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생모 인정한 법원 판결, 그 내막

[갈등의 정보사회학②] '뽀로로 친부소송'으로 본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등록 2014.03.11 09:47수정 2014.04.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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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우리 앞에 열린 정보사회는 지난 산업사회의 유물들과의 갈등과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갈등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시대의 첫 장을 위해서는 당연히 존재해야 된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의 본질, 논쟁의 사회적,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논쟁을 통해 정보사회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정보사회학을 전공한 필자가 매주 하나씩 주요 쟁점들을 분석·정리해서 올린다. 독자 여러분의 논쟁적 참여를 기대한다. – 기자 말

출생의 비밀은 TV 드라마의 영원한 소재다. 별다른 개연성 없이 반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랑, 성공, 복수 등은 최소한의 인과 관계가 있어야만 설득력이 있지만 출생의 비밀은 부모의 단 한 마디면 충분하다. '사실 너는 내 자식이 아니었어!' 이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역전된다. 자식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부모만이, 그 중에서도 생모만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생모는 딱 한 사람뿐이다. 솔로몬의 일화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친자를 가려달라는 그 소송에서 적절한 타협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자식이든지 아니든지, 둘 중 하나다.

2011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12 민사부에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 배당된다. 주식회사 오콘(www.ocon.co.kr)이 아이코닉스엔터테인먼트 (www.iconix.co.kr)를 상대로 뽀로로 캐릭터에 대한 단독 저작권을 확인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 건을 보도한 당시 언론들은 이 사건을 '뽀로로의 친부확인 소송'이라고 표현하면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가 '친부확인' 소송에 휘말리게 됐다 - <조선일보>
'친부확인소송' 휩싸인 뽀통령 - <한국일보>
뽀로로 친부확인소송의 전말, 양쪽 부모 서로 "내 아들이야" - <매일경제>
'뽀로로' 진짜 아빠 누구?… 친부확인 소송 - <천지일보>

국산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사실상 처음 성공한 뽀로로를 둘러싼 소송은 당연히 언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기도 했다. 서울통상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약 389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오콘의 김일호 대표는 지난해 7월 <한국경제매거진>과 한 인터뷰에서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가 8500억 원, 경제적 효과가 5조7000억 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세계 120개가 넘은 국가에 수출된 뽀로로의 친자확인 소송은 당연히 주요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빨리 뽀로로의 아버지를 찾아서 뽀로로가 맘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댓글들이 관련 기사에 달렸다. 현재 이 소송은 2심 판결이 났고, 오콘 김일호 대표가 소송에 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송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겠지만,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어젠다를 던져준 것은 확실하다. 

디지털 콘텐츠의 무한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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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롱뽀롱 뽀로로 ⓒ 뽀로로 홈페이지


회화나 서예, 판화 등과 같은 아날로그 콘텐츠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작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개인의 독창적 창조물일 가능성이 높고 일단 완성되면 원본을 다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아날로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요구된다. 또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아날로그 콘텐츠보다 협업시스템이 더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세밀하게 정의되지 않으면 특정인의 저작권을 주장하기 힘들다.

기획, 이미지 창조, 스토리 구성 등 지적인 작업과 컴퓨터 그래픽, 음향, 포스트 프로덕션 등 기술적인 스킬 등이 합쳐져야 완성되기 때문에 처음 정해놓지 않으면 사후 분쟁의 여지가 매우 높다. 법은 늘 사후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여 소송이 진행되면 결과에 상관없이 시간적, 물질적으로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된다.

뽀로로의 친부 확인 소송이 우리에게 주는 사회적 의미는 '누가 승소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 저작권에 대한 진일보한 논의를 유도해서 합리적인 대안이나 법규를 만드는 과정에 있다. 이제 뽀로로 친부소송의 재구성을 통해 주요 쟁점들을 하나씩 분석해 보자.

뽀로로를 탄생시킨 네 회사와 저작권 

2012년 7월 25일에 초판 1쇄가 나온 <집요한 상상>에서 아이코닉스 대표이사 최종일은 뽀로로가 여러 회사의 공동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수차례 밝히고 있다.

"<뽀로로>를 최초 기획할 때 아이코닉스가 기획과 포스트 프로덕션을 담당하고, 오콘은 시나리오와 콘티를 포함한 프리 프로덕션과 메인 프로덕션을 담당하기로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여러 차례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될 정도로 최종일은 뽀로로가 공동작업의 산물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이 나온 시점이다. 오콘이 아이코닉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2011년 가을이었고 이 책이 출간된 2012년 여름에는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었다. 아이코닉스의 최종일 입장에서는 자신의 '결백'을 여러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고 때 마침 출간된 자서전 성격의 책은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뽀로로가 네 개 사의 공동저작물임을 이렇게까지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는데 굳이 소송을 계속해서 동심을 멍들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주요 메시지였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오콘의 김일호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콘의 김 대표는 아이코닉스가 사실상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주장한다. 오콘의 주장은 뽀로로의 저작인격권이 자신들에게 배타적으로 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뽀로로 영상을 팔아서 돈을 벌 권리, 저작재산권은 아이코닉스와 오콘이 동시에 소유하고 있지만 뽀로로 캐릭터의 저작 인격권은 오콘에게만 있다는 주장이었다.

