아줌마들과 밥을 막 사고 조카들에게 용돈을 주고 애들 옷도 사주고 여행도 가고, 책도 사고 망설임 없이 가구 동호회에 가입도 턱 했다. 가장 과감했던 것은 역시 주 1회 하루를 바쳐가며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1년 수업료 160만 원. 정말 신나게 썼다.

남편 통장의 마이너스를 메울 때면 나름 으쓱한 기분도 있었다. 그리고 올해도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당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인생지사 마음대로 안되는 것. 공부하겠다고 일은 벌려놨는데 돈 줄이 막혔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더욱이 공부하기 위한 비용을 다 뺀다하더라도 나도 모르게 늘어난 씀씀이를 원위치 시키려면 한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아껴야 한다. 앞으로 사먹었던 음식들은 대부분 만들어 먹어야 하고 간식도 줄여야 한다. 일도 안하는데 미용실도 가지 말아야지. 머리가 복잡하다. 무엇보다 주1회 서울공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책값을 줄이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비용을 줄일 수 있을 터이지만 차비가 문제다.

한달 전 예약하여 30% 할인된 KTX를 타고 서울을 오갈 예정이었다. 할인됐다지만 왕복 기차, 전철 등이 2만1700원에 점심값 등을 포함, 10~12만 원 정도가 든다. 아침엔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KTX를 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녁에 KTX을 타지 않고 1시간 더 늦게 오면 만원을 줄일 수 있다. 그러면 4~5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떨어져 오는 것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아낄 수 있는 최대한 아끼는 전략을 쓰지 않으면 올 해 마이너스 통장의 노예가 될 것이다. 감이당은 절기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입춘이 지난 2월 말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아직은 방학이니까 막내는 큰 애들에게 맡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전철을 탔다. 쌍용역에서 7시 25분 전철을 타고 천안역에서 7시 39급 서울역급행으로 갈아 탄 다음 다시 서울역에서 충무로 환승하여 가니 비용이 3350원 이다. 집에서 나와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왜 전철을 타느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그냥 "돈 벌라고"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큰 아이들 개학전 2번의 서울 공부를 다녀왔다.

2번째 공부하고 내려오는 날 은영언니가 "우리가 장학금을 마련했어. 그냥 KTX 타고 다녀"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에요"라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독립해서 사는 이 나이에 그렇게 남의 돈을 받으면 안된다는 생각, 초라하다는 생각, 그보다도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교육받은 것이 가장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시간 교재였던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에 이런 구분이 나온다.

인생이란 기나긴 길을 갈 때 가장 쉽게 직면하는 것은 두 가지 난관이다. 그 하나는 기로에 섰을 때다. 묵자는 통곡을 하고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울지도 않고 돌아서지도 않을 것이다. 먼저 갈림길 머리에 앉아 조금 쉬거나 한숨 잔다. 그런 뒤 갈 수 있어 보이는 길을 택해 간다. 만일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 배고품을 면할 것이다. 하지만 길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만나면 나무에 올라가 호랑이의 허기가 사라지고 지나간 뒤에 내려올 것이다. 가지 않으면 나는 나무 위에서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 끈으로 내 몸을 나무에 묶어 시체조차도 호랑이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없으면 방법이 없다. 잡아먹으라고 하는 수밖에. 하지만 호랑이를 한번 물어도 괜찮을 것이다. 다음은 막다른 길이다. 완적 선생도 크게 울고 돌아섰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기로에 섰을 때처럼 계속 나아갈 것이다. 가시덤불 속을 한동안 걸을 것이다. 온통 가시밭이고 갈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그런 곳을 만난 적이 없다. 세상에 본디 막다른 길이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운이 좋아 만나지 못했거나. (루쉰. <양지서>)

이옥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내게 가장 꽂혔던 구문이다. 나도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주어진 삶을 피하지 않을 것이며 적극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호랑이를 만나 피할 길이 없다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호랑이를 한번 물지언정 포기는 하지 않는다. 가시밭길이라도 기꺼이 가겠다. 의연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 "진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먹을 것을 빼앗아~~~"라는 곳이다. 고미숙 선생님은 "어차피 다 빼어먹고 살지 않나?"라고 하셨다.

내가 착각하고 살았다. 나는 내가 독립적으로 남의 도움 받지 않고 산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가깝게는 남편의 경제 활동의 도움을 받고 아이들의 도움을 받고, 친정에서 된장 고추장 등 양식을 받고 더 나아가서는 소를 죽여 그의 살을 뺏어 먹고 땅에서 곡식을 빼앗아 살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 것 하나 빼앗아 먹지 않고 살지 않으면서, 신세지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을까.

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꺼이 빼앗기리라. 우리는 결국 서로를 착취하며 살면서 고마움도 모르고 종이 쪽지 돈을 지불했다는 명분으로 당당하다.

다음 날 다시 주겠다는 친구들의 장학금을 넙죽 받았다. "나 안 갚을거야"라고 말하면서.
아무 대가 없이 주겠다는 친구의 호방함에 쫀쫀하게 대답했다.

서울 감이당으로 공부하러 다닌다고 서울대학교 학생이 된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마치 내가 연암 박지원이 된 것 같았다. 평생 형수와 아내의 경제력에 기대 살았고 친구의 도움을 받고 살았던 연안 박지원. 그들과 평생 교우하며 죽을 때까지 친구들 속에서 그답게 살다 간 사람이다. 하지만 박지원이 자괴감에 빠지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세상의 가치가 어떠하였든 간에 진실한 사람에게 조차 길을 묻지 않았고 자기 길을 산 사람이다.

나도 남편의 경제력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오버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내가 박지원이 된 듯하다. 친구들에게 장학금 받아봤다는 사람 들어봤나? 하하하 나는 이런 사람이다.

방은영, 최윤순 이들이 내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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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준 장학금과 깨달음을 준 책 이 장학금은 돈이 아니랑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성적표 같다. ⓒ 이소영


#감이당 #친구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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