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변호사가 본 허재호 '황제노역'의 문제점

[주장] 일수벌금제 도입 검토해 볼만

등록 2014.03.25 19:05수정 2014.03.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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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호 전 대주회장은 지난 22일 귀국해 광주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되면서 하루에 5억원씩 벌금을 탕감받기 시작했다. 사진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지난해 1월 22일 오클랜드에 있는 한 호텔에서 열린 KNC 건설 사장 이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수백억 원대 벌금과 세금을 미납하고 해외로 도피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과 미납금 249억 원을 내는 대신 일당 5억 원으로 계산한 49일 동안 노역을 하겠다고 국내로 들어오면서 '황제노역' 논란이 매스컴을 뜨겁게 하고 있다.

급기야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도피해 있는 동안 사업을 하면서 지내다가 언론에 노출되면서 비난여론이 급등하자 벌금납부를 대신해서 강제노역을 자청한 것이다. 그러나 벌금 249억 원을 대신하여 겨우 49일만 노역장 유치를 하면 벌금이 모두 납부한 것으로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당 5억 원짜리 황제노역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것이다. 위와 같은 황당한 일이 왜 벌어졌고 법률의 규정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재호 일당 5억 노역, 어떻게 매겨졌나

우선 벌금형은 재산형으로 우리 형법에서는 벌금형을 형벌의 종류의 하나로 규정한다(형법 제41조 제6호). 또한 벌금은 5만 원 이상으로 하되, 감경하는 경우에는 5만 원 미만으로 할 수 있으며(형법 제45조), 벌금은 판결확정일로부터 30일 내에 납입하여야 하고,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동시에 그 금액을 완납할 때까지 노역장에 유치할 것을 명할 수 있으며(형법 제69조 제1항),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한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의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여 작업에 복무하게 하고(형법 제69조 제2항), 벌금을 선고할 때에는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의 유치기간을 정하여 동시에 선고하도록(형법 제70조) 하고 있다.

그러니까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납입하지 아니할 때에는 돈 얼마를 1일로 환산하는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선고하여야 하며(이를 '환형유치'라 함), 노역장 유치기간은 3년 이하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하면서 1일 5만 원으로 환산하는 기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한다면 벌금 미납의 경우 6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되는 것이다. 또한 벌금 1000억 원을 선고 받은 경우에는 노역장 유치기간이 최장 3년을 넘지 못하므로 역산해 보면 1일 9132만원 정도로 계산해서 노역장 유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릅 회장이 일당 5억 원으로 계산한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하는 판결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과거 이건희 회장의 경우에도 과거 벌금형을 선고받을 때 일당 1억 1천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봐주기식 판결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당시 이건희 회장은 1100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노역장 유치기간은 최대 3년을 초과할 수 없다. 때문에 이를 역산하면 일당이 1억1천만 원으로 계산되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이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언론에서는 그동안 유력 기업가들이 조세포탈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으면서 거액의 벌금형에 대하여 선고유예를 받은 사실이나 환형유치로 일당 3억 원에서 1억 원까지 등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한 것이 아니냐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법률의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법원이 이런 판결을 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조세포탈의 경우에는 조세범처벌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포탈 액수가 5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적용되어 연간 10억 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연간 5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면서(위 법 제8조 제1항), 그 포탈세액 등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벌금을 병과하도록 하고 있다(위 법 제8조 제2항). 그러니까 특가법이 적용되면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선고하여야 하고, 법원의 재량으로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 선고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형을 선고함에 있어서는 먼저 형의 종류 중에서 어떠한 형으로 선고할 것인지 선택하여야 한다. 법규정에 벌금형과 징역형이 있는 경우 먼저 벌금형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징역형으로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선택한 형에 대하여 형량을 정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이러한 경우의 벌금형을 선택형이라 한다.

