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흉물 살리는 노하우, 이들에게 배우세요

[서평] 공중 폐철도를 낙원으로 바꾼 '하이라인스토리'

등록 2014.04.01 10:22수정 2014.04.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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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해도 사라지는 세상이다. 재산권을 주장하며 주인이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세상에서 땅주인이 반대하는데다 주민들이 흉물로 생각하는 오래된 유산을 살릴 수 있을까? 승률은 얼마나 될까. 게다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고, 조직도 없는 청년 둘이 주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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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 스토리'는 버려진 공중 폐철도를 공원으로 만든 두 청년의 이야기다. 10년 동안의 악전고투가 대화 형식으로 담겨 있다. ⓒ 푸른숲

'하이라인스토리'(푸른숲, 2014)는 1934년 뉴욕에 만들어진 오래된 공중철도에 관한 이야기다. 1980년에 마지막 열차를 끝으로 운행 중단.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철거는 기정사실. 주민은 흉물로 여기며, 지주들은 철도를 철거하고 고층건물을 지을 계획이다.


뉴욕시와 연방정부 또한 부정적. 이 상황에 뛰어든 두 청년은 현대판 돈키호테다. 근대 유산 보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보존은 어렵다. 혹시 이들이 겪은 악전고투를 읽으면 도움이 될까. 두 청년은 과연 어떻게 싸웠을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분명한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지켜야 할 대상] 20여년 동안 버려진 공중 폐철도. 철도 다리에선 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교각 위엔 잡초가 가득. 우범 지대. 주민들은 우중충한 곳으로 불쾌하게 여김. 지주들은 철거 요구. 

[지키는 사람들] ▲ 조슈아. 게이. 웨이터로도 일한 자유기고가. 보존, 건축, 공동체 동원, 모금, 공원 관리 경험 전무. ▲ 로버트. 게이. 코털깎이를 팔기도 한 프리랜서 사업가. 보존, 건축, 공동체 동원, 모금, 공원 관리 경험 전무.

[반대하는 세력] ▲ 지주 단체와 지주들 ▲ 뉴욕시 ▲ 도시계획위원회 ▲ 연방 지상운송위원회 ▲ 주민들

대다수 사람들이, 심지어는 지역 주민조차 하이라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하이라인 얘기를 꺼내면 "뭐라고요?" 하면서 지나쳤다...다시, "비둘기똥이 떨어지는 그 어두운 곳 말이에요" 하면, "아, 거기요. 전 그곳 싫어요" 하며 가버렸다.-82p


잘나지 못한 게 힘, 그래서 그들은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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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철로인 하이라인은 뉴욕 시내를 통과한다. 철거를 원하는 쪽은 도시 성장을 가로막고 양 지역을 가르는 흉물로 생각했다. 보존을 원하는 쪽은 도심을 관통하기 때문에 오히려 매력이 있다고 봤다. ⓒ 김대홍


▲ 1980년 하이라인에서 마지막 열차를 운행한다. 이후 폐철도 ▲ 1999년 8월 조슈아와 로버트가 처음 만나다

도심 흉물로 모두가 철거를 원했던 공중철도를 되살린 건 조슈아와 로버트다. 둘은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을 결성한다. 지방정부가 반대하고 지주가 철거를 원하며 주민들조차 관심 밖이라면 해보나마나한 싸움이다.

이 무지막지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에 맞먹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예상과 달리 조슈아와 로버트는 시민운동을 해본 경험이 없고, 건축에도 문외한이다. 단지 하이라인에 대한 추억이 있는, 특별할 게 없는 청년일 뿐이다. 인맥도, 돈도, 지식도 없으며, 비전조차 없다. 그런데 이 점이 성공열쇠일 줄이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전이다. 잘난 리더가 아니라 잘나지 못한 리더라니.

"우리는 건축가도 도시계획가도 아니고 우리 프로젝트에 관해 뚜렷한 비전도 없었다. 이 점이 바로 하이라인 프로젝트의 성공 열쇠임이 드러났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도와달라고 많은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다."-43p 

▲ 2000년 변호사를 고용 '반대편에게 배우기' ▲ 2002년 1월 경제타당성 전문가 존 앨슐러를 만나다 ▲2003년 가을, 정치적인 깨달음 '지지자들은 주로 민주당이지만 뉴욕 집권당인 공화당과도 잘 지내야 한다.'

"나는 한 때 개발업자들이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다…이제 와서 깨달은 사실은 개발업자라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똑똑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이들은 가장 똑똑한 변호사를 고용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 방식은 거꾸로도 통할 수 있다."-44p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머리를 숙이긴 힘들다. 비록 주장이 옳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아 독불장군처럼 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슈아와 로버트는 그렇지 않다. 이들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지자를 끌어모으는 장면은 '삼국지'의 도원결의나 '수호지'에서 양산박에 영웅들이 모이는 장면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영화배우 캐빈 베이컨과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 뉴욕시장 블롬버그(직전 시장인 줄리아니는 철거 지지쪽이었다.), 상원의원 힐러리 클린턴이 이들의 편에 선다. 처음엔 이들 또한 "설마 그들이 도와주겠어"라며 의심한다.

