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잠든 새벽에 읽기 좋은 책

[서평] 신문수 교수의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등록 2014.03.12 12:19수정 2014.03.12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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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끄럽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조용한 날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하루하루 새로운 소식들이 전해져 온다. 이전에는 오직 TV와 신문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것을 요즘은 SNS라고 하는 밤새도록 활동하는 친절한(?) 메신저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너무나 많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마음이 좋지 않다. 9살 난 아이를 두고 먼저 간 엄마의 이야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다가 생을 마감한 청소년의 이야기, 법원의 판결이 났음에도 회사에서 이행하지 않아 끝까지 싸우는 아빠, 엄마들의 이야기, 세상이 너무 암울하다. 문득 생각해 본다. '세상은 왜 이리 슬픈 건가?' 슬픔도 감염된다. 슬픈 이야기들을 접하다 보면 나도 힘이 빠진다. 마음이 아프다. 너무 슬퍼진다. 내가 도와주고 함께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더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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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신문수 산문집 ⓒ 지오 북

책을 한 권 집었다. 제목과 표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넓은 초원에 집터와 나무 한그루, 쓸쓸해 보이지만 차분한 느낌이었다.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을 읽었다.

지은이 신문수는 생태문화연구의 정립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현직 교수다. 미국문학 교수다. 책을 읽는 내내 표현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특별한 시각을 느꼈다. 사실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한 내용이 많이 언급된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다. 저자의 삶속에 자연스레 접목해 있는 자연에 대해 조용히 소개한다.

저자 신문수는 자신이 접했던 여러 문학 작품들을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한 구절씩 소개한다. 담담한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차분했다. 가족이 잠든 새벽에 스탠드 켜 두고 혼자 읽기 좋았다. 감성적인 책이다. 신문수 교수의 인생을 엿볼 수 있다. 따뜻한 책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나는 더러 양수리를 찾는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점인 두물머리, 그 강변에 서면 마음속에 맺혀 있던 매듭들이 조금씩 풀어져 강물의 합주를 따라 흘러간다. 강물은 수많은 지류들의 기억을 싣고 여기에 이르러 또 다른 거대한 기억의 흐름과 만나 서로 뒤섞이고 풀어지며 새로운 삶을 이어간다. 삶은 늘 이런저런 일과 뒤엉키기 마련이지만 결국 시간의 강물에 휩쓸려 이렇게 떠내려간다. 강바람이 머리칼을 타고 불어와 마음의 미혹들이 사라진 빈자리를 채운다. 내 몸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중에서

많은 공감이 이는 부분이다. 삶은 늘 복잡하고 힘들지만 결국은 시간의 강물에 휩쓸려 이렇게 떠내려간다. 그랬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는 기쁜 과거보단 슬펐던, 아쉬웠던, 미안했던 과거가 더 많이 떠오른다. 지금은 살고 있지만 젊은 날의 나는 당시의 파고를 견디지 못해 힘들어했던 기억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추억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힘들었나. 내일이 없었다. 당시엔 힘든 나만이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간의 강물은 계속 흘렀고 나도 함께 휩쓸려 여기까지 떠내려 왔다. 지금의 나는 당시의 나보단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최소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있어야 눈부신 새벽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

김영갑의 사진이라는 부분이다.

'요컨대 바람은 김영갑에게 섬나라 제주도를 지상의 유일무이한 장소로 만드는 으뜸가는 원천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진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바람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주도의 정체성을, 섬사람들의 생명력을, 비바람에 시달리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들판의 나무와 풀을 알 수 없다."라고.'
-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중에서

2005년 48세의 아까운 나이로 생을 마감한 제주의 사진작가 김영갑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소외감과 싸워야 하는 힘든 행로를 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카메라 두 대 중 그나마 쓸 만한 새 것은 전당포에 가 있기 일쑤였다. 필름이 떨어지면 그것을 맡기고 돈을 얻어 필름을 샀기 때문이다.'

김영갑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들은 일상의 평범한 언어로 시를 창작한다. 시인들은 평범한 주변의 이야기들을 아주 쉬운 언어로 새롭게 승화시킨다. 시인들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을 표현하듯, 나도 눈에 익숙해진 평범한 풍경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오랜 시간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글과 글 사이에 사진이나 그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이 이 부분에서는 김영갑씨가 찍은 제주도의 풍경들이 있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지만 저자의 설명과 함께 보이는 사진은 예사롭지 않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김영갑씨의 혼이 느껴진다고 할까? 저자는 다양한 작품들을 자신의 세계로 재해석하고 풀어내고 있다. 허나 그 내용이 심히 깊다.

존 밀레이의 '눈먼 소녀'라는 그림을 소개한 부분도 눈에 띈다.

'화가는 세상사의 고달픔으로부터 두 자매를 잠시 초탈케 해준 자연과 합치된 지복의 느낌을 색채의 절묘한 조화로 표현하고 있다. 멀리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원경의 어두컴컴한 하늘에 이어 널따란 중경을 이루는 풀밭은 따뜻한 노란색 물감으로 칠해져 있다…….색채의 조화는 두 자매를 잠시 탈속의 삼매경으로 이끈 영혼과 자연의 조화에 상응하고 그것은 또한 그들이 생계를 의탁하고 있는 손풍금이 들려주는 음악의 아름다운 화음을 상기시킨다.'
-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중에서

아름답다. 그림도 아름답지만 이 그림을 해석하고 있는 저자의 시선도 아름답다. 새로웠다. 이전의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 단지 눈으로만 봤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적어도 저자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스토리가 있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문장이든, 하물며 창가에 있는 먼지까지도.

자술서로서의 이야기

저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문득문득 풀어놓는다. 하버드 교정의 도라지꽃, 석굴암 가는 길의 산수국, 무릎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올랐던 지리산 산행기, 카하누 열대 식물원 등 자신이 경험했던 곳에 대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하지만 뼈있게 풀어쓴다. 그 속에서 인간으로써 거만하게 느껴야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도 자연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한다.

'산처럼 생각하기, 은행나무 유감, 피퀴드 호의 목수' 등 에서는 인간사에 대한 걱정과 겸손에 대한 필요성, 자연에 대한 미안함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사물을 보고서도 저자가 느끼는 내용은 다르다. 삶의 무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깨우침도 있다. 은행나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역지사지를 잃은 마음, 

'기능적 도구로 환원된 피쿼드 목수의 삶은 끔찍한 것이다. 그러나 관리화된 현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늘 이처럼 물화된 삶을 강요받고 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는 강요된 삶을 자연스레 살고 있다. 그 원인은 깨닫지 못한 채 엉뚱한 사람 탓으로 돌리며 이 전체 시스템은 보지 못하고 있다. 또 떠오른다. '항상 깨어있으라.'

저자는 다양한 사물과 현상들을 다양한 시각과 감성으로 본다. 그리고 그것들을 참 다양한 문체로 적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차분했다. 고요했다.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가벼운 책은 더더욱 아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잊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놓치고 사는 것은 없는지'를 고민케 해주는 책이다.

난 이런 책이 좋다. 읽을 때는 확 몰입했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하나씩 책의 내용을 곱씹어 가면 내용이 다시금 다가오는 이런 책이 좋다. 사실 초반에는 이해가 어려워 상당히 난해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저자의 시각을 이해하고 나선 하나됨을 느꼈다. 책 중간 중간의 사진과 그림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마냥 정신적 힐링을 선사한다. 몸은 비록 도시에 있지만 마음의 여유를 원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 신문수 산문집

신문수 지음,
지오북, 2014


#신문수 #풍경 #지오북 #김영갑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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