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평이 쓰여야, 좋은 소설이 읽힌다

[서평] 조지 오웰의 <소설의 옹호( In Defence of the Novel)>(1936)

등록 2014.03.05 11:04수정 2014.03.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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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소개해 드렸던 조지 오웰의 산문선집 <코끼리를 쏘다>(관련기사 : 조지 오웰 작품의 뒷이야기를 듣고 싶으면?)에는 다양한 글이 실려있습니다. 조지 오웰의 다양한 경험들을 다룬 글들도 있는 반면에, 조지 오웰의 문학평론들도 실려있지요.

하지만 작가로서의 조지 오웰을 살펴볼 수 있는 글들의 매력을 빼놓을 수가 없죠. 오늘 소개해드릴 글은 소설가 조지 오웰이 삼류 서평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소설의 옹호>(선집<코리끼를 쏘다>에 수록된 25편의 에세이 중 <소설의 옹호>는 6번째로 실렸습니다)라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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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박경서 역 / 출간일 2003-06-20) ⓒ 실천문학사


조지 오웰이 1936년에 쓴 이 에세이에서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 이유를 '광고 목적으로 고용된 삼류 서평가들이 써넣은 형편없는 단평 때문'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소설은 다 훌륭하다'는 가정으로 시작하면, 서평가는 결국 수식어의 끝없는 사다리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 모든 서평가들은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어쨋든 어느 정도 정직한 의도를 가지고 서평 생활을 시작한 서평가라도 (...) 형편없는 것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거짓 찬사를 보내는 죄를 범할 경우, 이제는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서평가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소설에 대한 서평을 쓸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모든 지식 있는 독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역겨워하게 되며, 소설을 비난하는 것은 일종의 속물적인 의무가 되어버린다. pp. 97-98.

윌리엄 포크너도 소설가와 서평가의 관계에 관한 인터뷰를 한 바 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에 출간된 파리 리뷰의 인터뷰를 모은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포크너는 비평가의 기능을 묻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합니다.

예술가들은 비평가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겠지만 진정으로 글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서평을 읽을 시간이 없어요. 비평가의 기능은 예술가를 향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비평가 위의 계층입니다. 왜냐하면 비평가는 예술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감복시킬 무엇인가를 쓰는 반면에, 예술가는 비평가들을 감탄시킬 무엇인가를 쓰기 때문입니다. p. 459.

서평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본디 목적은 책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 잠재적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지적하듯 사실상의 광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들은 뒤에 무수한 추천사가 달리곤 합니다. 번역본으로 출간된 책들은 아마존 댓글들이나 <뉴욕타임스>의 서평 기사를 뒷 표지에 박아넣기도 하죠. 요즘에는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해서 출판사에서 다수의 블로거나 누리꾼들에게 책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이에 대한 서평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조지 오웰이 제시하는 대안은 이런 삼류 서평가들의 서평을 외면할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령, 특별한 소설 서평을 하면서도 하찮은 소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하나의 정기간행 잡지를 만드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정도의 수준 높은 잡지가 만들어지진 않았습니다. 출판시장, 서점업계가 불황이라는 이야기를 언제부터 들어왔는지도 가물가물할 정도로 지속적인 침체가 이어지고 있기에 그런 전문적인 시장을 다루는 잡지가 잘 팔릴 확률도 없기에 시장성이 없다고 보였기 때문이겠죠.

오웰은 여기서 더 나아가 진정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책에 엄격한 등급을 매겨 서평가들이 진지한 서평을 쓸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많은 소설비평이 광고비용을 받고 일을 하는 전문서평가들이 아닌 아마추어 비평가들에 의해서 행해진다면, 진지한 작가들이 소설에 몰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서평이라 하기에는 독후감에 더 가까운 성격의 글들을 올리곤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서평을 쓰고 있다고 보면… 남이 노력해서 썼을 저작들에게 함부로 비판을 제기한다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렇다 보니 정말 좋게 다가왔던 책과, 사실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책들에 대한 서평을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큰 차이가 느껴지지 못할 정도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직 '형편없는 것'까진 만나지 않았고…. 거짓 찬사를 보내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군요. 저뿐만 아니라 책에 관한 글을 올리는 많은 누리꾼들과 블로거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조지 오웰의 <소설의 옹호>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 2003


#코끼리를 쏘다 #소설의 옹호 #조지 오웰 #실천문학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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