저작권은 저작 재산권과 저작 인격권으로 나뉜다. 저작재산권은 일종의 배타적 소유권이고 저작인격권은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이다. 저작물은 부동산과 달리 매매에 의하여 그 본질이 온전히 이전되지 않는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 보자. 세계에서 몇 대 안 되는 비싼 차라 하더라도 구매한 다음에는 구매자가 마음대로 자동차를 튜닝할 수 있다. 튜닝정도가 아니라 다 뜯어서 다시 재구성해도 상관없다. 구매와 동시에 그 차에 대한 모든 권리가 구매자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 활동의 결과물인 저작물에 대해서는 법이 다른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을 구매한 사람은 그 그림, 즉 하드웨어로서의 그 그림을 구매한 것일 뿐 그 그림은 계속 피카소의 그림이다. 소유자가 누가 됐든 상관없이 피카소의 그림에 변형을 가할 수 있는 사람도 피카소뿐이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의 반영물이기 때문에 소유여부를 떠나서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뽀로로 친자 확인 소송의 내막

이제 오콘 주장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다음은 양사가 서명한 역할 분담에 관한 계약서의 일부 내용을 재판용으로 변형한 것이다. 

제3조 (역할 분담)
① 원고와 피고는 '꼬마펭귄 뽀로뽀로'(이하 '저작물'이라 함)를 공동으로 기획과 제작을 진행하기로 한다. 전체 작업 중 기획구성 및 프로듀서는 양측이 공동으로 담당하며, 이를 제외한 개별 항목은 본 계약서에 부속된 '별지1'에 명시된 회사에서 담당하며, 부문별 담당 회사에서 각 항목별로 책정된 예산을 집행하기로 한다.
② 원고는 본 계약서에 부속된 '별지1'에 명시된 바와 같이 에피소드별 설정작업과 본 제작을 총괄하기로 한다.

[별지1]
* 원고는 ① 제작 기획 중 캐릭터 디자인, 배경 디자인, 색채 설정, ② 에피소드 설정 작업 중 시나리오, 콘티, 총감독, 색지정, 캐릭터 디자인, 배경, 소품 디자인, ③ 본 제작 중 3D 연출, 테크니컬 디렉터, 모델링, 캐릭터 애니메이션, 3D 배경, 합성, 효과, 녹음, ④ 후반 제작 중 편집을 담당
* 피고는 ① 후반 제작 중 음악, 음향, 더빙(성우료), 녹음실 임차, ② 마케팅 중 상표 및 저작권 등록, MD 디자인, 홍보, 광고를 담당

일반적으로 뽀로로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 제작은 크게 기획, 제작, 마케팅으로 분류한다. 위에서 기획 구성과 프로듀서는 기획에 속하고 제작기획, 에피소드 설정 작업, 본 제작, 후반작업은 제작에 포함된다. 오콘이 이 계약서를 법정에 제출한 이유는 간결하다. 기획, 마케팅은 제작과 별도의 행위라는 주장이다. 저작물은 제작에 의하여 창작되는 결과물이지 기획에 의하여 '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 내용, 두 명의 생모 

우선 법원은 캐릭터의 정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캐릭터는 그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개념이지,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요소 중 일부 요소 (원고 주장에 따르면 아이디어에 해당하는 요소)를 분리하여 나머지 요소만으로 구성되는 별개의 캐릭터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각적 캐릭터라고 하여 캐릭터의 정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다만 어떤 행위가 창작적 표현 형식 자체에 기여하였는가, 아니면 단순히 아이디어의 제공에 불과한가에 따라 저작권자인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

캐릭터는 "총체적이고 통일적인 개념"이지 결코 "일부 요소를 분리하여 나머지 요소만으로 구성되는 별개의 캐릭터를 상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법원의 규정은 당연히 다음과 같은 판결로 이어진다.

"각 캐릭터의 시각적 디자인의 작성에 관한 외형, 얼굴, 몸, 소품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피고가) 원고에게 제시하거나 원고가 작성한 뽀로로 캐릭터에 대한 눈동자의 위치 및 크기, 고글 안에 있는 흰 부분, 발의 위치, 펭귄 부리의 크기 및 모양 등에 대한 수정의견을 (피고가) 제안하여 원고가 이에 따라 이 사건 각 캐릭터를 계속 수정하여 만들어 왔고, (피고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짓는 작업에도 관여를 하였으며, (피고가) 한국교육방송공사 내부 스튜디오에서 성우를 섭외하여 녹음, 음악 및 음향효과, 믹싱 작업을 담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피고 (=아이코닉스) 역시 이 사건 각 캐릭터에 관한 저작인격권을 갖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즉, 법원의 1심 판결은 뽀로로 캐릭터에 비주얼 요소 하나만으로는 뽀로로가 오콘의 독창적 저작물이라는 주장은 법적 타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콘은 이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했지만 서울 고법은 기각했다. 오콘의 향후 행보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뽀로로의 생모가 두 사람이니 알아서 잘 키우라고 법정이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뽀로로의 판례가 모든 디지털 콘텐츠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전 아날로그 창작물과는 달리 뽀로로와 같은 디지털 콘텐츠 작업은 공동작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뽀로로 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례는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덧붙이는 글 김홍열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독문학, 국문학을 공부했고 성공회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과정 후 <정보네트워크 변화에 따른 가상공간의 확장과 권력관계의 재구성>으로 학위 취득했다. 저서로는 <축제의 사회사> (2010. 한울), <디지털 시대의 공간과 권력>(2013, 한울)이 있고 현재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성공회대와 명지대에서 '과학기술의 사회학'과 '정보사회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정보사회학 #뽀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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