하지만 편지를 쓰고, 자료를 보내고, 만난 결과 끝내 자기편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지주 쪽에서 지지자가 나오고 철거를 진행한 전임 시장쪽 변호사가 합류하는 대목은 역전홈런처럼 짜릿하다. 큰 일을 도모하는데 있어 섣부른 진단과 때이른 포기야말로 가장 큰 벽임을 이들은 증명한다.

"처음에 우리에게 반대했던 하이라인 부동산 지주들이 그날 밤의 모금 행사 자리에 많이 참석했다. 그중에는 한때 철거 운동을 이끌었던 제리 고츠먼도 있었다. 조 로즈 역시 참석했다. 어맨다 이전의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조는 줄리아니 행정부의 하이라인 반대 정책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129p

숱한 위기, 어쨌든 그들은 나아갔다

▲ 2001년 9.11 테러 ▲ 2001년 12월 뉴욕시 철거 명령 ▲ 2005년 10월 기념행사장에서 성기 노출 사건 발생 ▲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일주일 뒤, 레만브라더스가 무너졌다…계획 중이던 모금 행사가 모두 보류되었다."-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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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공원 위에 만들어진 스탠다드호텔. 하이라인은 과거 빠르고 편리한 수송을 위해 철로가 바로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만든 건물이 많았다. 스탠다드호텔은 그런 하이라인의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 김대홍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 이들은 지역에서 활동을 벌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도 파장이 일 정도로 큰 사건을 여러 번 겪는다. 순수한 민간운동이었기 때문에 폐철도 보존을 위한 활동자금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지지자를 늘리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브로슈어를 만들고, 메일을 돌리는 작업, 상근자 인건비, 사무실 유지비, 경제 타당성 조사비, 정부와 싸우기 위한 변호사 소송비 등은 금액이 컸다.

현명한 조언자들이 "돈을 마련할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마라"고 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숱하게 기금마련 파티를 열어 돈을 마련하지만 보존운동 기간 동안 뉴욕은 9.11테러와 리먼브라더스 파산이라는 큰 사건을 겪는다.

게다가 뉴욕시 줄리아니 행정부는 퇴임하면서 철거 명령에 서명을 하고, 지주쪽들 또한 반대 캠페인을 벌이며 적극 활동에 나선다. "저 좁은 철도 공간에 어린이 놀이터라도 만들 수 있을까요?" "버려진 잡초공간에선 돈이 생기지 않습니다.

건물을 지으면 돈이 생기지요?"라는 지주쪽 캠페인 공세 앞에선 하이라인 활동가들 또한 가슴이 자그마해진다. 행사장에선 술에 취한 출연자들의 '성기 노출 사건'까지 벌어진다.

많은 위기들이 찾아오지만 가장 큰 위기는 가까이에 있었다. 하이라인 보존운동을 이끈 두 리더의 갈등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한 사람은 철로 그 자체를 보존하는데 관심이 많았고, 또 한사람은 풍경에 관심이 많았다. 감정이 생겼을 때 서로에 대해 "교조적" "타협적"이라며 비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사람 생각이나 관점이 똑같아야 한다는 자체가 폭력이다.

"전시회 개관일 밤에 여름 모금 행사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1천 명 정도가 참석하는 칵테일파티와 이후 이어지는 3백 명의 디너파티를 준비했다.…적은 수의 직원들과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대판 싸웠다.…조슈아와 나는 크게 한판 싸운 뒤로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88p, 92p

단순하게, 조용히,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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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인공원을 만든 사람들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공간을 생각했다. 도심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온 자연, 어느 한쪽이 과하지 않은 공원을 만들어냈다. ⓒ 김대홍


조슈아와 로버트는 초창기 지역 사람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또한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물론 커뮤니티 회원 중 몇몇은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

반대 여론은 4년쯤 지나자 바뀐다. 지주 가운데서도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드러난다. '하이라인친구들'은 여론이 바뀔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하이라인 공원 설계팀이 설계에서 내건 슬로건은 그대로 '하이라인친구들'의 작업 방식이었다.

'단순하게, 야생 그대로, 조용히, 천천히.'

이 책은 근대유산 보존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서다. 철거를 원하는 사람들도 읽을 만하다. 그토록 철거를 원하던 흉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경우 어떻게 재탄생하는지 보여준다. 철거를 원하는 쪽이나 보존을 희망하는 쪽이나 성급하고, 참을성 없으며, 치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조슈아와 로버트의 대화 방식으로 1999년 처음 만나 2009년 6월 1구간이 개장할 때까지 10년 과정을 담았다. 그들이 겪은 어려움과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책 절반을 차지하는 사진은 보너스다. 고가 철로에서 바라본 뉴욕이 남다르다. 글과 사진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책이 도시에 대한 재해석임을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공원을 도시로부터의 탈출로 여기지만, 하이라인은 결코 뉴욕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사람들은 열대 정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경적음을 들을 수 있고 지나가는 차와 택시를 볼 수 있다. 이것들이 실처럼 짜여 뉴욕을 이룬다."-175p

하이라인 스토리 - 뉴욕 도심의 버려진 고가 철도를 하늘공원으로 만든 두 남자 이야기

조슈아 데이비드 & 로버트 해먼드 지음, 정지호 옮김,
푸른숲, 2014


#하이라인 #하이라인공원 #뉴욕 #조슈아 #로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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