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7%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

서양화가 김미원선생님의 봄

등록 2014.03.26 11:22수정 2014.03.26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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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의 늪을 건너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김미원작가. 김작가님은 많은 시련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지고 당당해진 모습입니다. ⓒ 이안수


3월 24일, 그분과 오랜만에 대면을 즐겼습니다.


그분은 작년 2월 이후, 솟대를 함께 만들기 위한 인연이 계속 이어져서 서로의 기쁨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제페토 할아버지'라 불렀습니다. 지난 1년간, 만남과 SNS로 소통하면서 그 분이 얼마나 큰 아픔을 겪고 계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혼,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픈 아들, 자살시도, 폐쇄병동입원, 우울증, 불면증, 무기력….

이름난 명문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신 그분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짝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사회적 직위와 명예 그리고 부족함이 없는 재산을 가진 분의 자제였습니다.

해외에 주재하며 사업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에 대한 교육관의 차이로 이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 후 두 아들을 맡은 부인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로 인해 아름다움과 예술적 재능을 함께 갖추었던 자신도 무너져 내리는 시간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녀에게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시간 수많은 병원과 의사를 전전한 끝에 마침내 자신을 정확하게 진단한 의사를 만났고 그 의사는 침대에만 누워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지난 6개월간 최악의 좌절에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여전히 의사의 처방약을 먹고 있지만 작년 말부터 호전되기 시작해서 지금은 아픈 아들과 함께 '장애인의 집'에 봉사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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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원선생님은 상황을 직시하고 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깊은 절망과 체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포슬린페인팅작업과 봉사, 그리고 그동안 녹이 쓴 언어실력도 다시 연마중입니다. ⓒ 이안수


어제의 만남에서 그 분이 말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저는 하루가 12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견딜 수 없는 낮이 사라지고 내가 어둠 속에 숨을 수 있는 밤만 있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제가 아닙니다. 제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다음 자학에서 깨어나니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은 더 많습니다."

머리가 반백이 된 나이에 그분은 또 다른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돌아보니 저는 97%를 가진 사람이더라고요. 제게 없는 1%로는 '건강'이고, 또 다른 1%로는 '반려자', 나머지 1%는 '돈'입니다. 하지만 그 3%로는 앞으로 제가 감당할 몫이겠지요."

이른 봄, 저를 가슴 뛰게 하는 것은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산수유만이 아닙니다.

'나는 97%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서양화가이자 포슬린페인팅 작가이신 김미원 선생님께서 지난밤 저를 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관련정보 | www.dear-elizabeth.com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김미원 #시련 #의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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