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국민도 만족 못할 '상설특검' 왜 만들었나

[주장] 야합으로 태어난 '특검 없는 특검법'... 제기능 못할 것

등록 2014.03.04 14:27수정 2014.03.0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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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 도입 법안이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여정부가 권력형 비리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기 위해 검찰을 대신한 '공직부패수사처'를 제안한 것이 2004년 11월.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의 논쟁과 입법 활동, 법안제출과 법안의 폐기,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제출 등을 모두 뒤로 하고 어쨌든 법안은 성립되었다.

권력형 비리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검찰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 상설특검 혹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아래 고비처)가 필요하다는 점은 당연지사. 다만 고비처가 제대로 된 전문제품이라면 상설특검은 그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쓸 만한 대체재라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상설특검과 고비처의 명분이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상설특검이나 고비처 설치 합의에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예상한 사람이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별검사' 없는 기괴한 '상설특검 법안', 국회 통과

하지만 상설특검 논의가 이렇게 허무하고 이상하게 끝날 줄 예상한 사람은 더 적었을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상설특검 법안은 상설특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상하고 기괴한 작품이다. 국회에서 상설특검 논의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은 이미 작년 말에 감지되었다. 많은 비판이 있었다. 나도 칼럼으로 당시의 이상하고도 기괴한 상설특검 논의에 대해 충고하고 경고했다. 그러나 여야는 모든 비판에 귀 막고 상설특검법안을 야합으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번에 통과된 상설특검 법률은 상설특검이라고 하면서도 특별검사는 없다. 법률만 달랑 존재한다. 상설특검제도의 목적은 특별검사가 임명되어 상시적·전문적으로 부정부패사건·권력형 비리사건을 수사하고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의 활동이 중요하다. 평소에 권력형 비리사건을 수사하고 검찰의 권한을 견제하려면 무엇보다도 특별검사와 그를 보좌하는 인사들이 미리 임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산이나 사무실 등 물적인 토대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특별검사는 임명되지 않았고 특검 사무실도 없다. 특별검사 없는 특검법률이 이번 법률인 셈이다.

그러면 특별검사는 언제 임명되는가? 특별검사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국회가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의결한 경우나 법무부장관이 특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인 경우에 국회에 설치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가 두 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그 중에 한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있다. 이중 삼중의 장치이다.

특검이 임명되려면 먼저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져야 한다. 그다음 검찰의 수사가 정치권력에 영합하고 있다거나 권력자의 편만 들어주고 있는 것과 같은 문제가 터져 나와야 한다. 다음으로 이 문제를 두고 정치권에서 지겨울 정도로 논의를 해야 한다.


국회·특검후보추천위 의결에 대통령 임명 등 절차도 문제

그런 다음에도 문제는 남는다.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결이 어디 쉬운가? 국회의결은 다수여당이 반대하는 이상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최근 가장 큰 쟁점 중의 하나인 국정원과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 특별검사법제정 안건도 다수 여당의 반대로 조금도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야말로 특검을 임명해 수사를 해야 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지체하는 동안 증거는 인멸되고 당사자들은 입을 맞춘다. 검찰은 수사의 흉내만 내고 깃털만 처벌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회 의결 후 국회에 설치된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해야 한다. 국회에서 추천하니 여당쪽 1명, 야당쪽 1명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통령이 이중 누구를 임명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특검이 임명된다. 사건의 발생, 검찰의 축소수사, 시민사회의 반발, 정치권의 논쟁과 싸움, 국회의 의결 등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특검과 완전히 같다. 이름만 상설특검법안일 뿐 여전히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특검이다. 이것이 바로 제도특검의 한계이다.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특검 구조로는 권력형 비리사건과 검찰의 권한남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치권력을 상대로 수사하려면 그만큼 권한이 주어져야 하는데 한시적인 조직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다. 이것은 과거 특별검사의 수사와 재판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역사가 보여준다.

특검의 발동을 위한 요건 중 국회 본회의 의결을 요구한 것은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는 요건과 동일하다. 상설특검법에 의한 특별검사가 기존의 방식대로 특별법을 통하여 임명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상설특검의 운용이 기존의 방식과 동일할 것임을 보여준다. 포장만 바꾼 것이다.

법무장관 통제받고 수사기간도 제한... 논리적 모순에 제기능 못할 것

법무부장관의 판단에 따라 수사를 시작하도록 한 부분은 더욱 기가 막힌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을 통제하는 지위에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법무부와 검찰은 한 몸이다. 겨우 강금실·천정배 법무부장관 재직시절 법무부와 검찰이 대립한 적이 있을 뿐, 법무부장관은 검찰을 지휘하고 검찰을 옹호하고 검찰과 생명을 같이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법무부장관은 대부분 검사출신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므로 법무부장관의 판단으로 특검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특별검사추천위원회의 구성도 문제이다. 추천위원회에 법무부차관, 법원행정처장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법무부는 검찰을 대표하고 검찰을 옹호하는 기관인데 어떻게 법무부차관이 검찰에 대립하는 특검을 제대로 추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법원행정처장이 특별검사를 추천한다는 것도 논리모순이다. 법원행정처장은 특검 사건이 기소되면 재판을 해야 하는 법원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재판기관으로서 수사와 기소권자를 추천할 수 없고 또 해서는 안된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독립 원칙은 현대국가의 기본 구성원리이다.

그리고 특검의 수사기간을 제한한 것도 문제이다. 기존의 특검과 달리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수사를 하려면 시간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나라를 좌우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한 수사가 졸속으로 끝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검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는 너무 앞서가는 걱정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논리적으로도 모순 투성이이고 현실에서 전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상설특검법률이 그런데도 여야 합의로 성립되었다. 그런데 이 수준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에도 못미치고 문재인 후보의 고비처 공약에는 한참 모자란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대통령 후보들이 앞다투어 상설특검과 고비처를 주장한 것은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지금 마련된 것은 이름만 상설특검일 뿐, 기존의 시스템에 비해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국민의 요구에 한참을 못미치는 것이다.

신화에 의하면 야합은 이상한 괴물을 낳기 마련인데, 이번 여야의 야합은 특검 없는 특검법률이라는 이상하고도 기괴한 법률을 만들어 냈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상설특검 #고비처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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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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