그런데 조세포탈액이 5억을 초과하여 특가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징역형과 벌금형을 한꺼번에 선고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필요적병과형이라 한다. 조세범처벌법이 아니라 특가법이 적용되는 것 자체가 가중처벌인데 다시 벌금형을 병과한다면 2중의 가중처벌이 되는 것이다. 또한 벌금선고의 경우에도 최소한 포탈액의 2배 이상을 선고해야 하기 때문에 법관의 재량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조세범의 처벌을 다른 범죄에 비하여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법규정의 태도는 국고주의에 영향을 받아 국가과세권을 매우 중시하고 그 침해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중처벌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과세당국의 고발에 의해서 조세범으로 처벌을 받는 사람은 그 형량이 너무 과중하므로 자포자기를 하게 된다. 예를들어 500억 원의 세금을 포탈을 했을 경우 징역형은 물론 벌금형을 선고받고, 벌금의 액수도 최하 1000억 원을 넘게 된다. 포탈세액을 모두 납부하더라도 징역형에 대하여는 집행유예가 가능하지만 벌금형은 그대로 남게 되고, 이를 납부하지 못할 경우 환형유치에 의해서 3년간 노역장에 유치된다. 그렇기 때문에 포탈한 세액을 납부하기보다는 형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어 포탈세액의 환수라는 과세당국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나온 해법이 포탈세액을 모두 납부하였을 경우에는 징역형에 대하여는 집행유예, 벌금형에 대하여는 선고유예를 함으로써 과세당국으로써는 탈루된 세액의 징수, 피고인의 경우에는 사회로의 복귀라는 타협점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포탈세액을 모두 납부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금탈루의 경위, 탈루금액을 어디에 사용하였느냐의 여부 등에 따라서 집행유예의 여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허재호 전 회장의 경우 탈루된 세금을 모두 납부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에서도 선고유예를 구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8억 원을, 그리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하면서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를 들어 벌금형에 대하여 선고유예를 하지 않고 그대로 선고하였다. 다만 1심에서는 1일 2억5천만 원으로 환산한 기간을, 2심에서는 1일 5억 원으로 환산한 기간을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한 것이다. 결국 다른 기업가들이나 다른 조세포탈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벌금형 부분에 대하여 선고유예를 하여도 되었던 것을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오늘날의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되었다.

일수벌금제 도입 검토해 볼만

여기서 우리는 조세포탈을 규율하고 있는 형벌 법규의 내용이 가혹하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형량은 잘못에 비추어서 적당한 정도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지 지나치게 가혹해서는 헌법상의 원리인 비례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하게 된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더욱이 형벌은 처벌 그 자체만의 목적이 아니라 피해회복이나 범죄자의 사회복귀를 위한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세포탈에 대한 형법상의 규정은 그 내용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필요적 병과의 경우에도 일률적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서 달리 적용되어야 하며, 벌금액수 또한 무조건 2배 이상으로 선고하도록 하는 규정도 바뀌어야 한다. 또한 특가법이 적용되도록 하는 현행 5억 원 이상의 포탈액도 오늘날의 우리 경제규모에 비추어보면 지나치게 불합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세포탈의 경우 특가법이 적용되는 대상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물론 벌금의 필요적 병과와 벌금액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서 현행 우리 벌금제도는 일정액의 벌금을 총액으로 정해서 선고하는 총액벌금형 제도인 바, 이러한 제도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형벌의 위하력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잘못의 정도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에 부적당한 면이 있다.

따라서 위법의 정도에 따라서 일수를 정하고, 범죄자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서 1일 벌금액을 정한 다음 양자를 곱해서 벌금액을 정하도록 하는 일수벌금형 제도가 학자들 사이에서 주장되고 있으며 독일 등의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으로써 환형유치를 위한 일당 벌금액이 지나치게 차이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벌금제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검토해서 잘못의 정도와 개인의 경제력을 정확히 반영하여 형벌로써의 위하력을 갖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평등이 구현되도록 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정범 변호사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으로 한양대 로스쿨 겸임교수입니다.
#황제노역 #노역장 유치 #환형유치 #벌금 #선고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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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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