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백반', 드셔 보실래요?

동성로 필리핀 시장 탐방기

등록 2014.03.31 14:07수정 2014.03.31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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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시장 풍경 명물 음식 '부코파이'를 파는 아주머니 ⓒ 정세진


일 때문에, 결혼 때문에 낯선 한국을 찾은 이들이 서울 혜화동에 모여든 것이 이미 십여 년 전이다. 3월 마지막 일요일(30일)에 찾은 동성로 필리핀 시장은, 과거에 비해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었다.


"부코파이 사세요. 한 개 2500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능숙한 한국말로 손님들을 대한다.

장터에는 필리핀 명물이라는 코코넛 파이인 부코파이 외에도 부화 직전의 오리알을 삶아낸 발룻, 냉동된 열대과일과 생선 등 신기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장터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뭘 주문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주인 아저씨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일일이 물어보기 귀찮았던 기자는 "알아서 해 주세요"하고는 쌀밥에 반찬 두세 가지, 잡채처럼 생긴 볶음면으로 이뤄진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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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식 백반 고기반찬과 쌀밥, 볶음면으로 구성됐다 ⓒ 정세진


맛은? 의외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편이다. 볶음면은 잡채와 큰 차이가 없고 닭고기를 조려낸 반찬은 우리나라 장조림과 비슷했다. 다만 돼지 내장을 사용한 요리가 많아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을 듯하다.  

매주 필리핀 시장을 찾는다는 지역 주민 박요섭(50)씨는 "몇년 전만 해도 혜화역 1번 출구에서 성당 정문까지 점포들이 이어져 있었다"며 "지금은 규모가 3분의 1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한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많아졌던 것일까. 이 질문에 박씨는 "몇 년 전 구청에서 한국인 노점이 피해를 받는다며 압박을 해왔다"고 밝혔다. 다만 필리핀 시장이 지역 관광명소가 되고 있는 점을 감안, 단속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점포 수를 줄였다고.

박요섭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상인들은 대부분 결혼 이민 때문에 건너온 여성들이라고 한다. 남성들도 간혹 보이는데 이들은 공장 근로자이거나 결혼이주 여성의 가족인 경우가 많다. 필리핀 시장 구성원 상당수는 평택, 포천 등지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딱 한 번, 미사를 마친 후 장터를 통해 교류의 시간을 갖는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한 필리핀인 청년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한국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월급이 자꾸 올라서 좋아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 청년은 한국에 온지 6년째이며 플라스틱 부품 공장에서 일한다고 답했다. 한국에 건너올 당시 월 200만 원이었던 임금이 230만 원으로 늘었다고.

일행들과 쾌활하게 웃는 청년의 모습에서 기자는 그들이 이미 우리의 이웃으로 자리잡았음을 실감한다.
#필리핀 #시장 #혜화동 #동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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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관련하여 식생활 문화 전반에 대해 다루는 푸드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가의 음식문화, 패스트푸드의 범람, 그리운 고향 음식 등 다양한 소재들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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